7화.블레이즈 하면인종차별인가요?

우리의 머리카락은 복잡하게 서로 엉켜있다.

by 졔졔

다시는 '레게 머리'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2008년이 무색하게, 나는 그 이후로 두 번이나 더 블레이즈를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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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동아프리카에 있는 부룬디라는 국가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남한의 1/3 정도 크기인 작은 나라이지만, 국민의 절대다수가 흑인인 그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의 블레이즈나 '흑인 머리'를 만나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부유하거나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나 블레이즈나 가모를 붙인 머리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 아이들 너나 구분할 것 없이 머리를 박박 밀고 있었다. 생명력 강한 그들의 굽은 머리 칼이 관리할 수 없는 환경에서 두피로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블레이즈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블레이즈를 하는 흑인들의 두피는 강할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영양 부족이나 수인성 피부병, 상처 등으로 땜빵을 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흑인 머리'란 무엇인가. 어디에 가서 '한국인 머리'라는 말은 안 한다. 그렇듯 '흑인 머리'라는 것도 없다. 그런데 머릿속에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이 있었다. 고백하건대 그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이 신과 결혼하여 섹스를 하고 낳은 한국 남자의 원형, 신의 아들, 단군의 후손 '한민족'임을 국가의 큰 정체성 중 하나로 삼아왔다. 배척과 배제를 중심으로 연대와 결속을 다져 온 한민족(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아왔던)이자 K-국민으로서만 살아온 나는 다양한 인종을 어떻게 대상화하지 않는지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훈련 중이지만. 그래도 다행인 점은(?) 부룬디 사람들도 가짜 머리를 달고 있지 않고도 긴 머리카락을 달고 있는 황인종이 익숙한 것은 아니라서 가끔 내 머리를 진짜인지 만지거나 당겨 보고는 했는데, 우리는 상호 대상화를 했다는 지점에서는 쌤쌤 일지 모르겠다. 사실 보통 내 머리카락을 만지거나 당기는 것이 아이들이었다는 점에서 쌤쌤이라고 하기 약간 찔리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흑인 머리'에 대한 실망감이 들던 2009년, 나는 인종차별자였지만 인종을 뛰어넘어 개인으로 나에게 의미가 생긴 이들을 부룬디에서 만났다. 계속 올 일을 만들어야 지 생각하고 운이 좋아 2011, 2013, 2014, 2015년 동아프리카에 네 번이나 더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2011년 두 번째 부룬디 방문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이전의 결심이 무색한 인생 두 번째 블레이즈를 했다.


스탑 오버로 잠시 들린, 배낭 여행객과 히피들의 성지와 같은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거리 전체가 죽었다고 하는 최근의 뉴스와 달리, 카오산은 노점상 역시 각종 먹거리를 필두로 실버 액세서리, 중국산일 것이 의심되는 동남아풍 잡화, 저렴한 알라딘 바지와 냉장고 바지 등 없는 것이 없는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두 모여 북적이는 밤의 도시였다. 그리고 그중 단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가모와 블레이즈 노점들...


c58a2a8b76802dea7a651547153f14e6.jpg 카오산 로드 (Khao San Road)의 브레이즈 노점들 (출처: 24.media.tumblr.com)


오우 씨, 급 땡기는데!


시간이 없었다. 스탑 오버로 잠시 들른 방콕이었기에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다만 오래 앉아있어야 하는 블레이즈 특성상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용기가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실내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를 해달라고 했다. 이전에 했던 방식인 블레이언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을 기억하며 다른 방식으로 땋으면 좀 낫지 않을까 스스로를 속였다. 충동적인 블레이즈에 나름의 합리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이었다. 비용도 한국에서 머리를 할 때의 1/4이 채 되지 않았다는 점도 내 합리화를 도왔다. 만족스러웠다. 블레이즈를 하고 귀국하던 겨울, 그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는 친구들에게 나를 아프리카에서 살다 왔다고 소개하며 거짓말을 하는 것을 즐겼다. 특별한 헤어스타일을 한 애인을 두는 것을 즐겁게 여겼던 그의 장단에 맞춰, 한국어를 못하는 척하며 그 놀이를 즐긴 적도 있지만 이내 바보같이 느껴지고 재밌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술 비용이 한국에서 시술했을 때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에 미련 없이 얼마 안가 블레이즈를 풀었다.


그 후 3년이 지나 남자 친구는 바뀌어 있었고 연도는 2014년이 되었다. 2014년에도 부룬디를 갔는데, 이번엔 블레이즈 자체가 그립기도 하고 현지 일정이 많았던 만큼 현지인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에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마음을 먹고 블레이즈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부룬디 수도 부줌부라에서 나름 제일 커 보이는(?) 미용실로 향했다. 수도에서 제일 큰 미용실이라고 해서, 서비스 강국 한국과 같은 모양새의 미용실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친절한 현지 선교사님 도움으로 미용실까지는 어찌 저찌 잘 찾아갔으나 좁은 입구를 지나 들어선 순간, 나도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미용실은, 헤어 '살롱'에 가까운 형태였다. (아래 사진이 내가 갔던 살롱인데, 어떻게 생긴 곳인지 비슷한 곳을 찾으려 사진을 검색하다가 내가 갔던 바로 그곳이 딱 나와서 너무 반가워하고 있다.)


_111743198_15_burundi_afp976.png 여기가 내가 갔던 부줌부라의 헤어 살롱이다 (출처: BBC)


붉은 페인트로 칠해진 바닥, 그 정방형의 공간에 머리를 땋아주는 사람들이 수건 돌리기 대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고, 손님들은 바닥에 제각기 본인이 편한 모양새로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다행히(?) 나만 당황한 것 같진 않았다. 부룬디는 정말 작은 나라이고, 케냐나 탄자니아 같이 관광 자원이 풍부한 국가도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이 많지 않다. 이런 객관적 상황과 그날 미용실에 첫 발을 디딜 때의 정황이, 내가 그 살롱을 이용한 최초의 아시안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살롱에 혼자 들어서는 순간부터 다들 '넌 여기가 어딘지 알고 온 게 맞니?' 혹은 '왜 왔니?'라는 표정의 15쌍의 눈이 나를 향했다. 약간...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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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머쓱해서 허허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내 머리카락(Umushatsi wanjye)..."

상황을 파악한 몇 눈치 좋은 미용사가 나를 따라 머리카락을 꼬는 시늉을 하면서 물었다.

"네 머리카락(Umushatsi wawe)...?"

그래도 말이 통했구나 싶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네네! (Ego, ego)"를 연발하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웃음과 함께 사장님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모를 사람이 한 미용사 앞의 바닥으로 안내를 했다. 자세하게 세부적으로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키룬디어 구사자였기에 해주는 대로 앉아 있었다. 5시간 정도를 앉아있었던 것 같다. 비용은 한국 돈 3만 원 안 팎. 모르긴 몰라도 무중구(muzungu) 프라이스가 적용되었을 것이지만 그 역시 진위 확인은 어렵다.


(*무중구(muzungu)는 직역하면 white라는 뜻인데 백인을 부르는 말로 쓰이지만 그들 눈엔 우리도 하얀 축에 속해서인지 동양인도 muzungu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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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줌부라에서 땋은 머리는 탄자니아에서도 각광 받았다구


부룬디에 머무는 동안, 그리고 국경을 넘어 탄자니아에 머무는 동안 현지의 친구들은 부줌부라의 전문가 손에서 탄생한 내 머리가 마음에 든다는 칭찬들을 해줬고 나 역시도 어떤 지점에서는 그들 문화와 좀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면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왜 블레이즈를 한 거야?'라는 질문 앞에 생략된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굳이) 왜 블레이즈를 한 거야?'는 아니었을까 싶은.


그렇게 2008년 한국에서, 2011년 태국에서, 2014년 부룬디에서 총 세 번 블레이즈를 했다. 마지막 블레이즈를 한 것도 어언 7년 전이다.


언젠가 다시 저 머리를 할까? 생각하면 죽는 날까지 다시는 안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죽는 날 전에 다시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죽는 날까지 다시는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이 서운하고 애닯다. 동아프리카를 자주 방문하곤 했던, 그럴 수밖에 없던 일들을 하면서 지냈던, 지금은 전생 같은 날들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그 당시 만나던 연인들을 떠올리게 되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뜬금없는 그리움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별 것 아닌 감상적인 이유들로 블레이즈를 다신 안 하거나, 못할 것 같다는 것을 아쉬워하기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지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은 계속 변하고 차별에 대한 감각이나 인권에 대한 인식들은 꾸준히 고양되어 왔다. 이를테면 블레이즈나 '흑인 머리', '레게 머리'라 불리는 헤어스타일에 대해서도. (사실 '흑인 머리'나 '레게 머리'라는 말 자체가 차별적이다.)


2020년 가수 현아는 블레이즈를 해서 인종 차별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2021년 올해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박은석도 레게 머리가 인종 차별이라는 지적을 수용하고 스타일을 변경했다. 나는 한국에서 블레이즈를 하는 어떤 사람들도 흑인을 놀리거나 차별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블레이즈를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그래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어떤 사람들 (주로 '일부 누리꾼'으로 불리는데 '기자'와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사람들) 은 그것이 왜 인종차별인지 모르겠다며, 그렇다면 흑인들도 스트레이트 가발을 쓰면 안 되는 것 아닌지, 그들은 왜 스트레이트를 따라 하는지(?) 분노한다. 감히 선량한 나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예민하다고 하고 (내가 정말 싫어하는)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으라는 짤을 남발한다. 정작 자세를 고쳐 앉아야 하는 건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건강하려 하기 때문임을 잊고, 오히려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자세가 옳은 자세임을 잊고, 편하니까 몸이 삐뚤어지고 여기저기 고장 나는 줄 모르면서도 거북목에 틀어진 척추와 골반을 만들고 있는 이들이 자신임을 잊고, 바로 서기 위한 과정으로 불편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다시 편하게 삐뚤게 앉으라 한다.


수 차례 얘기했듯 나는 블레이즈가 쿨하고 힙해 보이는 머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블레이즈를 했었다. 블레이즈는 멋진 스타일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쿨한 머리, 블레이즈를 다른 인종이 하는 것 자체를 인종차별이라고 해석하고 흑인들을 쩨쩨한 사람들로 취급하면 더 이상 발전적 논의나 서로를 이해하는 지점을 만드는 것은 어려워진다. 흑인들이 유치하게 '야, 이 머리는 내가 먼저 찜했으니까 너희들은 하지 마.'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머리카락을 둘러싼 맥락을 다각도로 살필 필요가 있다. 우리의 머리카락은 복잡하게 엉켜있다. 종으로 횡으로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맥락이 우리의 머리카락 사이를 헝클어낸다. 다양한 맥락들로 우리의 머리카락은 서로의 머리카락에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를테면 검은색 머리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하지만 검은색의 머리카락만이 학생다운 정상적인, 이상적인 머리로 학교와 두발 규제라는 맥락에서 강제되었을 때 한쪽에서는 필연적인 차별이 발생한다. 실제로 자연 갈색의 머리를 가진 친구들은 학생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학교의 규칙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그것이 원래의 머리카락임에도 불구하고 검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올 것을 종용받았다. 근대기, 서양식으로 짧게 깎은 머리가 현대화의 상징인 것으로 여겼던 일제가 이를 단발령으로 강제할 때, 같은 명령이지만 일본인과 조선인의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금언으로 상투를 틀거나 댕기를 땋는 것을 목숨처럼 하던 조선인들의 사회에서는 그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끔찍하고 비참했을 것이다. 같은 명령이지만 일본인들에게와 달리 조선인들에 대한 강력한 차별로 느껴졌을 것이다. 사회적인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정상성에 끼워 맞추기 위한 고통과 심리적 비용이 훨씬 컸으리라 짐작한다. 한 사회가, '정상적'인 머리카락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정상성을 가진 머리카락을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갖기 어려운 이들은 차별받는다.


한국이 유교 베이스 단일 민족 국가 (다들 아시죠? 이거 개뻥임) 라면서 긴 머리의 유지와 극동 아시안의 상징(?) 검정 머리에 정상성을 부여했듯이, 서양에서는 금발을 이상적인 머리로, 곱슬과 빨간 머리를 어딘가 조금 아쉬운 머리로, 그리고 흑인의 머리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정상성을 분류해왔다. 그렇기에 어떤 맥락에서는 '굳이 꼭 할 필요는 없지만 그냥 쿨하고 멋진 머리라서 블레이즈를 하는데.'라고 이야기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이야기가 차별이자 권력의 증거가 된다.


나는 잠깐의 쿨한 이미지를 가지고 오기 위해서 블레이즈를 하길 택하고 불편하면 언제든 풀어버리고 가벼운 원래의 머리로 돌아갈 수 있다. 서구권의 백인 셀러브리티 역시 그래 왔다. 그러나 흑인들에게는 블레이즈가 본인들 본연의 머리카락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 중 하나이다. 흑인들에게는 블레이즈가 없으면 몰개성 하게 머리를 빡빡 밀거나 본드로 스트레이트 가모를 붙여야 하는 더 고통스러운 헤어 선택권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냥 그럼 블레이즈 하면 된다고? 말처럼 쉽지 않다. 꼬불거리는 머리를 유지하거나 블레이즈를 하면 흑인들은 가장 자연스러운 머리를 했을 뿐인데 단정하지 않다던가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 때문에 구직 과정이나 학교에서 차별받는다고 말한다. 헤어스타일을 '정상'으로 할 것을 종용받거나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겪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인 셀러브리티나, K-POP 스타들은 블레이즈를 했을 때 힙하고 아름답다고만 여겨진다.


(이미 두발 규제가 사라지긴 했지만) 한국적 맥락으로 따지면 자연 갈색의 머리를 가진 학생한테 검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해오지 않으면 벌점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나 줘 버리는 것과 같다. 차별이다. 어른들은? 학생들과 달리 어른들은 갈색 머리 거나 검은 머리라 하여 벌점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까, 검은색 머리던 갈색 머리던 같은 머리를 하더라도 이로 인해 어떤 판단을 받는 객체가 되는 것, 이 자체가 차별이다. 학생에 대한 차별이다. 흑인들, 특히 다인종 사회인 미국의 흑인들은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도 버락의 퇴임 이후에나 본연의 곱슬머리를 드러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엄마는 페미니스트>, <아메리카나> 등의 흑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미셸 오바마가 자연스러운 머리를 했다면, 버락 오바마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었을 겁니다. (If Michelle Obama had natural hair, Barack Obama would not have won)"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으니 때로 인종에 대한 차별과 머리카락으로 인한 편견은 영부인도 피해 갈 수 없을 정도로 지위고하를 막론한다. 미시시피주 지역방송 WJTV의 흑인 앵커 브리타니 노블-존스는 평소 곱슬머리를 편 채 방송을 하고는 했는데 출산 후 자신의 아이에게 본연의 머리를 보여주고 싶다며 상사에게 더 이상 머리를 펴지 않겠다고 말했고, 회사에서 '그런 머리를 하면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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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미국이나 유럽의 이야기 아니냐고? 그래서 인종차별을 넘어 문화적 전유 혹은 문화적 도용 (Cultural Appropriation)이라고 불리는 지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적 도용(전유)

어느 한 문화집단(주로 주류 문화)이 다른 문화집단(비주류 문화)의 전통문화를 자신의 것인 양 무단으로, 특히 그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문화적 전유'로도 번역된다. 이 관행을 비판하는 측은 문화적 도용이 식민주의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문화 교환이나 문화 동화와는 차이가 있으며, 해당 전통문화의 유서 깊은 의미가 지배 문화권의 사람들에 의해 패션이나 놀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러한 비판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문화적 배척을 야기한다는 주장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적 도용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단일 민족 국가임을 천명하는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내 문화가 네 문화고 네 문화가 내 문화인 것처럼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익숙해져야 하는 개념이다. 더 이상 우리의 문화가 국경 내로만 한정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한국 문화의 세계화 한식의 세계화를 세트로 울부짖으며 '두유노김치' '두유노싸이' 했을 때 알아주면 마치 내가 김치이고 싸이인 것만큼 문화적 자긍심을 가지고, 모른다고 하면 김치의 훌륭한 점을 설파하고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틀며 문화 홍보대사인 것양 구는 법만 배웠다. 우리는 막상 한국 문화와 한식의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자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나 역시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머리로는 이해해도 피부로 와닿지는 않는다. 그저 계속 노력할 뿐이다.


예전, 우리가 제3세계로 불리던 때와 달리 한국은 OECD 가입국인 경제력 기준으로 명백한 세계의 선진국이다. K-POP과 문화 산업의 성장은 더 이상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서 비주류 문화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증거이다. 문화적 도용에 대해서 우리는 아시안으로서, 동북아의 최약체(?)로서 겪는 문화적 도용의 피해자로서 스스로를 감각해왔다. 일본이, 중국이 우리 문화를 도용하진 않을까, 한복이 지들 것이라고 하진 않을까, 김치가 지들 것이라고 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서구 사회가 오리엔탈리즘으로 게이샤 화장에 한복을 입힌 상태로 자금성 앞에서 화보를 찍으며,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대상화하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만 해왔다. 하지만, 각종 K-문화의 주류화로, 가해자로서의 위치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 경제력과 문화 산업의 성장으로 인해 우리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것이라는 미명 하에 타 국가나 문화를 이해 없이 사용한다.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불순이 섞여 들어가고, 문화의 주인을 곡해하거나 편견을 강화한다. 때로는 그 결과물이 온전히 제 것인 양 저작권이나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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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이던 흑인이던 서구권의 한 아티스트가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위해 리서치를 하던 중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은 군가로 쓰기도 했던, 한국인의 정서를 가득 담은 밀양 아리랑을 발견한다.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밀양 아리랑 멜로디에 비트를 깔고 마더 파더 퍼커 에프 워드 삐 쉣쉣 섹시 같은 가사를 얹고 밀양 아리랑은 제목으로 저작권, 상표권 등을 등록한다. 생각해보자. 이 음악이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치고, 아티스트는 엄청난 부자가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밀양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한국인들은 쓸 수 없게 된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자, '저는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요! 한국인들을 좋아하고 훌륭한 한국 문화를 사랑해서 만든 노래입니다!'라고 얘기했을 때 우리는 '오, 역시 국뽕이 차오른다.' 하며 여전히 주모를 찾을 수 있을까?


블레이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부족과 지역에 따라 그 땋는 모양새가 달랐던, 뿌리와 근원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했다. 노예로 억지로 끌려온 미국에서 콘로우 등의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한, 복잡한 여러 역사적 맥락과 궤를 같이 하는 상징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에게는 이전의 내 블레이즈가 충분히 차별적이고 문화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겸허히 수용할 수밖에 없다.


만약 블레이즈를 했을 때 이를 칭찬했던 흑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누군가는 '네 친구나 그 사람들은 괜찮다던데?'라고 항변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흑인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괜찮다고 하고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하면, 불편하다고 하는 이들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낫다.


누군가는 얘기한다. 어차피 인종차별로 따지면 서구 사회에서 흑인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시안이고 흑인들이 아시안을 차별하기도 하는데, 백인도 아닌 우리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냐고. 글쎄,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경험한 흑인 친구들은 '내가 지하철에 자리가 있어서 앉았더니 사람들이 일어나거나 피했어. 나랑 닿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대했어.', '내 블레이즈 한 머리를 허락도 받지 않고 만졌어.' (나도 겪은 일이라 얼마나 기분이 더러운 줄 안다.), '내가 흑인인데 한국인 여자 친구를 만난다는 이유로 내 여자 친구는 끊임없이 성희롱에 시달렸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우리는 어떤 맥락에 있느냐에 따라 인종차별, 문화적 전유, 대상화와 무례함의 피해자가 되기 쉬운 만큼 가해자가 되기도 쉬운 세상에 산다. 비단 흑인에 대한 것뿐 아니라 아랍계와 동남아시안들을 생각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동남아시안들이 우리를 인종 차별했나?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의 문화를 전유하나. 평등은 끊임없이 영점을 맞춰야 하는 저울과 같은 것이다. 평등은 계급별로, 선한 이들에게만, 완전 무결한 인종 순으로 순차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뭐 대단히 인권운동가이거나 차별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장황한 글을 쓴 건 아니다. 솔직히 나도 너무 어렵고 이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 검색하고 공부하고, 또 글로 나 스스로에게 한 번 더 알려주기 위해 장황히 글을 쓴다. 블레이즈는 너무나도 멋진 헤어스타일이지만 이를 둘러싼 불평등과 문화적 전유의 맥락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다시는 블레이즈를 하게 되지는 못할 것 같다. 블레이즈 안 한다고 죽지 않는다. 블레이즈를 직접 하는 대신, 내 블레이즈를 멋지다고 칭찬해주었던 내 다정한 흑인 친구들이 더 자유로이 블레이즈를 향유할 수 있도록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영국에서의 머리카락 차별 반대에 서명하길 택한다.


이전 내 블레이즈로 기울어졌을 평등의 저울의 영점을 다시 맞추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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