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탈모
머리를 감을 때는 고개를 숙여 감는다. 앞이마에서부터, 숏컷을 했다면 바리깡으로 밀렸을 지점까지 풍성히 거품을 내서 두피를 시원하게 문지르는 것을 즐긴다. 2013년에는 더더욱 이를 즐겼다. 다른 어떤 신체 부위보다 두피가 가장 부드럽게 느껴졌다. 내 몸무게를 지탱하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하는 발, 학점을 받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정신없이 놀려야 하는 손, 몇 겹의 화장품을 견디는 얼굴과 같은 부위와 달리 두피는 성스럽게 숨겨진 얼마 남지 않은 태초의 살갗을 간직한 땅으로 느껴졌다. 머리 수풀을 해치고야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땅, 미지의 땅이기에 혹사당하거나 착취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피부를 간직한 곳. 머리를 감으며 손 끝에 보드랍게 닿는 두피를 느끼며 온 몸의 피부가 이곳 같이 부드럽기를 바랐다. 닳고 닳아가는 일상의 삶에서 나에게 이런 부드러운 구석이 남아있다는 것이 스스로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그 경이를 감각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나만의 리추얼처럼 유독 부드러운 왼쪽 뒤통수를 어루만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충만해진 기분으로 욕실을 나서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동생이 약간 놀란 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잠깐만 이게 뭐야."
"응? 왜?"
"잠깐만 드라이어 꺼봐."
"응, 왜?"
"나 잠깐만 언니 머리 좀 만져도 돼?"
"응응, 왜 무슨 이 같은 거 있어? 벌레 있어?" (예전에 이로 고생한 적이 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언니 잠깐 핸드폰 좀 줘봐."
동생은 내 머리를 뒤적이더니 뒤통수 사진을 하나 찍어 건넸다. 그곳에는 달에서 가장 큰 크레이터가 아닐까, 이곳이 분지라는 대구가 아닐까, 혹은 한라산의 백록담인건 아닐까 싶은 광경이 담겨 있었다.
무성한 까만 머리카락 사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덩그러니 놓인 500원 정도 크기의 새하얀 살점.
그것이 뭔지 알아채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탈모구나.'
"언니, 이거 어떻게 해."
동생의 말을 신호로 닫혀 있던 방 문을 열고 아빠가 나왔고, 나오자마자 동생이 사진을 찍기 위해 머릿속 숨겨졌던 탈모 지점을 발라당 까놓은 내 뒤통수를 마주했음이 분명한 신음 섞인 소리를 냈다.
"... 에이씨."
김 첨지도 아니고 김 첨지보다 한참은 어리면서 김 첨지만큼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속상한 마음을 이상하게 표현하고는 문을 쾅 닫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 아빠를 뒤로하고 웃음이 났다. 1원 짜리도, 10원 짜리도, 100원 짜리도 아니고 원형 탈모 부위가 500원짜리가 될 때까지 탈모인 걸 눈치 채지 못했다니. 그동안 미용실을 안 갔던 것도 아닌데 내 머리를 만져주던 미용사는 나를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내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원형 탈모에 대한 언급은 다정히 피한 것일까. '이따 만큼 큰 데 모를 리가 없겠지.'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걸 모닝 리추얼이랍시고 어루만지고 변태같이 좋아했다니. 내가 나를 돌보는 방식이 잘못되어도 한 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희고 동그란 두피. 그 어떤 결점도, 모공도 없는 백색의 피부. 모든 것을 리셋하려는 듯 점진적으로 세력을 확장해왔을 상실의 에너지. 머리카락을 잃고 있었음의 증거.
아니, 가만. 내가 잃은 것이 머리카락뿐이었나? 사실 나 스스로를 돌본다는 것이 가당키는 했던 걸까. 8개월 전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의 그림자가 이렇게 짙다는 것이, 도무지 일상성을 회복한다는 것이 가능하긴 한 것인지 모든 것이 허탈해서 웃음이 터졌다.
그날 이태원에서 처음 만났던 그는 키가 컸다. 키가 커서인지 늘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는데 아래를 봐서였을까 살짝은 구부정한 어깨도 싫지 않았다. 음악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난 가수의 이야기였다. 나와 동갑인 그였지만 내 또래들이 관심 없을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가 매력적이었다. 웃는 모습이 예뻤다. 술이 약한 탓인가 점점 잘생겨 보였다. 우리는 그 가수의 이야기를 하기에 조금 더 적당한 배경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시끌벅적한 펍에서 나와 그의 차를 향해 걸었고, 남산 터널을 지나 낙산공원으로 향했다. 처음 만난 남자의 차에 타는 일이 전에도 있었던가? 있었던 듯도 하지만 낮이 아니었나? 같은 생각을 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그에 대한 호기심은 너무도 강력해서 다른 모든 마음을 이내 압도했다. 낙산 공원의 성곽을 따라 걸어 오르는 동안 적당히 선선했던 바람은 점점 살짝 춥다 느껴졌다. 그도 내가 느끼는 온도를 알아챈듯했다. 추위를 녹일 것은 몸의 온도뿐이었다. 그는 내 어깨를 감쌌다. 그의 큰 손에서 뿜어지는 온기가 얇은 옷과 살갗을 뚫고 혈관을 타고 심장에 닿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곧 얼굴에까지 닿아 볼이 화끈해졌다. 겨울을 코 앞에 둔 10월의 어느 가을밤이었다.
그 밤의 온도와 습도, 그의 온기는 쉬이 잊히는 것이 아니었다. 잊히긴커녕 계속 더 궁금해졌다. 손 외의 그의 몸 다른 곳의 온도, 뺨의 온도, 가슴의 온도, 허리의 온도, 온몸 다른 구석구석의 온기가 궁금했다. 그도 그랬는지 우리는 곧 다시 만났다. 이후 우리는 수 차례를 더 만났다. 정확히 셀 수 없지만 만날 때마다 온몸으로 서로의 온도를 탐닉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지근하게 시작해 점점 뜨거워지는 이마, 따뜻한 귓불 뒤, 열렬했던 땀이 식어가는 서늘한 등, 격렬한 숨, 그 모든 온도를 나는 빠르게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점차 그의 낮도 원하게 되었다. 그는 달랐다. 사랑이 시작되기 전에 욕망이 먼저 시작한 관계에서 내 욕망이 사랑으로 향하려 하자 관계의 균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향하려 하는 내 마음에서 철저히 사랑은 배제하고 욕망을 조준해 영점을 조절하는 방법밖에 없음을 알았다. 그의 마음의 영점을 사랑으로 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 비대한 사람. 나를 파괴하는 관계를 갖고 싶지 않았다. 그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나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작지 않으므로 나를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그에게 이별 선언 아닌 이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덜 욕망하게 되지만 사랑을 키워 나갈 수 있을 매력을 지닌,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느껴지는 애인을 만들었다. 새로운 애인과의 관계 시작과 동시에 다시는 그를 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욕망이 이끌었던 전과 달리 나와 낮을 보내고 싶어 하는 것이 자명했을 때 밤을 함께하고 싶었던 새로운 애인과의 느리고, 느려서 나른하지만 평화롭던 연애는 갓 한 달을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월경이 없었다.
섹스 경력 n 년차. 월경이 없을 때의 불안한 마음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피임을 했냐 안 했느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늘 불안했으니까. '그럴 리가 없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늘 몸이 폭탄 같다는 생각을 해왔으니까. 섹스는 같이 하는데 임신 테스트기를 사는 것도, 늘 죄인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맘 졸이며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테스트를 하는 것도, 다시 테스트기를 버리거나 숨기는 것도 늘 내 몫이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임신 테스트기는 임신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았고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한 안정제를 약국에서 구매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안정제를 구매했는데, 이내 그 안정제가 이번엔 정말 임신 테스터로 기능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두 줄.
머리를 스치고 가는 날이 있었다. 몇 가지 장면도 덧붙었다. 밥을 두 그릇 이상 먹어도 허기가 지던 일, 한 겨울인데 자꾸 덥고 땀이 나던 일, 멍하게 졸음이 오던 일, 가슴이 묵직하게 느껴지던 일.
사람들은 '낙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어려운 문제라고 얘기하곤 했다. 아니, 전혀 어렵지 않다. 당사자가 되면 모든 것이 명료해진다. 낳을 수 없다. 수정란이 지금까지 고군분투한 내 삶은 먹어치우게 둘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불법이라고 하지만 국가가 종용하기도 했었던 임신 중단은 여전히 암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몇 번의 검색을 통해 어렵지 않게 수술을 해줄 의사가 있는 병원들을 찾을 수 있었다. 몸이 폭탄 같이 느껴진 적이 없는, 내 결정이 복잡한 결정이라고 생각할 지정 성별 남성이 있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곳의 여자 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두었다.
다만 돈이 문제였다. 임신 중단이 불법이 된 순간부터 의료 보험의 보장을 받을 수 없는 행위가 되었기에 수술비는 80~100만 원 초반을 형성한 듯했다.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었고 과외도 안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돈이 없었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일할 수 있기도 했겠지만 그동안 수정란이 분화한다면 병원비도, 내 몸의 상태도, 그리고 더 이상 수정란으로 부르기 어려운 그것과 이별하는 것도 몇 배는 힘들 것이란 것을 알았다. 다행히 그의 번호를 아직 가지고 있었다. 전화를 했다. 통화음이 한 번 울릴 때마다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다양한 옵션들을 고민했다.
'딸깍'
"어, 안녕? 무슨 일이야?"
그는 곧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를, 또다시 내가 그와 섹스라도 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한 침착한, 혹은 침착을 가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가 날 좀 도와줘야겠어."
어리둥절함이 전화 너머로 전해졌고 당황의 침묵이 길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나 임신을 했어. 근데 돈이 없어. 돈은 네가 줬으면 해."
전화를 끊고 오래 지나지 않아 친구와 함께 있었다는 그가 2시간을 달려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 근데 전개가 조금 이상했다. 결혼하자고, 낳자고 했다. 낳는 것은 난데 왜 그걸 그가 정리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잠깐 뒤로 하고 일단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병원에서 만난 의사는 그것이 생긴 지 6주 정도가 되었다 했다. 사진도 보여줬다. 가슴에 있다던 섬유선종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는 하얀 형체였다. 생각을 좀 더 해보고 오겠다고 이야기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는 낳자고, 결혼하자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주문으로 느껴지는 말들이었다. 그의 말 때문이 아니라, 다정한 백허그 때문이 아니라, 그와 나를 닮은 아이는 어떨 것이라는 꿈 결 같은 그의 말들 때문이 아니라, 그의 낮을 갖고 싶었던 욕망이 고개를 들어 그의 말에 넘어간 척했다. 그리고 모든 일이 숨 가쁘고 밀도 높게 일어났다. 그의 부모님을 만났고, 우리 부모님을 만나려다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울고 화냈고, 아빠가 알기 전에 이 모든 상황을 종료하라고 했고, 결국 아빠가 알게 되었으며, 아빠는 종교적 신념을 떠나 나의 인생과 본인의 체면을 고려하는 듯 임신 중단을 권했고, 반대의 상황에 부딪힌 것을 아신 그의 부모님이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은 당연히 그런 것이라며 그에게 낮은 태도로 나의 부모를 설득해 나갈 것을 이야기했고, 그와 지금 만나고 있다는 여자는 나에게 전화해 마치 내가 그들 사이에 끼어든 첩이고 내가 그를 그녀에게서 앗아가는 것처럼 말하며 나에게 임신 중단을 권했고, 나는 이제 막 사랑을 쌓아가던 애인에게 내가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했고, 애인은 상황이 정리되면 알려달라고 했다. 하나, 하나 기억을 서술하면 원고지가 몇 권은 필요할 또렷하게 생각나지만 지금 와서는 그 또렷한 기억들이 모두 내가 겪었던 것들이 맞긴 한가 싶은 희멀고 고루한 이야기들이다.
저 모든 일들은 예상했던 일이었는데, 결국 예상치 못한 일이 하나 생겼다. 정자 제공자이자 결혼을 하자던 그는 이제 막 시작한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자신의 '제안'을 번복했다. 또다시 허탈했다. 내가 처음부터 조용히 임신을 중단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돈이나 댈 것이지 진작 이럴 것을 왜 호기를 부려서 남의 부모 마음에 상처를 주나, 우리 부모가 몰라도 되었을 일인데 대체 왜 이 지경까지 상황을 만들었나, 왜 그것에 마음을 주게 했나, 왜 그것을 나의 아기가 될 존재로 생각하고 내 품 안에 안아 보는 날을 기대하게 했나, 나는 그리고 왜 쉽게 그 모든 것을 수행했나 싶어 화가 났다. 그가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러웠다. 그러나 아직 그를 혐오하긴 일렀다. 임신 중단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수술 전 동의서에 사인을 해줄 정자 제공자가 필요했다. 저런 소동들로 인해 1~2주가 늦어진 수술 일정에 수술 비용이 늘어난 것은 물론, 나와 그것이 헤어지는 데에 몸과 마음의 무리도 커졌기에 이 무리를 함께 감당할 사람이 필요했다. 필요를 다 채우고서는 맘껏 혐오하리라. 그전까지 그를 혐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이 나았다. 자아가 비대한 그를 믿어보자고 생각한 내 잘못된 판단이 함께 벌인 일이라는 생각을 다잡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돈과, 함께일 것을 요구했다.
그가 동의하자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엄마가 같이 있고 싶어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부모를 이 일에 연루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와 섹스 없이 온기만을 느끼며 안고 자는 하룻밤을 보내고 병원으로 향했다. 괴로웠다.
마취액이 몸으로 흘러들어올 때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이 되었구나 싶은 자책감, 전신 마취로 인한 구역감, 지금까지 하지 않은 월경을 배로 갚아 주려는 듯한 포궁이 흘려보내는 오로, 어디로 갔을지 모르는 그것, 그것이 내가 된 것 같은 기분, 수술 도중 내가 계속 눈물을 흘리며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자꾸 질 구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해서 내 손을 묶어 둘 수밖에 없었다는 죄책감을 심는 의사의 말, 자신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었던 것에 대한 배상으로 처방한 듯한 수면제. 수술이 끝나고 회복의 과정은 내게 오롯이 맡긴 채 며칠 뒤 친구와 예정했던 유럽 여행을 떠난 그.
이 모든 것이 괴로웠다.
낳은 것은 없었지만 조리를 해야 하는 것은 출산과 동일했다. 몸에 대한 조리는 덜 할 수 있지만, 마음과 영혼에 대한 조리는 더욱 필요했다. 불행이었던 내 임신에 대한 부모의 인지는 임신 중단 이후에는 역설적인 다행이 되어 내 몸은 충분한 돌봄과 쉼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과 영혼은 부모가 만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내 마음과 영혼을 돌보기에, 그것의 등장과 소멸은 우리 부모의 마음과 영혼에도 생채기를 남겼기 때문이었다.
그즈음 이 상황이 어떻게 종료되었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어온 잊고 있던 내 새로운 애인은, 내게는 절대 없던 일이 될 수 없는 이 모든 일을 없던 일처럼 대하자고 했다. 몸이 회복하면 중단되었던 우리의 관계를 다시 쌓아가자고. 지금은 글로도 풀어내고 있지만 당시에 타인에게 이야기할 수 없던 상황과 우울감, 자책감을 함께 감당해주던 새로 만난 연인은 몸의 회복과 함께 마음과 영혼의 회복을 함께 했다. 그는 나를 돌봤고, 나는 나를 돌보는 그는 괜찮은지를 살피며 사랑과 신뢰를 쌓아갔다. 그렇게 지난 8개월이었다.
그러니 그때 눈치챈 내 원형 탈모의 원인을, '에이씨'를 뱉어버린 아빠도,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던 나도, 내 원형 탈모를 발견하고 내게 처음 알려준 목격자인 동생도, 함께 서로를 알아가던 애인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 그때 떠나보낸 그것이 함께 가져갔구나. 500원짜리 동전만큼의 머리카락을 쥐고 떠난 그것. 그때 떠나보내지 않았으면, 내 머리카락만이 아니라 관절의 힘과 아직 펼치지 않았던 내 미래도 가져갔을 그것. 내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지만 미안하고 고맙게도 그만큼만을 나에게 요구하고 멸절한 나의 아기, 나의 천사, 나의 악마. 없던 일로 지우고 싶던 사건의 흔적, 떨어지지 않는 기억들.
그래서 불평할 수도 없었다. 그것에게서 내가 앗아간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저 감내해야 할 벌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그는 이런 일을 겪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약간의 억울함이 생기긴 했지만.
수술했던 곳과 가까운 전문 피부과를 찾았다. 두피에 스테로이드를 주사하며 건조한 톤으로 의사가 매주 나와서 주사 치료를 하자고 말했다. 처방전에 적힌 연고는 매일 발라주라고. 두피에 주사하는 스테로이드와 영양 주사는 백신과 달리 조금씩 골고루 액을 주입해서인지 여러 번 두피에 바늘이 꽂혔다 빠졌다를 반복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두피에 바늘이 꽂힐 때마다 눈물이 났다. 그것이 세상에 왔다가 가져간 작은 흔적마저 지워내는 것이 그것에게 미안했다. 임신 중단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미안한 마음까지 없을 수는 없다.
그날 이후 같은 문제로 다시 피부과를 찾지 않았다. 단지 매일 아침 머리를 감으며 보송하다고 두피를 만지던 리추얼을 스테로이드 연고를 아무것도 없는 그 부근에 바르는 것으로 대체했다. 아직 조금 더 그것의 흔적과 천천히 이별하고 싶었다. 어떻게 미안해해야 할지 몰라서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벌주는 마음으로 더 천천히 이별하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 내게 바란 것이 정말 그런 이별 인지, 이미 모든 것이 다 끝난 마당에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하는 행위 인지, 논리적 인과 관계가 없다던지 하는 것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날 연고를 바르다 아기의 솜털 같은 것이 손 끝에 느껴졌다.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었다. 동생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에는 하얗기만 하던 두피에 검은깨처럼 모공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머리카락들이 보이기까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머리카락들은 긴 겨울을 깨고 움트는 초 봄의 순처럼 올라오기 시작했다. 용서의 신호처럼, 또 그렇게 삶의 한 계절이 지났구나 싶게.
8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그것을 생각한다. 나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몸에 자리 잡는 그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낙태죄가 위헌 판정을 받은 날에, 여전히 개정하지 않는 낙태죄 관련 법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날에, 친구의 몸에 그것과 같은 존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는 날에, 그리고 끝내 그것들이 아기가 되어 세상에 오는 날에, 그것이었던 그 아기들이 다시 그것을 품을 수 있는 지정 성별 여자로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받는 날에. 머리를 감으며 이제는 머리카락이 소복이 들어찬 그곳을 만지며 그것을 기린다. 조용히 읊조려본다. '아가야'. 그것은 날 용서했을까? 아주 잠깐이지만 내가 그것을 사랑했다는 것을 기억할까? 더이상 부드럽지 않은 두피 위에 자란 손에 닿는 수 많은 머리카락이 그것의 답변이길 내심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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