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불해야 할 대가는 시술비만이 아니다
바람이 소복이 들던 나의 이효리, 혹은 해그리드 머리. (참고: 5화, 해그리드 아니고 이효리인데요.)
2008년의 여름이 지나 땀이 많이 나지 않는 선선한 가을이 오는 것이 머리칼과 두피에 닿는 공기의 온도로 느껴졌다. '그래, 때가 되었군.' 성인이라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두 번째 헤어스타일로 나의 오랜 숙원 스타일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것은 헤어 블레이즈 (hair braids). 그 당시, 그리고 지금도 심심치 않게 레게머리라고 불리거나 흑인 머리라고 불리기도 하는 땋아서 그 땋은 모양을 유지하는 헤어스타일.
사실 고등학교 졸업 후 첫 헤어스타일이 블레이즈였으면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학 전, 잔뜩 애매한 시기인 1월, 블레이즈를 하고 싶어 싸이월드 클럽 (네이버 카페 같은)에서 예전부터 눈 여겨보던 영등포의 한 붙임&레게머리 전문점이라는 곳의 가격을 알아봤다. 그 당시 2~30만 원가량이었던, 감당하기 녹록지 않은 시술 비용을 벌고자 호텔 연회장 알바를 했다. 인생 첫 아르바이트 경험이었는데, 머리카락 덕에 경험한 비정규 일용직 노동자로서의 세상은 모멸적이었다. 해당 노동에 필요한 복장은 노동자가 직접 구매해서 갖춰야 하고, 근로계약서는 없으며, 법정 휴게 시간을 적절히 갖지 못하고, 어쩌다 휴식 시간을 갖더라도 손님들 눈에 띄지 않도록 계단 한 구석에서 가져야 하며, 지친 몸으로 일하느라 동작이 굼떠지면 '너희는 서서 일할 가치도 없다'며 기어서 바닥의 쓰레기를 주으라는 관리자를 감내해야 하는 세상. 연말 특수를 맞은 호텔 연회장은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에 나와있는 근로 종료 시간 이후 한 참이 지날 때까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퇴근하지 못하게 했고, 중간에 가면 임금을 줄 수 없다고 윽박질렀으며, 실제 내 눈앞에서 돈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을 봤다. 아침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휴게 시간 없이 일하며 손에 쥐었던 6만 원의 반은, 새벽녘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비에 쓰였고, '이런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블레이즈를 하고 싶은 마음도 야간 할증 미터기가 오르는 속도처럼 빠르게 사라져 갔다.
다 사라진 줄 알았던 블레이즈에 대한 열망은 생각보다 역사가 깊어 흔적도 없이 종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곱슬머리가 콤플렉스였던 나는 우피 골드버그를 보고 인종을 뛰어넘는 동질감을 느꼈었고, (참고: 2화, 저런 마법에는 돈이 든답니다.) 어찌 보면 그때부터 흑인들이 그들의 머리카락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됐었다. 뭐, 동질감과 별개로 내 눈에 상당히 힙한 스타일이기도 했다. 솔직히 너무 예쁘고 가모를 섞으면 컬러도 다양하게 나올 수 있고 숱도 훨씬 풍성해진다. 길에서 블레이즈를 한 사람을 마주칠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점도 관종인 나에게는 꼭 블레이즈를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으로 결국 나는 과외비로 모은 쌈짓돈을 들고 영등포의 미용실로 향했다.
블레이즈의 종류는 참 다양하다. 두피에 머리카락을 붙여서 땋는 콘로우 (완전 콘로우도 있고, 앞쪽 반이나 사이드만 땋는 반 콘로우가 있다), 굵은 형태로 뭉친 듯 땋는 드레드, 원래 머리카락과 가모를 함께 땋는 형태의 박스 블레이즈 (땋는 머리카락의 섹션을 촘촘히 하는지 굵게 하는지에 따라 또 엄청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탄생한다), 두피에 머리를 붙여 땋은 콘로우에 가모를 걸어서 묶는 방식으로 시술하는 블레이언, 그리고 앞서 언급한 헤어스타일을 다양한 형태로 믹스한 온갖 종류의 블레이즈가 존재한다. 보통 가모와 함께 땋는데, 가모(얀(yarn), 수카(suka)라고도 한다)의 컬러 선택을 변주하면 끝도 없이 응용이 가능한 스타일인 것이다.
내 첫 아프로 블레이즈는 블레이언이었다. 직접 내 머리를 땋는 것보다 이미 땋아진 가모가 훨씬 굵기가 얇기 때문에 얇은 블레이즈가 나오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낯선 동네 영등포로 가서, 약간 허름해 보이는 건물 2층에 위치한 샵을 찾았다. 하고 싶은 헤어스타일을 말하고, 가장 얇은 굵기의, 허리까지 오는 길이의 이미 땋아진 모양의 가모를 2가지 색으로 선택했다. 주로 쓸 검은색과, 포인트가 될 블론드 가모였다. 가모를 고르고서는 시술이 시작되었다. 머리카락을 두피에 붙여 땋는 콘로우는 기초 공사였기 때문에 단단히 땋아내야 했다. 컬이 많이 들어간 펌을 하고 있었기에 여기까진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다음부터 급 빡세 졌는데, 콘로우에 다시 가모로 머리를 엮어 내는 과정은 시간을 많이 요했다. 어떻게 보면 콘로우로 땋은 머리에 머리카락을 새로 심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 촘촘히 되어야 하기에, 총 6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모가 점점 더 머리에 주렁주렁 열려감에 따라 내 고개는 점점 더 뒤로 젖혀졌다. 정확히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목에 가해지는 무게에 상당히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기다린 시간이 무색지 않게 내 첫 레게 머리(?)가 완성되었다.
대만족. 스스로 보기에 너무 마음에 들고 예뻤다. 저 머리를 하고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온 그날, 미선은 생각했던 것보다 잘 어울린다며, 전보다 머리가 차분해졌다며 얌전해 보인다고(?) 좋아했다. 그렇게 '엄마 인증 공식 차분한 머리'이자 모두가 쳐다보는 머리를 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나 주변 친구들은 이미 익숙해서인지 '야, 너 내가 머리카락으로 장난치지 말랬지 ㅋㅋㅋㅋㅋㅋ'나 '우와~ 이건 또 어떻게 한 거야.' 정도의 싫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런데 일상에서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겪는 상황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어느 날은 지하철에서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스멀스멀 기분 나쁜 손길이 느껴졌다.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내 머리를 만지고 있는 것이었다. 기분이 정말 너무, 뭐랄까, 더러웠다.
"저기요, 지금 뭐하세요?"
"아... 아니... 그냥 너무 신기해서."
"신기하면 막 만져도 돼요?"
"아니, 너무 신기하니까 그렇지 ㅎㅎㅎ 이런 걸 처음 봐서. 이제 아가씨가 알았으니 한 번 만져봐도 돼요?"
그 아주머니는 신기함 때문에 자신이 타인의 신체를 무례하게 만지고 있다는 것조차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무단으로 만지다 걸렸으니 이젠 만지게 해 달라? 허락받고 만지는 것도 너무 이상한 일이다. 일단 묻던 안 묻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져봐야 할 것으로 모르는 사람이 내 머리카락을 대하는 것이니까.
"아니요. 절대 안 만지셨으면 좋겠고 함부로 모르는 사람 만지는 일 앞으로도 안 하셨으면 좋겠네요."
"아니, 그럼 왜 신기하게 머리를 그렇게 했어요."
... 왓?
관심을 받는 것과 대상화되어 대해지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불쾌한 기분이 머리카락을 스멀스멀 타고 두피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일은 (그 아주머니 홀로 사회에서 상당히 유리된 미친 사람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듯) 한 번뿐이 아니라, 그 후 두어 번 더 일어났다. 처음에 비해 덜 충격적이라 자세히 그 모든 정황이 기억나진 않지만 황당하고 불쾌한 심정은 동일했다. 타인의 무례함을 감내하는 것. 내가 원하는 머리를 하는 첫 번째 대가였다.
두 번째도 있냐고? 물론. 두 번째 대가는 세트로 오는데 아픔과 가려움이다.
단단하게 가모를 고정해야 하다 보니 그 예전 미선이 내 머리를 꽉 묶던 것 이상으로 (참고: 1화. 머리카락에 대한 첫 기억) 내 머리는 팽팽하게 당겨져 엮여있었고 거기에 매달린 족히 한 근은 될 것 같은 가모는 두피에 무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두피 쪽에 빨갛게 염증이 올라왔다. 염증이 있으니 아프고 따갑지만 동시에 아무는 과정에서 가렵기도 했다. 콘로우를 땋은 두피는 섹션이 나뉘어 경작된 밭고랑 같았고 함부로 건드려 긁을 수도 없는 것이 정말 고역이었다. 이 괴로움이 뭔지 잘 모를 테니 고통을 토로할 사람도 많이 없었다. 때로 나는 성난 황소처럼, 혹은 진흙 목욕하는 돼지처럼, 집 한 구석의 벽이나 모서리에 머리를 쿵쿵 박아대며 긁지 못하는 괴로움을 해소했다. 남들이 보기엔 자해였겠지만 나에겐 자위와 같던 벽에 머리 박기는 나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혹은 면봉 팁에 살짝 연고를 묻혀 무성한 가모 사이를 헤치고 염증 부위를 콕콕 찍어주고는 했다.
세 번째는 감을 수 없음의 괴로움이다. 드라이 샴푸가 있다곤 하지만 당시엔 구하기가 어려웠다. 구한다 한들 드라이샴푸는 뿌리고 나면 분사된 샴푸가 고루 퍼지도록 빗질을 해줘야 하는데 빗질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아예 안 감았냐고? 그건 아닌데, 버틸 수 있는 만큼은 버렸다. 이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틴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나에겐 이미 아픔과 염증으로 인한 가려움이 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머리의 유지 기간이 줄어들 것을 감수하면서도 머리를 감을 수밖에 없었다. 가모를 포함한 머리숱은 양손으로 잡아내야 할 정도였다. 스타벅스 그란데 사이즈 머그컵 정도 둘레로 잡히는 숱. 머리를 감을 때는 누군가 감겨주지 않는 이상 가뜩이나 무거운 가모가 물을 먹어 더 무거워지기 때문에 목이 지나치게 뒤로 꺾이지 않도록 고개를 숙여 감아야 했다. 그 역시도 괴롭긴 마찬가지였는데, 위대한 중력에 가모는 굴복했고 내 정수리는 자꾸 바닥으로 바닥으로 향했다. 그럼 이제 샴푸를 펌핑해 북적북적 거품을 내서 시원하게 감을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가모는, 아니 이 실뭉치는 샴푸도 빨아들였다. 블랙홀 같은 기세로 빨려 들어가는 샴푸. 속절없이 타 들어가는 마음. 샴푸와 물을 잔뜩 머금고 침잠하는 정수리. 아 - 통재라. 그 와중에 머리를 감을 때에는 콘로우가 땋아져 있는 머리카락 부분이 아니라 소가 경작하듯 두피의 고랑을 따라 머리를 감아야 했다. 행여 샴푸가 (땋아져 있는 머리에 남을 가능성이 이미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남기라도 하면 염증이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서너 배의 시간을 들여 머리를 헹궈야 했다. 정말 힘들었던 머리 감기 대모험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고 이젠 냄새가 나지 않도록 말리는 작업이 필요한데 머리카락은 웬만한 숏 패딩 정도의 길이이고... 도톰하기도 거의 그렇구...^^... 그래서 말리는데 한 참 걸리곤 했다.
그럼에도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서 시술한 머리를 최대한 오래 누리고 싶어서 금이야 옥이야 머리에 달린 실뭉치를 관리했다. 그래서 거의 한 달을 머리를 유지했다. 여기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모먼트가 오고 만다. 탈모 증상 없는 인간의 머리는 아무것도 안 해도 하루에 5-60개가 빠지고 한 달 동안은 1.5천 개의 머리가 빠지는데 땋아놓은 머리에선 머리가 빠지긴 빠진 머리가 계속 함께 땋여 있기 때문에 그대로 머리에 남는다. 그러니까 빠진 머리카락들의 하얀 모근 1.5천 개가 머리에 머문다는 얘기다. 상당히 비듬 같다. 처음엔 나도 비듬인 줄 알고 정말 놀랐는데 비듬은 아니지만 비듬보다 더 비듬 같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졌다.
'이 머리를 그만 하겠어.'
이 선언으로 엄마 미선과 동생은 각각 첫째 딸 년과 언니 새끼의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하는 만큼 오래 걸렸던 머리는 해체(?)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3시간가량을 하염없이 가모를 풀어내는 데에 썼다. 가모를 풀어내고 땋았던 머리를 풀어내니 빠졌지만 빠진 것이 아니었던 빠진 머리카락들도 그때서야 해방을 맞고 방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가모로 불렸던 일반 쓰레기도 수북이 쌓였다. 오랜 시간 땋여있어, 땋여있던 모양대로 떡진 (인정하기 싫지만 이 단어를 쓸 수밖에 없다.) 머리는 정말 아프로 헤어처럼 속박의 시간을 내재화하고 화석 같은 형태로 움직임 하나 없이 내 두피 위에 달려있었다.
머리를 감으며 해방감을 느꼈다. 잔뜩 떡진 머리라 내리 두 번을 감아야 했지만, 고개를 숙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샴푸를 세 번만 펌핑해도 됐고, 그렇게 나온 샴푸에서 거품이 북적북적 올라오는 것도, 두피를 쒸원하게 문지르며 감을 수 있던 것도, 머리 말리는 시간이 길지 않았던 것도 상쾌했다. 몸무게도 가벼워졌고!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난 그날 밤의 기억을 통해 레게머리의 한 가지 더 불편한 점이 생각났는데, 머리에 가모가 잔뜩있으니 누워서 잘때 머리가 배기는 느낌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날 밤은 그 배기는 느낌 없이 아무렇게나 뒤척여도 가볍고 보송한 느낌으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며칠 뒤 미용실에 가서 날개뼈까지 오던 머리를 학교 다닐 때는 꼭 그렇게 하라고 해도 절대 안 하던 짧은 단발로 잘랐다. 미용실에서는 머리카락을 그 동안 어떻게 혹사해온 것이냐며 경추 부근에서 내 머리를 하나로 묶더니 일말의 망설임 없는 호쾌한 가위질로 싹둑 머리를 잘라냈다.
다시는 블레이언을 하지 않으리라는 결심과 함께, 그때서야 내 첫 블레이즈의 시절이 마무리되었다.
절대 안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히 1년 뒤 2009년 태국에서, 2014년 동아프리카 부룬디에서 나는 두 번이나 더 블레이즈를 한다. 그 두 번의 경험은 처음과 비슷한 듯 달랐기에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 때의 경험과 함께 레게머리를 둘러 싼 문화적 전유 혹은 문화적 도용 (Cultural Appropriation) 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려 한다.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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