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에 마련된 책장에서 감각의 기록물을 꺼내 읽다.
이별이 있을 때마다 캄캄한 우주에 별이 하나씩 수놓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 별들은 자신을 찾아달라고 그리도 화사하게 빛나는 것이랬다. 추억 저 편에서 다시 발견될 그 날 만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때로 빛이 그렇게 이리 넘어오면 눈에서는 유성우가 하염없이 마음에 쏟아진다. 그렇게 누군가는 나의 별이 된다. 그렇기에 밤안개 넘어 천체를 그윽히 바라보면 한 켠이 따스해지고 아련해지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기록은 은은함과 아련함이 특징이라면 가끔은 이상적이고 매력적인 감각의 미래 기록을 확신하고는 한다. 말하자면 수집가의 정신과도 같이 담아둘 감각을 계획하는 것이다. 그래도 미래는 경험이 페스츄리처럼 고운 결들이 겹겹이 쌓여야 구성된다. 즉, 퇴근하며 바라본 밤하늘에서 아직 이별하지 않은 이를 그릴 별이 스쳐간 것은 주변에서 아른거리던 여러 이별의 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일 내리 스치는 멀어짐은 사실 사람보다는 반려 동물이었다. 그 시절은 순수한 보편성을 담보하기에 말보단 교감을 앞세운 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려운 형편의 누구나가 그렇듯 이르게 어른성을 체득했기에 길바닥에 드러누워 기를 쓰고 떼를 쓰는 것은 가히 고난의 기술이라 여겼다. 그래도 반려 동물 만은 포기하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는지 기어코 적당한 기준선을 삼아 얻어낸 '까미'를 기억한다.
당시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성숙도의 까미는 앙증맞은 검은색을 지니고 있어서 까미였다. 부모님께서 지인에게 기적처럼 얻어온 아이였다. 어렵사리 동행하게 된 그 종종 걸음은 한없이 반가운 꼬리마냥 촐랑거려도 마냥 보기가 좋았던 것 같다(-사실 자식들의 반려 동물에 대한 요구에 반대하는 대개의 부모들처럼 우리 부모님 당신들께서 우리 까미를 더 귀여워하셨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은 다소 오래가지 않았다.
인연이 스쳐간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스쳐가면서 남긴 흔적에서 추억의 생채기가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물리력은 속도에 비례하기에 급속하게 까만 생명체를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어렸던 나는 아직까지도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나치게 단순간, 집에 온지 3일이라는 시간 만에 까미는 야속한 병의 발진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갓 젖을 뗀 어린 강아지들이 앓으면 쉬이 생명이라는 선물을 반환해야 하는 질환이었다. 한동안은 그 아이의 고통을 발견한 것이 하필이면 나였음이 어찌나 원망스러웠는지.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와 반겨줄 꼬리로 마음을 간질이며 문을 열어 젖혔다. 그러나 단차가 있는 신발장 끝이 허전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 넓지도 않은 협소한 방에서 가픈 호흡을 발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선한 날씨를 머금은 방바닥에 힘없이 중력에 빨려가는 까미. 항상 돌봄 받기에 익숙하던 나는 돌보기에는 영 경험과 능력이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눈망울을 적시며 딱딱하던 바닥에서 벗어나도록 방석을 준비해주는 정도. 이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방석에 올려주려 하던 찰나 가녀린 목이 지나친 각도로 떨어지는 것이 손에 확 느껴졌다. 사람으로서는 고열 정도가 태반적인 반응이라 알고 있기에 외형적인 변화는 일순간 흠칫하게 만들었다. 더이상 당자의 소관이 아님을 직관적으로 깨닫고는 부모님께 전화드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물리적 분리를 전파적 연결로 억지로 이어놓았기에 특별히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고, 기다림만이 가소로운 희망이었다.
낑낑거리는 된소리가 목보다 깊은 곳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듯했다. 3일 밖에 안되었는데도 친구로서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가장 먼저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는 행동 단위를 잘게 쪼개어 '그 때 우리 까미에게 이렇게 해줬으면 어땠을까?'라는 물음 꼬리를 계속 붙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만큼은 모든 게 내 탓이었다. 그렇게도 바라던 아이를 삶을 공유하는 방법도 모른 채 데려왔다는 것이 내 몹쓸 짓이었다고 여겼다.
약 1시간 가량을 시간줄을 아슬아슬하게 타고서야 부분적 기다림의 끝을 맞았다. 주위에 개를 기른 경험이 있던 분에게 동물병원부터 시작해서 맡기게 되었다. 남은 기다림도 시작되었다. '우리 까미가 혹시라도 죽으면 어떡하지?', '내가 그 때 잘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등의 한탄과 반추도 시작되었다.
그 뒤에 온 까미에 대한 소식을 부모님을 거쳐 들었다. 조금 더 늦었으면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회복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지인이 까미와 함께할 거라고 들었다. 그리고 나와는 다시 마주치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그간의 짧은 설렘도, 어리숙한 동거도, 촉촉한 콧망울과의 인연도 모두 끝났다고 들었다.
처음으로 가슴 시린 이별을 했다. 이 때는 몰랐지만 후에 애처로운 별들에 까미의 눈빛이 겹치고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몸의 분리가 아닌 마음의 분리를 앓는다는 것은 쓸쓸한 노을과 가련하게 맴도는 별들의 감수성에 예민해지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후로는 이를 깨달아서 밤길을 걸을 때 고개가 젖혀졌고, 윤동주가 된 듯이 별 하나에 이별 하나를 세어보고는 하게 되었다.
나의 별에 너가 그려지기에, 너의 별에도 내가 그려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