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공기처럼 무색하게 스쳐간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은 때로 곽티슈에서 휴지를 뽑아내듯 연쇄적인 작용이다. 자그맣고 기다란 나무막대기만 보면 해리포터의 요상한 지팡이가 기억나듯이. 그리고 그 지팡이만 떠올리면 어릴적 꿈꾸던 지니의 요술램프가 떠오르는 것처럼. 연쇄 상기 작용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되어 생각 속을 감돌고 만다(-그렇게 한없이 기억을 헤매이다 밤잠을 못이루고 불면을 헤엄치던 때도 많았던 고로). 과연 오늘은 어떤 감각이 흥분시킬지. 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이미 매료시켜버린 것이 있었다.
지(知)감
이라고 하는 것은 메타인지적인 감각(-생물학적 감각이 아닌 사전적 정의로서의)으로 볼 수 있는데 동물들도 가능한 생물학적 감각보다는 더 고차원적이지 않을까 사료된다(-부족한 지식 덕택에 동물의 생각 여부를 알 수 없으나). 어려서부터 비인간적 물질 일체에서 느끼는 인간적 우월성(-그렇다고 생명 경시 사상에 동조하지 않으며, 오히려 생명을 비롯하여 사실 무기물들에게도 최대한의 존중을 갖춘다)이 '지감'에 대한 호기심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반성(反省, Reflection)'에 대해 기억나게 해준 '복통(腹痛)'과 함께 하려 한다.
칸트나 헤겔, 존 듀이와 같은 철학자들(-반성의 개념이 미묘하게 다르지만)뿐만 아니라 철학 위로 먼지를 덮어둔 이들에게도 '반성'이라는 개념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익숙하다. 각별히 본인에게는 반성에 대한 때묻은 애착이 있는데, 전문에서도 일부 언급되지만 본인의 마음 안에는 쇼펜하우어 엇비슷한 염세적인 사상이 일정부분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본인은 인정받는 철학가도 문필가도 아니기에 쇼펜하우어의 펜촉 끝에도 못미치겠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변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희미한 희망을 갖고 있고, 그 희미한 희망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한없이 필요한 것이 바로 반성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의지적 결단을 갖기를 원하나 그것은 본인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있고, 그에 앞서서 해야 할 것은 자기 반성을 통한 정(正)방향(-아직도 의무론과 목적론에 대한 진리가 확실치 않으나, 개인적 입장으로는 의무론이 공리적으로나 의무적으로나 유익하다고 여기기에)으로의 자기 진보였다. 그렇지만 노력에 비해 아직도 부족하다는 게 본인의 도덕적 세계관에서는 정설로 여겨지는 중이다.
그렇다고 아예 버려진 도덕성으로 휘감아진 인생은 아니었고 그나마의 진보는 분명히 있었다. 당일의 이야기는 긴 서두에 비해 사소한 통증으로 시작되는데, 그것이 바로 복통이었다.
복통과의 동거
복통은 본인의 일평생을 동고동락(-'락'의 이유는 당일의 주제)하며 괴롭혀온 악랄한 당사자였다. 지금까지도 무리없이 일방적 애착 전선 이상무로 이어져오고 있다. 사실 내시경 검사가 시급해보이기도 하지만 괜한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는 게 걱정스럽기도 하다.
학창시절 내내 아마 복통으로 학교 화장실을 이용해 본 적이 손에 꼽거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유는 다양하나 추려보자면 하나는 지극히 타인과 내외하는 성격, 하나는 생리 작용에 소요되는 긴 시간이었다. 아마 이러한 생활이 복통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영향에 대해 소개하자면 소화가 자주 불량이라던지, 복부팽만 현상이 반복된다던지, 위장염의 빈번한 발생이라던지 하는 것들이다. 대체로 장이라는 녀석이 예민한 기관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어서 그냥 그런가 싶기도 한데 쉽게 넘길 상황도 아니었다.
어느정도 익숙해져도 될 무렵으로 한창 패기 넉넉할 대학생 때였다. 그동안 쌓아온 결과가 이만저만 나쁘지 않았고, 그런대로 볼만한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자만할 때이기도 했다. 그 시절 심경을 풀어보자면 원하는 바 이루어질 것이고, 되려는 바 될 것이라고 여겼었다. 이대로만 지내고자 했고, 더 이상 잘나고자 하지도 않았다.
대략 그런 시기쯤에 어느 한낮부터 대뜸 배 속에서 누군가 조금은 무른 밤송이를 장에 던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도 자주 앓던 터라 별 대수롭지 않다고 고통과 생각을 함께 물러냈다. 그런데 뜻과는 다르게 몸은 스스로의 할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수업을 들으며 꾸역꾸역 참아내고 기숙사 침실로 몸을 뉘였다. 그런데도 밤송이가 송곳이 되도록 통증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뿐더러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만 갔다.
(잠시 덧붙이면) 당시 첫 반독립을 하였고 연고가 없으면서 방문 이력도 없는 지역으로 향했었다. 원체 외로움에 허덕이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그런 상황이 무리는 없었다. 축구, 테니스 등 동아리를 3개나 가입할 정도로 활발히 했기에 지나가면서 인사하는 이는 꽤 있었다. 문제는 마음의 심연을 교류할 수 있는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딱히 원치도 않긴 하지만 사실 외로움을 안타는 것보단 깊은 내면으로 가둘 뿐이어서 문득 감성을 적시기도 하는 것이 주책이다. 주로 그럴 때가 다름아닌 몸에 이상이 생겨 아플 때다.
(다시 돌아와서) 적당히도 아니고 정도가 심해지니 심히 외로움이 몰려왔다. 케어를 받을 마땅한 곳도 없었고, 마땅한 이도 없었으며, 마땅한 상황도 아니었다. 평소 느끼던 고통을 넘어서니 죽을 맛으로 결국 병원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보통 절약 정신이 투철한 게 아니라 학교에서 병원까지 거리는 걸어서 가는 것이 본인의 짠돌이 관념의 철칙이었는데 나서면서부터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저릿한 느낌이 들어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택시에 올라 겨우겨우 이동하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급하게 진료를 받고 누워서 링거를 맞기 시작했다.
초라함을 깨닫고 반성의 길로
막상 진단은 장염이었지만 한 방울씩 떨어지는 영양제가 마지막 잎새의 낙화같다는 과장된 상상에 젖어들었다. 누워서 팔의 한쪽을 무방비하게 간호사에게 내준 순간부터 '내가 이렇게 나약한 존재'인가 싶었다. 그동안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냥 살았나 싶었다. 성적 좀 잘나와봐야 보다 잘난 성적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수두룩했고, 다른 사람보다 착하게 살았다 해봐야 겨우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진 페르소나일 뿐이었다.
나약한 인간으로서 극심한 복통을 겪고 나니 자신의 한없이 낮고 처량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제서야 생각난 것이 바로 '반성'이었다.
반성은 대상을 비춰주는 거울로 초라한 실태를 직면하게 만들고 부족함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거울을 잃어버린 시간동안 진실한 대면을 할 수 없어서 자기 진보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선을 정면으로 옮기니 거울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울에서 마주한 현실은 닦지 않은 부스럼들이 이곳저곳 일어난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이따금 좀먹어 가던 단점을 긁어냈다. 뿌리가 바뀌고 있었다. 이제 나쁘지 않은 인간 정도는 된 것 같았다.
그 날의 복통이 없었다면 여전하게 제 잘난 맛에 취해 덧없는 주사나 부리고 있었을 법하다. 지나치게 관련없어 보이는 '복통'과 '반성'. 하지만 몰라서 그렇지 알고보면 사소한 것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