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8년 동안 하루의 시작과 끝에 안정감을 책임져왔던 삶의 터전이 자리를 옮긴지 석 달 가량 되었다. 비록 그다지도 머지 않은 위치로 별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주위를 둘러싼 내외부적 환경이 의외로 달랐다. 특히 여러 차이를 실감하면서도 근래 들어 생활 양상에 영향을 적잖게 미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산이었다. 본래부터 자연무위의 정신을 어느정도 동경하고는 있었으므로 그로의 회귀 본능이 꿈틀대는 것은 맞았다. 그럼에도 원숭이가 유리병에 놓인 바나나를 놓지 못하듯 세속의 꼬리를 붙들고 찌듦의 말미를 따라가는 나였다. 그런데 산이라는 외부적 환경의 변화는 심경이라는 내부적 요인에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지나치게 가빴던 숨에 잠사니마 여유가 트이도록 도와주었다.
주위를 둘러싼 산은 매일이 다채로웠다. 아침과 밤을 가리지 않고 지나칠 때마다 눈을 화폭 삼아 산이 붓칠을 해대면 그 순간이 곧 관람관이었다. 해가 내리쬐는 일조량과 방향, 녹색 악보에 옮겨지는 빗방울 음표, 반월의 반쪽자리 빛, 그리고 미세먼지의 양.
미세먼지?
그랬다. 아쉬울 때는 항상 미세먼지가 원근감을 무시해버리는 날이었다. 제 나름대로 존재해 있는 미세먼지에게는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지만 그래도 일단은 사람에게 의로운 물질은 아닌 것으로 알기에 그녀석이 당당히 가림막을 담당하는 날이면 아쉬운 하루가 시작되고 말았다.
작은 것들의 반란
언제부터였는지 미니멀리즘이나 마이크로한 삶을 지향할 때도 있는 우리가 마이크로한 입자나 물질에 당하기도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거나, 미세먼지라거나. 코로나 시대를 실감하기 전에 이미 미세먼지의 진출로부터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뉴노멀들의 등장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기성세대들은 대놓고 의식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누구도 아닌 당신들이 해놓은 처사라고도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다. 심지어 기성세대 입장에서 핏기 어린 나조차도 미세먼지라는 새 기준의 등장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미세먼지는 말그대로 미세하다. 그런데 개인주의 사회에서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려는지 그들이 모이면 감당못할 안개 비슷한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 그러나 안개와는 사뭇 다르다. 안개도 우리의 시력을 방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적어도 불미스러운 기분이 들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마주한 날이면 하루가 괜히 불미스러웠다.
몇 해를 거슬러 지방에 머물던 즈음, 이를 더 선명하게 경험했다. 수도권과 수백 키로 가야하는 남부였는데 그곳에서 본 밤하늘은 동국(同國)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보통 맑음은 푸른 빛 바다가 오색찬란한 속살을 보여줄 때나 써왔던 단어였음에도 지방의 밤하늘에는 각별히 사용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설명할 길이 전혀 없었으니까. 지역과 위치의 차이가 이리도 극명한 대조를 불러 일으킬 조건인가. 물음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웅장한 고비사막의 면모를 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듯 이 현상을 이해해야 하는건가.
결자해지(結者解之)
아무래도 사람들(-나를 포함한)의 행태에 따른 양상 변화가 분명한 것 같다. 적어도 자연에게는 의지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당최 선량한지 악랄한지 분간할 수 없는 의지라는 것만은 존재하잖는가. 자연에 인위를 가하는 것이 죄라고 규정짓지는 않겠다. 말그대로 그냥 우리때문인지 덕분인 것 같다고. 이 사실과 어떻게 대면할지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것.
하지만 혹시나 이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터인데, 나와 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다. 결자해지. 매듭은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하고, 용변은 일 본 사람이 처리해야 하며, 스스로 벌린 일은 장본인이 해결해야하지 않겠는가. 아이들도 '혼자서도 잘해요'라는데 직접 하지 않고서야 어찌 선생이라 칭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