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홀 May 06. 2020

감각의 책장-먼지 털기

무의식에 마련된 책장에서 감각의 기록물을 꺼내 읽다.

감각의 책장과 감각기록물

경이롭고 황홀한 피사체에 대한 경험은 아무든지 자연 입력되는 하나의 축복이다. 때로는 구름이 잔잔히 우는 새벽 은은한 선율을 보내는 달빛일지도. 누군가에게는 한아름 천진한 웃음을 머금은 어린아이의 뛰놀음인지도. 이 은혜스런 광경들은 뗄 수 없는 감각(-사람에 따른 편차가 존재하지만서도)으로 머리를 감돌게 된다. 그 순간을 포착하여 하나둘 감각의 책장을 모르는 새 채워나가는 것은 순수한 영혼이 지워주는 의무감(-혹은 즐거움)과 같지 않을까. 


물밀듯 넘치는 감각을 의도적으로 선별하기는 마땅치 않으나 그 뒤에 차근히 찾아보면 자연스레 묻어져 나온다. 것을 감각기록물이라 부를 수 있겠다(-추억 혹은 기억은 이와 인과이려나 동의이려나). 으레 짐작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벅찬 감격들. 사람들에게는 오감 외에 지(知)감, 심(心)감 등의 정신적 감각이 함께 날을 곤두세우고 있다. 되려 얻지 않을래야 얻지 않을 수 없는, 어떻게 보면 필연적이라는 특성이 부여되리라 본다.


황홀했던 감각의 경험을 읽다.

한 번은 무등산의 순진무구한 공기들을 헤치고 올라가 언뜻 모형 같기도 한 도시를 아득히 내려다본 기억이 있다. 광역시격의 대도시임에도 감각을 느끼는 환경이 바뀌니 둥그런 칼데라 호 안에 머무르는 숭고한 아틀란티스가 보였던 것은 왜였을까. 그때 나의 감각의 책장에 담긴 감각기록물이 여태 막혀진 삶을 지날 때다 문득 꺼내졌고 그 광활함 새록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는 황홀경에 빠지고 만다. 그 날의 기록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못박힘이었고, 그렇게 아직도 생생한 장면으로 드문드문 살아 숨쉰다.


절대 가벼이 여기지 아니하도록

이렇듯 무난한 하루에도 유난한 순간이 그득 담기기도 하고, 특별한 시간이 흐르나 특별히 남기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래도 책장 가득 쌓아짐에도 자금 하나 들이지 않으니 한치 앞가림 안되는 사업보다야 훤칠한 미래성을 보장한다(-필자의 견일 뿐이다). 


초라한 부연을 했어도 사실 감각이 저장한 경험은 때로 운명의 당락을 좌우할 만큼 간단한 대상이 아니다. 애당초 류를 견인한 대사들은 선험적인 요소가 필히 전제될 터. 함부로 여기지 못할 우리의 모든 결과의 동인이 되기 때문이다.


감각의 기억들은 하나를 꽂아두면 그새를 못참고 다른 하나가 옆에 자리한다. 그만큼 생산량이 어마어마하여 한 번 자리를 차지하면 의식을 다해 찾아내는 일이 여간 없다. 바꿔 말하면 가끔 불러 들여오는 책장 속 감각기록물 하나의 고귀한 가치가, 무등산의 순진무구한 공기들의 미세한 떨림이, 망상과 정상의 저울질을 하는 철학가의 지감이 이끌어낸 존재론적 사유가, 바로  메마른 일상에 떨림을 자아내는 역할을 해낸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은 이 책장에 푸시시한 먼지가 희뿌옇게 쌓이도록 방치해왔다(-그보다 대놓지 않고 무신경하다는 말이 어울리지만). 그러나 이제부터는 감각의 책장을 고이 닦고 그 안에 담긴 아름다운 감각기록물을 아련하게 꺼내보려 한다. 들뜨지만,

절대 가벼이 여겨지지 아니하도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