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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할 때 왜 정부 돈 안 받았어?

by 잰걸음

Wife asks...

남편은 나와는 달리 지갑을 여는 걸 싫어한다.

발렛비 내는 걸 혐오하고, 당근 거래를 사랑한다.

그리고 무료로 받는 서비스나 제품을 좋다고 들고 와서는 나한테 쓸모없는 거 넙죽넙죽 받지 말라고 핀잔 들을 때도 종종 있다.


그런 남편이 신기하게도 창업을 할 때 국가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사업계획서만 잘 쓰면 몇 천만 원을 공짜로 받을 수 있는데, 왜 마다했을까.


창업할 때 왜 정부 돈 안 받았어?




Husband says...

내가 구매대행을 했을 때 당시 사업자명이 메디톡톡이었어. 구매대행으로 시작은 했지만 아빠가 의사이다 보니까 뭐 같이 할만한 의료 사업이 있을까 싶어서 좀 먼 미래를 생각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지. 그때 한창 코로나 때여서 비대면 의료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있었고 마침 국가에서도 규제 샌드박스 같은 특별한 면제 사항을 특정 기간 동안 주는 기회가 있었어. 내가 IT 기획 쪽에 있었으니까 시스템을 만들고 선생님들을 섭외 가능할 것 같으니까 정부 지원 자금을 받아서 한번 해볼까 싶더라고.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는 의사도 함께 할 수 있는 글로벌 24시간 비대면 서비스를 꿈꾸면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어. 그때는 챗GPT 활성화되기 전이니까 누구 도움 없이 내가 작성을 해야 했었지. 한 3개월은 걸리더라고. 무료 컨설팅도 받고 해서 제출했는데 자금 받는 데는 실패했어.


그러다가 몇 달 후에 그 비대면 의료 서비스에 대해서 얘기가 나오는데 정부 관계자가 언급하는 이야기가 내 사업계획서 내용이랑 너무 똑같은 거야! 어떤 문장은 진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얘기하더라고. 이 사람들이 내 사업계획서를 차용해서 쓴 거 아닌가? 국가가 이래도 되나? 앞으로는 사업계획서에 100% 다 오픈하면 안 되겠네... 등등 별의별 생각이 들더라고. 나름 공을 들여서 쓴 거라서 더 아쉬움이 컸나봐.


게다가 그때 당시 사업계획서 무료 컨설팅을 예약했는데 그 컨설턴트라는 사람이 나를 컨설팅한다고 하면서 내 사업계획서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나한테 하는 얘기가 만약 예비 창업 지원 자금을 받으면 얼마 받을 거니까 우리한테 컨설팅 비용을 얼마 떼어줘라... 같은 잡소리를 하더라고. 본인이 그런 창업 자금 심사를 몇 군데 하니까 A가 안되면 B에서 되도록 해서 지원금 받게 할 테니 5백을 달라고. 심지어 자기가 사업계획서를 써주겠데. 자기가 쓰고 자기가 뽑는거지.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한테 정나미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 국가 시스템 자체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점에서 환멸감이 느껴지더라고.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이고 국가 자금 사이좋게 나눠갖자는 그 마인드셋이 혐오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 하지만 공공연하게 이런 일들이 생긴다는 거 자체가 밥맛이야.


그래서 그 후 예창패나 초창패처럼 국가 자금 받는 건 관심이 확 떨어졌고 대신 공간을 저렴하게 임대해 주는 지원 사업에는 응모해서 다행히 통과되었지. 아, 참 그건 메디톡톡이 아니라 여행사로 했구나ㅋ 덕분에 한 달에 1만 원 정도만 내고 1년 6개월 동안 창업지원센터 출근 잘했지~


아무튼 어쨌든 사업계획서에 쓴 비대면 의료 서비스는 나가리가 되었지만 어쨌든 메디톡톡이라는 사업자 아래 올렸던 구매대행, 역직구 등 물품들은 꾸준히 조금씩 나갔지. 부동산, 경매에 신경 쓰느라 완전히 놓고 있었는데 요즘 갑자기 주문이 느는데 그만큼 리뷰도 쌓이니까 비싼 것도 나가더라고. 지금은 아주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지만 이름에 걸맞게 의료기기나 건기식 등 건강 관련된 아이템도 꼭 해볼 생각이야.



Wife thinks...

이렇게 들으면 남편이 약간 강직해 보일 수 있는데,

수년 뒤 나한테는 여자가 창업하면 유리하다면서 예창패 지원하라고 종용했다.

이 모순은 뭐람.


분명 사업계획서 또 수정하기 귀찮았음에 한 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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