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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여행사까지 차려서 인도네시아 출장도 간 거야?

by 잰걸음

Wife asks...

구매대행 사업에 이어서 남편은 여행사까지 만들었다.

웬 생뚱맞은 여행사? 싶었지만

한의대 준비로 억눌렀던 너의 욕망을 다 펼쳐봐...라는 심정으로 난 그냥 관망하고 있었다.


어쩌다 여행사까지 차려서 인도네시아 출장까지 갔어?


Husband says...

메디톡톡이라는 사업자명 하에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꿈꿨지만 사업계획서 단계에서 접게 되었고 구매대행만 진행하고 있다가 이걸로는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침 그때가 코로나가 사그라들면서 여행 수요가 높아지고 한국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많이 늘어나기 시작했지. 외국인은 많이 상대해 봤고 내가 구매대행하면서 글로벌 플랫폼은 대륙별로 다 계정을 만들었으니 한국 여행 상품을 만들어서 올리면 괜찮겠다 싶었어.


그래서 사업을 이래저래 구상하면서 한국 관광공사를 많이 접촉하게 되는데 해외에서 여행업 관련 컨퍼런스 기회가 있길래 지원을 했어. 비용도 국가에서 참가 비용을 일부 지원해 줬기 때문에 부담도 덜했지. 다행히 선발이 되어서 내가 지원했던 인도네시아에 가게 되었어.


인도네시아는 처음 가봤는데 와... 거기도 만만치 않더라.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수천 대의 오토바이 때문에 렌터카가 불가능하지. 오토바이들 사이 간격이 10cm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다들 아슬아슬하게 달리는데 이러다 죽겠다 싶더라고. 매연도 엄청 나서 오토바이 한번 타면 목이 잠기고 코가 막히고 난리도 아니야. 숙소도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엄청 싼 곳을 발견해서 예약을 했더니만 싼 게 비지떡이라도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찌린내가 머리 아플 정도로 진동하더라고. 괜히 너무 싼 것만 찾다가 이렇게 되었구나 싶고 우리 와이프였으면 절대 이런데 예약 안 했을 텐데... 하며 니 생각 많이 나더라고ㅋ


다음 날 행사장에 도착한 후 오토바이 헬멧으로 눌린 머리를 화장실에서 정리하고 나와서 부스를 어설프게나마 설치를 했지. 영어로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영업을 하려니 나도 오랜만에 영어를 하려다 보니까 힘들더라고. 한국관광공사에서 붙여준 현지인 아르바이트생이 대학생이었는데 걔가 나보다 영어를 잘했어.


첫날은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하루를 말아 드셨고 그래도 이틀 때 되니까 말이 좀 틔이는 것 같더라고. 그러다가 갑자기 현지 행사 담당자가 나보고 앞에 무대에 올라가서 너네 회사를 한번 홍보해 봐라고 제안이 들어왔어. 내가 뭐 잘 나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하려고 했던 업체들이 펑크를 내서 땜빵이 필요했나 봐. 그래서 얼떨결에 올라가서 뭐라고 얘기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내 담당 아르바이트생이 자기랑 얘기할 때보다 무대 위에서 훨씬 더 영어를 잘했다고 하더라고ㅋ


재밌는 건 내가 출장 준비를 하면서 캐리어 하나를 더 준비해서 그 안에 미니약과를 가득 품고 갔는데 그게 대박이 났어. 홍보용으로 나눠주다 보니 맛보고 다시 와서 받아가거나 아니면 더 많은 사람들을 끌고 찾아오기도 했지. 덕분에 가장 인기 있는 부스 중 하나가 되었어. 사실 실속은 없지만 그 약과 때문이라도 사람들이 와서 말 걸어주고 하는 게 신이 나더라고. 그리고 행사 중간중간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오는데 그때 내가 노래를 따라부르며 열창했고 좀처럼 안 추는 춤까지 춰서 더 시선을 끌어모았지.


인도네시아 출장 경험도 그렇고 다양한 업계 사람들도 만나고 내가 직접 기획, 로고 & 웹사이트 제작, 영업 등을 다 해보다 보니 그게 나한테 뼈와 살이 되더라고. 결국 여행업을 접은 이유가 이 필드는 외부 변수가 너무 많더라는 거야. 사업체의 규모와 상관없이 정치 이슈 같은 외부 변수를 만나면 속수무책이더라고. 사실 어찌 보면 이게 나에게는 가장 값진 배움 중에 하나지. 사업 분야를 선택할 때 외부 변수가 어느 정도인지, 내가 컨트롤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봐야 하구나라는.


그때의 경험이 또 어떤 길과 연결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신기한 건 그때 미니약과를 얻어갔던 현지 가죽 공장 사장님이 1주일 전에 갑자기 연락이 왔더라고. 그러면서 동업 제안을 하는데 재밌더라고. 딱 타이밍도 내가 제조 쪽으로 관심이 있을 때라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Wife thinks...

남편은 한의대 준비를 할 때도, 한창 구매대행 사업을 할 때도 혼자였다.

여행사 차린 후에야 사람들을 좀 만나고,

인도네시아 출장 갔다 온 이후 뭔가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가시적인 성과는 당시에는 없었지만 나름 사업가로서 내실을 다지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또 모르지... 진짜 인도네시아랑 앞으로 뭘 하게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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