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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마틴 스코세이지: 거장의 초상

중꺾마의 삶을 실천하는 감독

by becky

제 머릿속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별 어려움 없이 굵직한 영화를 많이 만들어 온 감독, 최근에는 제작에도 많이 참여하며 젊은 감독들의 작품들에 코멘트를 아끼지 않는 자애로운 영화인, 그리고 어린 막내딸의 틱톡에 자주 등장하는 자상한 아버지의 느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의 작품은 꽤 봤지만 전체적인 세계관이나 스타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거장인 건 어렴풋이 알겠는데 최애 감독까지는 아닌...)

애플TV의 다큐시리즈 <마틴 스코세이지: 거장의 초상 Mr. Scorsese> 은 50년 넘게 영화감독으로 활동해 온 스콜세지의 일생과 작품들을 5부작으로 "축약"하여 담았습니다. 활동한 세월이 길고 영화사에 끼친 영향도 크기에 5회도 그다지 길다고 느껴지지 않은, 너무 흥미로운 다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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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회는 대략 10년 정도씩의 간격으로 그의 일생과 주요작을 담고 있습니다.

[1회] ~70년대 초 <우드스탁>, <비열한 거리> 유년시절, 영화 학도에서 영화인으로, 드니로와의 만남

[2회] 70년대 <택시 드라이버>, <뉴욕 뉴욕> 비평적인 성공을 얻었지만 개인적으로 방황하던 시기

[3회] 80년대 <분노의 주먹>, <컬러 오브 머니>,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4회] 90년대 <좋은 친구들>, <케이프 피어>, <순수의 시대>, <카지노>, <쿤둔>

[5회] 00년대 <갱스 오브 뉴욕>(레오와의 만남), <애비에이터>, <디파티드>,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다큐는 기본적으로 스콜세지 본인의 인터뷰, 그리고 지인(가족, 친구), 영화인(자주 협업해 온 작가, 매니저, 배우 등)들의 인터뷰들을 바탕으로 그의 커리어 변곡점들을 보여줍니다.

드니 빌뇌브나 스티븐 스필버그 등 유명한 감독들이 어렸을 때부터 스토리보드를 그리거나 스스로 카메라를 잡고 영화를 찍었던 얘기들은 참 유명한데요. 스콜세지도 마찬가지였지만 그가 조금 달랐던 점은 이탈리아 이민자이자 노동자계급 가정에서 자랐다는 점이었습니다. 작은 몸집에 천식이 있었는데 집에는 에어컨이 없어, 여름에 제대로 숨쉬기 위해 에어컨이 상시 켜져 있던 극장에서 지내며 무슨 영화든 봤다는 일화는 당시 그의 생활과 성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학구적이지는 않았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만으로 뉴욕대학교에 들어가서 다양한 영화와 다큐 등을 만든 젊은 시절은 처음 보는 모습이라 더 흥미로웠고요.


제가 스콜세지에게 갖고 있었던 선입견 중 하나는 초반부터 성공했고, 영화가 거의 잘 되어서 큰 어려움 없이 차기작을 계속 만들어왔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렇지만은 않았고 스튜디오와의 갈등도 당연히 많았으며 변하는 대중의 취향에 따라 작품스타일에 대한 고민도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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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그는 많은 부분 스튜디오와 타협했지만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런 영화 인생에서 그를 잡아주었던 동반자이자 협업자는 대표적으로 로버트 드니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였습니다.

스크린샷 2025-10-30 093453.png 내가 궁금해서 간단히 살펴본 감독님의 주요작 글로벌 박스오피스(단위: 백만$/ 빨간색-드니로 주연, 노란색-레오 주연)

그들을 단순히 자주 출연한 주연배우, 친분이 깊은 배우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특히 로버트 드니로는 스콜세지가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을 때 <분노의 주먹> <코미디의 왕> 등의 작품 연출을 직접 제안하고, 본인 영화의 캐릭터 개발에도 깊이 참여하는 등 스콜세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스콜세지가 꿈꿔 오던 프로젝트 중 하나인 <갱스 오브 뉴욕> 제작을 가능케 해 준 스타였으며, 흥행력과 연기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그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독립적으로 투자금을 마련해 스콜세지에게 창작의 자유를 안겨주었습니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스콜세지 최고 흥행작이며, <디파티드>에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레오는 그의 최근작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죠.

다큐는 <플라워 킬링 문> (2023) 제작 시기 정도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현재까지도 차기작이 줄을 서 있으며 후배들 작품 제작에도 활발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다음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그와 함께 80, 90년대를 주름잡던 스탠리 큐브릭, 브라이언 드 팔마, 거스 반 산트, 피터 위어 감독 등이 조금은 뜸하거나 돌아가신 걸 생각해 보면 더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영화 커리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긴 하지만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개인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가족이나 지인들을 대하는 모습이 점점 성숙해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이 부분도 참 좋았습니다. 영화와 영화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정말 재밌게 볼 수 있는 다큐, 스콜세지의 중꺾마 이야기 <마틴 스코세이지: 거장의 초상> 추천합니다. (애플TV,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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