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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ㄱㅍㅇ Jun 30. 2022

6월의 산책

눈으로 찍는 사진



거리를 걷고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길 만한 장면을 찾아다니며 느낀 것은 '특별한 하루'라는 건 없다는 것이다. 개인에게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나머지 세상에선 평소와 똑같은 일상이 벌어진다.


완벽하게 포토제닉한 장면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해도, 혹은 그런 장면을 찾았으나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특별한 순간은 언제나 찾아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오늘 약 한 시간 반 동안의 산책 동안 도로나 벽에 페인트 칠을 하는 사람을 여럿 목격했다. 도로에 페인트로 숫자를 쓰고 있는 장면이 매우 마음에 들었으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코앞에서 찍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냥 지나쳤다. 그 다음 꽤 커다란 빌라 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했을 땐, 이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눅눅했던 공기에 약간의 볕이 든 오늘, 주말이 끝난 월요일 낮에 서둘러 페인트칠을 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전에는 빛바랜 무늬를 지우고 새로 색을 입혀 도시를 가꾸자고 말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리라. 갑자기 내가 도시에 살고 있음이 실감 나며 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하지만 새롭게 칠해지고 있는 도로든 건물이든 이미 내 발걸음에서 10분 이상 뒤처진 상태였다. 다시 돌아갈까, 횡단 신호를 기다리며 고민했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싫어하는 나의 성정과 만약 돌아간다 해도 페인트칠이 이미 끝나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고민을 털어내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처음 보는 거리를 걸으면서 사진에 담고 싶은 장면들을 많이 목격했다. 양옆이 뚫린 창고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 비닐 헤어 캡을 그대로 쓴 채 미용실 입구에 서 있는 사람, 새로 지어 올린 오피스텔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 등.


하지만 정작 내 핸드폰에 담긴 건 재건축 문구가 쓰인 대형 현수막과 어느 판타지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공원 입구 정도였다. 이미 말했듯 나는 사람을 동의 없이 찍는 것을 꺼리고 그렇게 하면서까지 찍고 싶은 장면인가를 생각하다가 결국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래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언젠가 다시 그만큼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할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생각은 새로운 길, 낯선 사람, 궁극적으로 내일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나는 본래 비관적인 사람이었으나 이런 장면들이 나를 계속 살게 한다. 열사병에 걸려도 좋으니 산책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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