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보이

소년은 희망하지 않는다

by 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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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희망하지 않는다. 개인적이고 절박한 희망을 품기엔 이미 모든 미래가 눈앞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소년은 너무도 희망찬 존재이므로 능동적으로 희망할 필요도, 능력도 없다. 희망은 오직 절망에서만 피어난다. 문이 하나씩 닫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몇 안 남은 길이라도 갈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소년 역시 절망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몸에 황금이 발리기 전까지만 해도. 소년은 아직 남성성의 특권을 자각하거나 누려본 적이 없고, 속세의 기준으로 미래를 점치지도 않는다. 이렇게 자유롭고 아름답던 소년은 권력자,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분노 혹은 욕망을 사게 되고 결국 그의 몸에는 황금이 발린다. 한 손 가득 황금빛 페인트를 퍼 올리는 하인의 모습을 보며 소년은 깨닫는다. 이것이 희망의 본모습임을.


이제 소년의 마음속에서 다른 문들은 닫히고, 저 멀리 황금빛으로 빛나는 문 하나만이 남는다. 소년은 잠시 황금에 흠뻑 젖은 순간을 만끽한다. 아낌없이 머리카락 사이사이까지 헤집어진 소년을 바라보는 희망찬 시선을 느낀다. 몇 번의 플래시가 그 찰나의 영광에 빛을 더한다.


곧 조명이 꺼지고, 번들거리는 황금 소년은 물티슈를 든 하인들에 둘러싸인다. 이들은 권력자의 도자기를 닦듯 꼼꼼하게 황금을 지워낸다. 그 광채에 어울리지 않는 먼지는 바로 소년이었으므로. 집으로 돌아간 소년은 샤워기 아래에서 간헐적으로 빛나는 황금의 입자를 본다. 황금의 물결이 붙잡을 수도 없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간다.



몇 주 뒤, 거리를 거닐던 소년은 가판대에서 한 잡지를 보게 된다. 표지엔 자신의 얼굴이 있다. 온통 황금에 둘러싸인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자신. 그 얼굴은 당당하기보단 주눅 들어 보인다. 잠시 얻은 황금빛 영광을 바래본 적도 없으며, 그렇기에 받을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얼굴이다. 그 아래엔 황금빛 글씨가 소년의 목을 가로지른다.


“The Golden Boy by Albert Watson”


소년은 절망한다. 그제야 비로소, 익명의 소년은 희망의 상징이 된다. 이를 아직 모르는 소년은 서둘러 자리를 뜬다. 더 이상의 산책은 없다. 더 이상의 자유도 없다. 저 멀리 보이는 황금빛 문만이 있을 뿐이다. 잡지를 집어 가는 사람들의 손을 뒤로 한 소년의 걸음이 빨라진다. 웃음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소년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희망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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