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울빵 이야기
빵순이가 어렸을 때는 빵을 자주 먹지 못했던 거 같다. 빵의 기억이 금방 떠오르지는 않는 걸 보면. 학교에서 가끔 임원 엄마들이 돌리는 단체 크림빵 정도가, 고작 끄집어내고 또 끄집어낸 나의 첫 기억. 집에서는 엄마가 차려주시는 삼시 세끼만 먹었지 간식이라고 해봐야 "엄마, 백 원만." 하고 사 먹는 새우깡이 전부였을까. 그만큼 우리 집은 여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엄마가 시내 외출을 하고 오는 길이면 엄마의 손엔 어김없이 커다란 모카빵이 들려있었다.
커피 냄새가 나는 커피색의 아주 큰 빵. 모카빵을 본 나의 첫인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흔히 볼 수 있는 빵이란 단팥빵 아니면 크림빵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모카빵은 정말 컸다. 안타깝게도 우리 삼 남매가 함께 먹기엔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한꺼번에 달려들면 순식간이었다. 자르지도 않고 셋이 옹기종이 앉아서 손으로 푹푹 뜯어먹었다. 겉은 파삭한 비스킷 토핑으로 싸여서 속은 보들보들 부드러운 빵결로 가득 찬. 건포도가 드문드문 박힌 모카빵. 내 핵심 기억 속의 첫 빵이다. 어른들만의 특권이었던 달콤한 커피에 대한 어린이의 로망이었을까. 나는 그 커피맛 빵이 참 좋았다.
우리 셋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부분은 단연 겉에 있는 토핑이다. 비스킷의 바삭한 식감과 고소함과 달달함의 조화에 손과 입이 절로 향했던 빵의 겉 부분. 그 껍질부터 재빠르게 사라졌다. 부드러운 빵이 남으면 건포도 박힌 부위만 빼고 빵만 쏙쏙 골라 먹는 거다. 마지막에 남는 건 항상 건포도가 박혔던 부분. 지금은 건포도 없는 모카빵은 상상할 수도 없는데 그땐 왜 그렇게 싫었는지. 그렇게 몇 가닥의 빵만 남으면 배가 찬 우리 셋은 뒤로 물러나고, 남은 건 아마도 엄마 차지였을 것이다. 엄마의 그 뒷모습 마저 기억이 나지 않는 나는 정말 무심한 딸이었다.
내가 커갈수록 빵의 세계는 점점 발전했다.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생기고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화려한 빵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때까지 나의 원픽은 모카빵이었다. 일단 넉넉한 사이즈가 마음에 들었고 부드러운 커피 향이 좋았으니까. 그렇게 대학교 4학년 빵순이가 된 나는 2학기부터 본격적인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항공사 면접을 보러 다녔다. 졸업 후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계속 면접을 봤다. 그리고 계속 떨어졌다. 불안한 마음에 플랜 B를 만들어야 했는데 좋아하는 빵을 만들면 행복할 거 같아서 제과제빵 자격증을 따기로 한다. 학원을 등록하고 드디어 내 손으로 빵을 만들 수 있구나 설레었다. 필기시험부터 합격하고 실기 시험을 준비를 하던 도중 두바이에서 먼저 최종 합격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내 사랑 모카빵은 배우지 못하고 두바이로 떠나게 되었다.
한국으로 휴가를 나오기 전이면 엄마는 항상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셨다. 한식 반찬을 기대하셨을 테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이 모카빵이었다. 밥은 안 먹고 빵만 먹는 딸이 걱정은 되고, 먹고 싶은 건 먹여주고 싶었던 우리 엄마는 내가 도착하는 날 아침이면 늘 유기농 마트로 향했다. 회원권이 있는 친구와 함께 ‘성분 좋은’ 모카빵을 사기 위해서. 울산 공항으로 데리러 나오실 때는, 그 옛날 외출을 하고 돌아오실 때처럼 한 손에는 빵을 들고 계셨다. 그럼 나는 아빠차 뒤에서 모카빵을 푹푹 뜯어먹으며 편안하게 집으로 실려 가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호사스러운 대접이다. 오직 엄마 아빠만이 해줄 수 있는. 그땐 왜 몰랐을까.
두바이로 돌아가는 날엔 나만의 루틴이 있었다. 인천공항에서의 빵 쇼핑. 비행기 출발 시간이 워낙 늦어서 운이 좋으면 하나 남은 모카빵을 살 수 있었다. 아니면 다른 빵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고. 소중한 빵들이 혹시나 캐리어에서 눌려질까 절대 가방 안에 넣지 않았다. 번거로워도 따로 들었고 비행기에서도 선반 위에 안전하게 올려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눌려진 빵은 절대 용납할 수 없으니. 휴가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는 늘 뒤섞인 감정으로 버거웠는데, 허전하고 공허했던 마음을 나는 빵을 담으며 채웠던 거 같다. 먹으면 금방 사라질 빵이었지만, 휴가 뒤 첫 비행까지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그 시간에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이 빵이었다. 일종의 위로였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 시드니 비행을 자주 했는데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호텔 근처에만 있었지 시내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 어느 날 따라 간 한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두바이와는 너무 달랐다. 그냥 한국이었다. 한국의 어느 읍내에 온 느낌. 한국 마트는 물론이고 분식집, 냉면집, 만두집, 거기에 한국 빵집도 있었다. 옛날 동네 빵집 같은 그런 빵집. 빵 종류도 그랬다. 이민온 어르신들이 좋아하실만한 옛날 빵들. 거기서 모카빵을 다시 만났고 내 표정만으로도 좋아하는 걸 알아차린 남편은 그때부터 늘 모카빵을 가슴에 안고 나를 기다렸다. 울 엄마의 사랑을 이 사람이 대신 준 건가. 그래서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을 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애써 꺼낸 기억의 조각들이 모이니 나의 소울푸드가 보인다.
한때는 나의 주식이었던 빵을 이제는 잘 먹지 못한다. 불규칙하고 부족했던 수면과 건강하지 못했던 식습관. 막살았던 과거의 나로 인해 밀가루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많이 먹으면 속이 쓰리고 피부 두드러기가 심해진다. 그런 이유로 일 년 가까이 빵을 완전히 끊어 보기도 했었다. 요즘 글을 쓰면서 다시 찾게 되었지만. 그래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잘 돌볼 수 있다는 것. 평소엔 건강한 음식으로 나를 먹이고, 기회가 오면 스트레스 없이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긴다. 소울푸드의 귀함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이번 겨울 방학 때는 아들이랑 울산에 가야겠다. 그리고 내려가기 전에 엄마한테 전화해야지. 모카빵이 먹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