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보이는 내면아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는 어떤 순간이 있다.
명료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지만, 어렴풋이 그려지는 그때의 내 기분과 감정상태들.
나의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어서 오래전 기억과 감정을 억지로 끌고 가지고 와보는 때가 있다.
딸 셋 중 둘째인 나는 늘 중간에서 위아래로 치이는 딸이었다.
엄마 아빠는, 딸이지만 사내아이 성격 같다는 이유로 편하다며 언니와 동생보다 나를 더 편히 대했다.
그런데 그것이 커보니 나에게 상처로 남아있는 감정이 되었다.
넌 잘 참으니까, 넌 착하니까, 넌 성격이 둥글둥글하니까, 넌 이해를 잘하니까, 넌 내 말을 잘 들어주니까
넌 안 예민하니까... 등등..
그땐 내가 만든 내가 아닌 부모님이 만들어서 씌워준 틀에 내가 맞춰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달까.
순순히 그 기대에 따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자라고 보니, 웬걸. 내가 이렇게도 예민한 사람인지 30대가 되어서나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낯선 것을 싫어하고, 내가 생각하는 틀에 어긋나면 스트레스받아하며,
내 것에 대한 강력한 집착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땐 그걸 몰랐을까 알아도 모른 채 했던 걸까?
그냥 모른채하고 살아야만 내가 편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마치 생존본능처럼.
그때 내가 받은 상처의 씨앗들이 지금 내 내면에서 불안과 압박으로 남아있다.
그렇다고 뭐 크게 나의 삶을 살아가는데 큰 대미지를 주는 건 아니지만 그 작게 남아있는 불씨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시간들이 종종 있다.
이걸 알아채는 데에도 몇 년이 걸렸다.
인지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지금도 여전히 받아들여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난 이런 사람이에요,
난이래요, 저래요. 하고 단정 지으며 자신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내면에 양면성, 다양성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마치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 넌 이런 사람이야, 넌 이래야 해 마치 가스라이팅하듯이 이야기하면
왠지, 반박심이 생긴다. 나도 날 잘 모르는데, 어떻게 저렇게 단정 지어 이야기하지?
어릴 때 그 감정의 상처들이 만들어낸 후유증으로 내게 남은 비판적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덕에 지금 내가 엄마가 되어
전혀 다른 성향의 두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조심하는 부분이 그런 것이다.
넌 오빠니까, 넌 동생이니까, 넌 이러니까... 등등.. 내가 아이들의 틀을 씌워 주지 않는다.
그게 무엇이 되었건 아이들이 원하고, 말하고 싶은 것들을 솔직하게 말하게 내버려 둔다.
자신의 취향, 자신의 관심사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 누구의 눈치를 보며 맞추게 하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게 가장 힘들고 긴 여정의 숙제였다.
죽을 때까지 찾아야 하는 숙제인데,
이왕이면 빠르게 나를 찾아내서 내가 행복하게 쓰일 곳, 가치로운 것을 할 행운을 빨리 만나게 해 주고픈 엄마의 마음이다.
둘째 아이를 낳고, 첫째와 둘째 육아를 힘겨워하는 나에게
전화로 우리 엄마는 대뜸 사과를 하셨다.
"지금은 방송 보니 오은영인가 뭔가, 아이들 잘 키우는 법도 알려주고 상담도해주고 모르면 그런 거 보면서 방법을 찾아봐라 얼마나 좋니, (부산사투리) 나 때는 그런 거도 없고, 다섯 식구 살림살기 팍팍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너한테 상처를 많이 줬다. 미안하다. 그땐 삶이 너무 팍팍했다."
난 이미 지나간 일 어쩌겠냐며, 이해한다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혼자 펑펑 울었다.
그 말 한마디가 내 맘 속에 남아있는 그 상처의 불씨들을 순식간에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누구나 몸이 힘들고 마음이 힘들면 겨를이 없다.
다섯 식구, 시어머니까지 모시며 살림에 일까지 억척스레 살며 세 딸을 키워낸 우리 엄마.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물론, 엄마가 했던 양육방식이 잘못된 부분도 많다. 난 많이 맞으며 자랐고, 엄마의 불안이 고스란히 우리들에게 전염되었다. 그때 남아있는 상처들이 영원히 사라지진 않는다.
그래도, 엄마가 마음속에 나에게 미안함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감사했다.
생체기처럼 남아버린 내 어린 시절의 먹먹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일을 겪은 후 난 우리 아이들에게 더 열심히 사과한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공감하며 사과한다.
나도 받아보았으니 진정성 있는 사과의 위대한 힘을 알기에. 어리지만 결코 가벼이 지나치지 않으려 한다.
우리 엄마도, 올바른 양육에 대한 롤모델이 없었다. 다 처음 겪는 삶인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 같다.
나 또한 그랬듯이.
누구나 다 처음 사는 삶이기에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걸 받아들이고 나면, 조금은 숨통 트이는 삶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숙제 같은 삶의 고비고비들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난 잘 해내리라, 날 믿는다. 엄마와 같은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에 오늘도 최선을 다해 본다.
최근 SNS를 보며 가장 인상 깊고 마음깊이 남겨진 구절들로
내 글을 급히 마무리해보려 한다.
'힘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나를 강하게 만들 시련을 주셨어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더니, 내가 풀어야 할 문제들을 주셨어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더니, 극복해야 할 위험들을 주셨어요'
'사랑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도와야 할 상처받은 사람들을 보내주셨어요'
내 기도는 모두 응답받았습니다.
기도하면, 내 안의 강한 능력치를 발현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내 안의 무한한 가능성들을 잘 쓰일 수 있는 곳에 나의 발길이 닿길 바라며...
모두 평안한 하루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