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뛰고 있지?
중학교 시절 교내 마라톤대회가 있었다.
그땐 그냥 운동장 달리기 하듯 아주 크지 않은 학교행사였고,
전교 아이들도 뛰는 둥 마는 둥 참가에 의의를 둔 이벤트였는데,
난 학년에서 3등으로 들어왔다. 그게 나의 달리기의 첫 결과물이었다.
그때 난 왜 그렇게 열심히 뛰었을까?
난 운동선수도 아니었고, 그냥 단지 운동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늘 운동장에서 공으로 놀고 뛰어다니는 그런 여학생이었다.
운동을 잘하기보단 좋아하는 쪽에 가깝던 내가 마라톤으로 상을 받다니?
단상에 올라간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땐 공부로 상한 번 받아보지 못한 내가
전교생 앞 단상에서 상장과 부상을 받는 순간이 참 좋았다.
그때의 그 추억 덕분에 달리기가 그냥 이유 없이 좋아졌다.
20대엔 종종 10km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두세 번 참가할 때마다 다음엔 안 해야지^^ 했던 나다.
그런데 40이 된 지금 갑자기 뛰고 싶어졌다.
머리가 복잡하면 산책은 곧 잘했지만,
최근 난 스스로 극한의 상황(다리는 아프고 숨차고 뒤에서 누가 날 잡아끄는 것 같은)으로
날 몰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면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 할 나의 태도이지만 말이다...
불혹,
나이를 따지고 싶진 않지만
그 연령마다 심경의 소용돌이 같은 것들이 생기는 느낌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지
누구와 비교하면 끝이 없고,
그래서 늘 나는 나의 상황, 나의 인생 흐름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그 집중이 흐려지기 시작하며, 알 수 없는 혼란의 카오스가 생긴다.
누가 보면 두 아이 키우며,
취미생활 하며, 책 읽고, 편하게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겠지만
내 성격상 지금 이런 단조로운 상황들이 무언가 위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엄마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해내는 것이 진짜 나인가? 진짜 나는 어디 있지?
이런 상황에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2025년, 지금을 살고 있다.
그래서 시작한 글쓰기도 내 삶에 작은 변화 중에 하나였다.
어릴 때부터 난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내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친구가 없어도 나 스스로가 그렇게 힘들거나 싫지 않았다.
그때부터 난 내 안의, 나만의 친구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내 안의 소란이 일어나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서 푸는 것보단
혼자 생각하고, 몸을 좀 피곤하게 만들고, 그 소란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를 찾으려 노력한다.
물론, 한 번으로 끝나진 않지만 말이다.
어른이 되면 끝날 줄 알았던 내 안의 방황들이
사춘기를 겪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도
계속 생기는구나, 난 왜 이렇게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가? 한 탄도 해본다.
그렇지만 이런 나도 나인걸 어쩌겠는가?
오늘도 조깅을 하며,
알 수 없는 이유의 어떤 불편한 나의 마음 상태들을 하나하나 짚어가 본다.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다.
그 끝이 어딘지도 사실 모르겠다.
그냥 이런 나를 인정하고, 그 시기시기마다.
나만의 방법들로 잘 달래어 살아가는 수밖에.
오늘도 땀을 내며 내 안의 엉킨 생각들을 풀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