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고양이로 인해 피해가 증가되고 있습니다. 연민의 마음으로 먹이를 주는 행위는 개체수 증가를 가져와 피해를 더 키우게 되오니 자제를 부탁드리며 계속 급식을 희망하실 경우 입양을 권고드립니다.
캠핑장에 종종 붙어있는 현수막 문구이다. 이 문구가 눈에 들어온 건 몇 번의 캠핑을 다니고 나서부터다.
그전까진 가는 곳마다 비교적 관리가 되었던 건지 고양이를 마주 할 일이 없기도 했다. 고양이라고는 캐릭터 '키티'말고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 특히 캠핑장에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 제천 산상낙원캠핑장에 갔을 때였다. 부른 배가 다 꺼지고 각자의 텐트로 돌아가 잠을 청하는 중에 유달리 소란스러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언니 남편이 나와서 뭐 찾아보다'하고 잠이 들었고, 다음날 물어보니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다시 보니 종량제봉투가 찢긴대다가 우리 텐트 저 멀리 내동댕이 쳐있었다. '이거 뭐지?' 종량제봉투 가운데가 찢긴 걸 보니 고양이의 소행이 틀림없다.
그날 이후 '아무리 늦어 정신없더라도 종량제 봉투는 꼭 텐트 안에 들여놓고 자야겠다'는 다짐을 새기고 다음 캠핑지로 간다.
[천안태학산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2년 차에 접어드니 집과 그리 멀지 않은 2시간 이내의 오토캠핑장을 자주 찾고 있다. 전국 캠핑장 도장 깨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가까우면 다음 날이 조금 덜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이곳은 비교적 도심지랑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구불구불한 산 길을 오래가지 않아도 된다.멀미가 심한 둘째 연우를 생각해서 산속캠핑장에 묵는 날이면 여분의 비닐봉지와 멀미약을 더 챙겨가지만 이번엔 가뿐히 패스다.
8월 중순이라 텐트를 치는 내내 땀범벅이다. 시설을 둘러보니 샤워장, 취사장에 세면장이 따로 있는 데다가 너무 깨끗하다. 청소에 진심인 게 분명해. 화장실 주변으로는 백일홍이 만개해 있다. 이 더운 여름에도 이곳에 머물면서 활짝 핀 얼굴을 보여주니 이런 게 캠핑장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여느 때와 같이 텐트를 치고, 식사 준비를 한다. 해가 길어져서 바깥에 있을 시간도 길어지고 더해서 램프를 켤 시간이 늦춰지니 생각보다 벌레들이 안 보인다.
대신 산고양이는 잘 보인다.
어슬렁어슬렁 나타나 자기의 구역인 양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피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와 자리 잡는다. 동물애호가인 남편은 발라먹기도 애매하게 살이 아주 쪼끔 붙어있는 오돌뼈 하나를 던져준다. 왠지 하나를 주면 계속 더 달라고 버틸 것 같아서 당장에라도 그만두라고 말려봤지만, 고양이는 이미 던져진 한 개를 맛있게 발라먹는 중이고, 남편은 두 개 남은 오돌뼈를 마저 던져줄 참이다. 마침 지난번 캠핑 때 찢긴 종량제 봉투가 떠오른다. '저렇게 먹이를 얻어먹고도 더 먹고 싶어서 봉투를 뒤지나' 싶다가도 '저녁 제때에 못 얻어먹어서 뒤늦게 나타나서 뒤진건가'싶다. 남은 오돌뼈까지 다 해치운 고양이는 다른 먹잇감을 찾아 떠났다. 우리도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러 가던 중에 조금 전까지 화장실을 오가면서는 보지 못했던 현수막이 그제야 눈에 띈다.
산고양이로 인해 피해가 증가되고 있습니다. 연민의 마음으로 먹이를 주는 행위는 개체수 증가를 가져와 피해를 더 키우게 되오니 자제를 부탁드리며 계속 급식을 희망하실 경우 입양을 권고드립니다.
연민의 마음으로 주게 되는 것을 어찌 아시고, 문구 중간중간에 빨갛게 하이라이트를 칠 정도로 강조된 것을 보니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오빠 먹이 줄 거면 입양하래."
"얼마나 문제가 되면 이렇게 현수막까지 걸어뒀을까? 안 줘야겠다."
상황은 이해되지만 눈앞에 뭐라도 주라고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보면 마음이 약해지는 남편이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되는 거야. 아까 우리 텐트를 떠났던 고양이가 저기 다른 텐트 옆을 지나간다. 정말 겁도 없지. 그 텐트 주인은 매몰차게 잘도 쫓아낸다. 저런 대우를 받고도 이곳을 지키고 있는 캠핑장 터줏대감이 바로 이 고양이 인가 싶다.
캠핑장 말고도 집 근처 공원은 물론 아파트 단지에도 여러 차례 이렇게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흔히 말하는 '캣맘'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캠핑장에서 본 문구와 거의 흡사한 커다란 현수막을 걸어두기도 했고, 공원에 있는 고양이들은 한참을 캣맘의 보호에 있다가 실제로 입양이 되기도 했단다. (입양이 됐다는 현수막이 걸려서 알게 되었다.) 이 일의 결론은 바람직했다. 하지만 최근 아파트 단지에서도 길고양이를 위해 스티로폼 집을 만들고 먹이를 주기적으로 갖다 주어서 분란이 있기도 했다.
먹이를 줄 거면 집에 데리고 가서 키우세요. vs 키울 순 없으니 이렇게 먹이라도 주면 어때요.라는 대립에 공용이 거주하는 곳에서는 전자의 손을 들 수밖에없을 듯하다.생명의 소중함은 알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야 된다는 생각이다. 캠핑장의 경우 개인 사유지에 주인장이 직접 돌보는 고양이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잠시 왔다가 떠나가는 우리들이 잘 대처해야겠다.
다시 우리의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그날 밤은 텐트 밖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행여나 음식물비슷한 것도 다 정리하고 종량제봉투도 꽁꽁 묶어 텐트 안에 두고 잤다. 다행히도 아침에 일어나니 별일 없었다.
매번 비슷한 듯한 캠핑장에서의 일과 중에도 매번 다른 일들이 생기고 그 안에서 배우며 얻는 것들이 꼭 한 가지씩은 있다. (그 후로 남편은 고양이에게 던져질 것도 없게끔오돌뼈를 남기지 않고 씹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