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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율 Jan 18. 2024

밥보다 일몰

꽃게는 덤


해루질 : 에 얕은 바다에서 맨손으로 어패류를 잡는 일을 말하는 충남, 전라 방언.
                                                                                                        (네이버 나무위키)


 노년은 제주도에서 '해루질'하며 살고 싶다던 남편.

캠핑을 시작하더니 '해루질'하기 딱 좋다는 서해바다 캠핑을 늘 꿈꿔왔다. 해루질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바닷가에서의 캠핑은 어떨까?


[태안 학암포오토캠핑장]

 우리 가족은 대부분 금요일 오후에 캠핑을 떠난다. 주말에 비해 캠핑장 예약 잡기가 수월한 편이라 다행히 학암포오토캠핑장 예약에 성공했다. 친구네 가족과 서해대교 행담도휴게소의 접선으로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계획이었다. 예상과 달리 서해대교 들어서기 전부터 꽉 막힌 도로에 이대로 쭉 가지 않으면 날이 저물어서야 캠핑장에 도착할 것 같아 플랜 B를 가동한다. 친구네 차와 앞뒤로 주차장에 들어서자 그제야 눈치를 챈 아들들. 아들 친구네라서 아이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이벤트가 또 있으랴. 부둥켜안고 난리가 났다. 어쩐지 엄마가 과자를 많이 샀다는 둥. 이럴 줄 예상했다며 허세장착한 뒤늦은 반응들을 보이지만 사실은 예상치 못했어서 더 반가웠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캠핑장이 바닷가 바로 앞은 아니라 오히려 날씨 영향을 덜 받아 안심이다. 두 집의 텐트를 바짝 붙여 잘 지어두고, 밥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일몰 보러 가야 될 시간이다'는 말에 바닷가로 발을 옮긴다. 서서히 다가오는 모래밭 위로 저물어가는 해를 보니 서해 온다고 해루질만 생각했다가 그제야 일몰을 보기 위해 안면도에 갔던 옛날 생각이 난다. 번번이 실패했던 흐린 날의 기억ㅡ 오늘은 드디어 보는구나.


 


 이런 장관을 앞에 두고 넓디넓은 모래밭에 우리들 뿐이라니. 사진으로도 담기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떠오른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초단위로 넘어가는 해를 넋 놓고 바라봤던 저녁.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던 행복이 자꾸만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대박"

"우와 우와"

"너무 예뻐"

"이 멋진 걸 볼 수 있다니 때가 너무 좋다"

'인생은 타이밍'이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나이스 타이밍! 일몰이 다했다'

낙조로 가득 찼던 행복을 이제 먹부림으로 다시 채울 시간이다. 삼겹살과 치즈닭갈비, 가득 챙겨 온 과자를 술안주 삼아 소소하지만 확실한 우리의 캠핑 추억을 또 쌓아간다.


 

 다음 날 썰물 때가 되니 숨어있던 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간밤의 해루질은 실패지만 낮에 하는 것도 해루질에 해당이 될는지 모르겠다. 반나절동안 얕은 바다에서 맨손으로 게를 잡으며 통 한가득 채우며 소원성취하신 남편. (사진은 채우기 시작할 때 찍은 사진) 바닷가 끝에서 끝까지 보이지도 않을 거리까지 가서 기어코 잡아내고야 마는 이 집요함이 그렇게 꿈꾸던 제주도에서의 노년을 기대하게 한다. 굶기지는 않겠구먼.



 오랜 시간을 학암포에서 떠나질 못하고 게 잡고 모래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금 마주한 노을이다.

수평선 너머 끝에서 간당간당 언제 넘어갈까 조마조마하며 지켜보고는 다 사라지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이틀 연달아 낙조에 취하고 나니 이번 캠핑은 떤 것보다도 일몰 하나로 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다.




"20대 때는 공부를 잘하면 모든 게임에서 다 이기는 줄 알았어요. 사회의 게임은 굉장히 다양한데, 그 많은 게임 중에서 '머리'로 이길 수 있는 게임의 숫자는 정말 정말 적다는 거. 이게 30대를 겪으면서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지점 같아요. 실제로 40대가 되면 옆의 친구들의 인생이 많이 갈리잖아요. 누가 행복하나 보면, 그냥 원래 낙관적이고 잘 웃던 친구가 아직도 행복해요. 행복은 그 자체에 노하우가 있는 거더라고요."   
[조승연의 탐구생활 중에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면

난 지금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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