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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율 Feb 01. 2024

우리들의 안온한 캠핑

종합선물세트


모든 게 완벽했다. 훈련용 전투기소음만 빼고.



2022년 4월 첫 캠핑을 시작으로 10월까지 7개월 동안 6번, 다음 해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동안 10번.

특히나 2023년은 3주 연속 갔던 적도 있다. 그런 일정을 소화하는 날 보고 친구가 그랬다.

"또 가? 대단하다. 난 귀찮아서 그렇게는 못 가겠던데 캠핑이 맞나 봐"

어떤 이끌림에 그렇게도 다녔을까? 나도 내게 되묻는다.


'우리들의 안온한 캠핑일기' 1화에서 썼듯이 우리 차는 세단이고 감성을 챙길 여유 공간조차 없다.

https://brunch.co.kr/@becomingj/28

매번 캠핑을 가기 전에는 베란다에 있는 텐트, 에어매트, 의자 등을 트렁크에 미리 실어두고 나머지 짐을 꾸린다. 또 다녀오면 그대로 다시 베란다 자기 자리로 돌려보내고 나머지 짐들을 정리하는 것이 일상이다. 캠핑은 워낙 바지런한 남편이 원하던 거니 분명 능숙한 캠퍼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들도 텐트에서의 잠자리를 약간 겁나했지만 그 이유를 빼고는 주변 친구들이 캠핑을 다니던 걸 부러워했었다. 사내 녀석들의 타고난 기질 탓인가? 밖으로 나가서 노는 것 자체를 좋아하다 보니 지금 같은 캠핑 비수기 때도 '아 캠핑 가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리틀캠퍼들이 다 됐다. 세 남자와는 달리 MBTI에서 외향형 E 55%, 내향형 I 45% 인 나는 분명 사람들과 어울리고 밖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또 그만큼 휴식이 필요하고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사람이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겠다 마음먹은 날은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하고도 잘 있는다. 안타깝게도 평소 궁둥이를 바닥에 안 붙일 정도의 바지런함을 장착하진 못했다. 이런 내가 매번 캠핑 짐을 올렸다 내렸다. 가방 짐을 쌌다 풀었다 하며 귀찮다면 굉장히 귀찮은 행동을 반복하는 게 친구 눈에는 대단해 보일 만도 하다.






[평택 진위천유원지 캠핑장]


장점만 가득한 종합선물세트 같았던 그날의 기억을 이토록 차가운 겨울에 다시 꺼내보니 온기마저 느껴진다. 이것은 마치 내 머릿속의 핫팩 같달까? 그만큼 안온했던 우리의 캠핑이었다.

집에서 30분 내에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 캠핑장은 너른 평지에 꽤 많은 사이트가 있다. 운이 좋게 그중에서도 나름대로 사생활 보호가 가능한 구역에 당첨돼서 더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게다가 오토캠핑의 맛을 알아버렸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취사장, 샤워장, 화장실 역시 가까운 거리에 깨끗하기까지 하다. 간간이 들리는 전투기소음이 약간은 귀에 꽂히긴 했지만 그러려니 한다. 매점이 멀긴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의 산책이 충분히 가능할 만큼 적당한 기온과 습도였다. 이 정도로도 꽤 괜찮은 조건들이라 할 수 있겠다. 나머지는 우리 몫.


새로 장만한 아이보리 색의 전실이 있는 텐트를 개시하는 날. 최대한 간소화하자고, 가성비를 따져가며 감성캠핑의 'ㄱ'도 사치라 여겼던 우리였지만 서서히 예쁜 것! 을 찾게 되었다. 차를 바꾼 건 아니다. 2년간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고, 넣고 빼고 판단할 정도의 조율은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구매하게 된 밝은 색상의 텐트를 야심 차게 펼쳐 들었지만 생각보다 버벅대는 바람에 집 짓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원래 노동 후 먹는 밥이 꿀맛인데 게다가 진화된 캠핑식탁으로 삼겹살과 닭갈비, 김치전에 막걸리라면 더더욱 꿀맛이 아닐 수가 없다. 해가 넘어갈 즈음 노을을 배경삼은 오늘의 식탁도 역시나 아름답다.




산불의 염려가 없으니 불멍도 가능하다. 넷이 둘러앉아서 블루투스 스피커 사용권한이 있는 엄마, 아빠의 2000년대 음악 좀 틀라치면 알파세대 유행 노래를 요구한다. 어릴 적 이야기도 꺼내봤다가 엄마, 아빠의 연애사를 공유해 본다. 그러다가도 가만히 타들어가는 장작을 바라보면서 멍하게 있기도 한다. 이야기하면 다 들어줄 것처럼 인자한 부모에 빙의해서 '요즘 고민 없어?' 라며 오글거리는 질문도 이런 기회에 꺼내본다. 그럼 또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는 아이를 보고 '고놈 많이 컸구나'하며 겉으로는 헛웃음을, 마음으로는 공감과 지지를 보낸다. 아이들이 캠핑 맛을 얼마나 알겠냐 싶다가도 자기들 나름대로 힐링과 즐거움을 찾는 걸 보면 그냥 친구 같기도 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영화를 보고, 남편과는 늦도록 불씨 보면서 깊어가는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모닝커피를 못 참는 내가 준비한 감성아이템은 손잡이 달린 스텐 컵과 주전자다. 부숭부숭한 얼굴에 눈 뜨자마자 커피 한잔과 함께 야외 조식을 먹는다.



 

폴대와 의자를 접고, 분리수거도 하면서 같이 정리하니 서로에게 제법 도움이 되는 사이인듯하다. 캠핑 짐을 차에 실어두고 건너편 레일바이크를 타고 한 바퀴 돌고 근처 매점에 들러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쥐고 징검다리도 건너본다. 멀리 여행 같기도 하고 그저 산책 같으면서도 어디가 됐든 우리만의 공간에서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매번 짐 가방을 싸고 풀고, 또다시 쌓여있는 빨래가 산더미임을 알고있음에도 반복하고 있는 나. 주말이면 나와 동생들에게 가까운 곳에 소풍이든, 장거리 여행이든 많은 것을 보여주려하셨던 부모님의 모습과 닮아있다. 내가 그때 느낀 기억이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온기를 주듯이 아이들에게도 언제고 꺼내 볼 수 있는 따스함이기를 바란다.


캠핑일기를 연재하면서 매번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평온한 일상이 주는 소중함과 그것을 함께 나누는 이에 대한 고마움. 이 모든 것을 행복하게 느끼는 나 자신이다. 일상이 매번 희희낙락만 있을 순 없는걸 알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기억으로 또 힘을 얻고 온기를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사는 대신
일상에 소소한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 그것은 아주 작은 차이 같지만,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인생을 대하는 태도라 생각하면 그리 작은 차이는 아니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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