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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율 Feb 15. 2024

추운 건 싫지만 동계캠핑을 하고 싶어

캠핑은 계속된다.

 손등이 트기 시작하고 손과 발. 특히 발이 차가워진다.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는 내 몸의 신호. 그날은 12월이 되기도 전이었는데 양볼의 솜털이 곤두서고 근육이 경직될 만큼 추운 날이었다. 한겨울이라면 당연히 '추우니까 겨울이지'라며 마음을 내려놓아 오히려 덜 춥게 느껴지기도 한다. 겨울이 다가옴은 몸으로 느껴지지만 시기상 아직 12월이 안되었으니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어. 경량패딩정도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뒤통수 제대로 맞은 날이었다. 몇 번의 캠핑을 다녀봤다고 그새 자만한 나. 겸손함을 잃었다. 캠핑에 겸손함이 무슨 말인고, 내 멋대로 의미 부여하자면 [날씨에 대한 존중]이라고 쓰고 [일기예보 잘 보고 가자]라고 읽으련다. 괜히 날씨를  이겨 볼 생각 말고 받아들여서 철저히 대비하든, 갈 마음을 포기하든 해야 한다.  


 [서운산자연휴양림]  


 설원 한가운데서의 불멍. 호호 불며 마시는 [어떤] 국물이어도 좋다. 통 크게 팬히터를 장만하고서 이런 장면을 꿈꿔보며 아직 설원이 펼쳐질 겨울도 아니니 워밍업 차원에서 가게 된 캠핑이다. 그날따라 으슬으슬 한기도 느껴지고 바람도 조금 불긴 했지만 팬히터 하나만 믿고 출발했다.

그날의 OOTD(Outfit Of The Day- 오늘의 옷차림)는 경량패딩도 아니요 구스패딩이었어야 했는데 입고 온건 얇디얇은 솜패딩이었다. 솜패딩에게만 보온을 기대하기엔 부족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이미 후회한들 달리 방법은 없으니 잘 견뎌보자. 산속 깊이 들어가진 않지만 쪼끔 위쪽에 자리 잡은 우리 구역. 사이트가 몇 개 없어서 복잡하지 않고 편의시설(매점제외)도 바로 앞이라서 다행이었다.  


 같이 간 캠핑메이트와 텐트를 치고 저녁준비를 해야 하는데 오후 5시부터 슬슬 어둑해져 마음이 급해진다. 평소 같으면 활동적으로 움직였을 손가락 마디마디가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고 자꾸 따뜻한 곳만을 찾고 있었다. 다 세팅된 텐트 안에서 따뜻하게 있을 상상만 했지. 코끝이 시리고 손가락, 발가락이 시린 채로 준비를 하려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서도 느껴지는 한기


 늘 그렇듯 먹캠이기에 이런저런 음식을 준비했는데 그중에서도 야심작은 양갈비다. 특히나 양갈비는 텐트 안에서 굽기는 어렵다. 양갈비 굽기의 달인인 캠핑메이트 덕분에 처음 양고기에 눈을 뜨게 됐었는데 이 추위에 밖에서 굽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받아먹고만 있기엔 미안해진다. 고기가 익는 대로 아이들 입에 넣어주고 엄마들 입에 들어가다 보니 남편들은 구우면서 집게 들고 먹는 일이 다반사. 캠핑 와서 고생은 원하든 원치않든 남편들 몫인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어찌 됐건 양갈비의 느끼함을 달래 줄 어묵탕과 후식라면 한 사발을 먹고 나니 추위가 조금은 사그라든다.


 5년 차 능숙한 캠퍼인 지인은 영하 5도 이하로 내려가면 캠핑을 안 간다고 하던데 무지의 캠퍼인 나는 동계캠핑의 현실을 잘 몰랐다. 마치 사진 속 장면만 상상했다.






 꺼끌 거리는 흙을 털며 텐트에 들어가는 일, 어둡고 추운 새벽녘 나서기 싫지만 화장실에 가야만 했던 일, 또 그 화장실 한 칸 한 칸 나보다 먼저 자리 잡고 있던 이름 모를 벌레들을 외면해야 했던 일, 높은 습도로 샤워를 해도 가시지 않던 찐덕거림, 때론 너무 맨 정신에 동물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던 일 등등 조금 귀찮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상황들이 늘 존재하지만 캠핑을 싫게 할 만큼의 이유가 되진 않았다. 반면 이게 캠핑이 싫어질 이유가 될 독자들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미리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될수도 있겠다.


 동계캠핑의 복병은 추위다. 여러 상황들에도 캠핑을 즐기지만 그런 나라고 해도 영하의 차디찬 바람이 부는 날이라면 그날의 캠핑은 싫어질 것 같다. 텐트 안에서 자는 것은 왠만해선 장비빨로 이겨낼 수 있지만 준비과정에서 조금이나마 역할을 수행할 의지가 있다면 방한용품을 단단히 준비해야 함은 분명하다.

한겨울 설원에서의 캠핑은 내공을 더 쌓은 후에 도전해 보겠지만 당장 3월 초부터 떠나자는 남편은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다. 요즘 같은 날 기온이 조금만 올라도 후드티 위에 플리스 하나만 걸치고서 요 근처를 잘 돌아다닌다. 그에게는 팬히터 하나면 동계캠핑이 대수롭지 않지만 그날 서운산에서 추위에 벌벌 떨던 나를 조수삼아 데리고 가기엔 못 미더웠던 모양이다. 12,1,2월은 휴식기를 갖고 3월부터 우리의 캠핑은 또다시 시작된다.

미리 핫팩을 주문해 놓고 장갑, 수면양말과 털신 그리고 모자 달린 구스패딩을 입고 3월 캠핑에서는 부디 추위를 이겨내고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0화에 걸친 [우리들의 안온한 캠핑일기]를 마무리합니다. 초등학생 아들 둘과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끼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초보캠퍼의 준비물, 모닝커피와 우중, 동계 캠핑의 로망, 캠핑장에서 할 수 있는 의외의 활동들, 또 캠핑장에서의 조심스러운 부분들, 시도해봄직한 간단한 요리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자연에서 해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음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캠핑일기는 끝나지만 저희 가족의 캠핑 계속됩니다.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하고 안온한 날들의  기록을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지출처: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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