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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율 Jan 04. 2024

진화된 식탁

캠핑장에서의 식사



이것은 마치 하산 후에 기다리고 있는 달콤한 식탁이 아니던가?



 지지난해 10월 중순 찬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 후 우리의 캠핑은 휴식기에 들어갔다.

다시 캠핑하기 좋은 계절이 도래하였으니, 제군들은 짐을 꾸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엄마는 식재료 준비, 아이들은 가서 놀 수 있는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각종 보드게임, 그 밖의 놀거리들을 각자의 준비된 가방에 차곡차곡 집어넣는 것으로 짐 싸기는 끝이다.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이젠 기계적이다.


이번엔 2박 3일에 걸친 캠핑을 떠난다.

[제천 산상낙원 캠핑장]

산상낙원이라는 이름에서 기대를 양껏 하고 집을 나섰는데, 낙원으로 향하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굽이굽이 좁은 산길을 한참 지나서야 나타난 곳. 느낌 상 조금은 하늘과 가까워진 것 같은 곳이었다. 구역이 나뉘어 있었고, 한 구역당 제법 여유로운 공간이 제공되었다. 자그마한 물놀이 시설과 매점, 샤워실 등에서 주인장의 애정이 담겨있어 보인다. 같이 온 친한 언니네 가족은 벌써 이곳에서의 캠핑이 세 번째다. 쏟아질 듯한 무수히 많은 별을 보고 감동을 받았기도 해서 또 와보고 싶었더랬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


익숙해진 우리만의 공정을 거친 후 완성된 오늘의 집.

같이 온 언니네 텐트가 어마어마하게 큰 관계로 오늘의 부엌과 식당도, 영화관도 다 언니네 텐트에서 해결한다. 어른 4명, 아이 4명의 식사가 관건이기에 며칠 전부터 메뉴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각자의 재량껏 추가적으로 챙겨 오다 보니 이틀 동안 우리가 소화해야 할 메뉴들이 상당했다.


"언니, 이거 어디다 두면 돼요?"

"은율아 저기 두고 꺼내 먹자."

내가 챙겨 온 간식과 라면, 김도 언니네 부엌에 살포시 자리 잡는다.


"은율아 내가 뭐 챙겨 온 줄 알아?" 하며  아이스박스에서 뭔가를 꺼낸다.

"도토리묵!!ㅋㅋ 두부김치랑 해서 막걸리랑 먹고 애들은 고기 구워주자"

"대박~ 캠핑장에서 도토리묵에 두부김치? 와 ㅠㅠ 막걸리까지"

"난 양고기도 빨리 먹고 싶어"

"언니 우리 먹을 거 진짜 많네요~ 다 맛있겠다!!"


저녁에 고기 먹자고만 했지 이렇게 맛난 걸 챙겨 오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점심도 간단히 먹을 걸 그랬다.

먹는 것에 한 진심인 나보다도 더한 진심을 보여준 언니는 손이 많이 갔을 법한 일인데도 재료 손질까지 다 해왔다. 남편과 내가 준비한 건 배불리 먹을 양고기, 돼지고기 목살, 부어서 끓이기만 하면 되는 순댓국 그리고 라면 5 봉지, 짜파게티 4 봉지다. 요리랄 것 없이, 부재료도 그다지 필요치 않은 간편한 것들 뿐이다. 일부러 쉬운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니의 아이디어에 비하니 빈약한 건 사실이다. 그 후로도 언니네 큼지막한 아이스박스 속에서는 난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재료들이 술술 나온다.


"이건 샐러드파스타 해보려고 가져왔고, 이건 저번에 '전참시'에서 이영자가 보여준 '스노보드'라는 건데

집에서 한번 해봤더니 간단하고 맛있더라고 내일은 이거 안주로 먹어보자"

"아니 언니 어떻게 이걸 다 준비했어요? 아 난 뭐 갖고 온 것도 없는데..."

"우리 같이 먹으려고 갖고 온 건데 뭐 ~ 나 이런 거 좋아해~"


 

'도대체 왜 난 이런 메뉴가 떠오르지 않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음식을 나르고 맛있게 먹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 도토리묵, 두부김치에 양고기까지 먹고는 소화를 시키고 자야겠다는 핑계로 밤늦게까지 우리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이튿날이 되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약간의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아침식사로는 순댓국으로 해장을 하고 아이스커피도 한잔했다.

이제는 본격적인 놀이타임. 아이들이 이름 지어준 '비밀놀이터'라는 곳에도 가본다. 아이들이 보기엔 뭔가 비밀스러웠던 걸까? 캠핑장에서 조금만 내려가다 보면 직접 만들었을 법한 시소도 있고, 그네도 있었다.

한참을 놀고 와서는 '다 있어'표 화석 찾기와 보드게임을 했다. 엄마아빠들은 설거지도 하고 번갈아가며 아이들의 놀이를 함께했다. 생각한 것보다 꽤 분주한 오전을 보냈다.



 점심은 언니가 특별히 공수해 온 '신당동 마복림 떡볶이'라고 한다. 막내아들인지 몇째 아들인지가 운영하고 있다고 하던데 대대손손 이어진 장인의 손맛이니 기대가 된다. '구이바다'라고 하는 만능 버너에 모든 재료를 쏟아부었더니 양이 꽤 많다. 이 많은 양을 어른 4명이서 나눠먹으니 점심부터 포만감 200%다.

양 조절 실패. 과식했다. 이번 캠핑에서도 2킬로는 더 쪄서 가겠구나.


바람도 살랑살랑 부니 다들 낮잠 한숨이 고파지는 시간이다.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은 낮잠을 뗀 지도 오래니 누울 생각은 전혀 없다. 결국 어른 중 한 명은 아이들의 돌봄 교사를 맡아야 하니 번갈아가며 동네산책도 가고, 배드민턴도 치며 시간을 보낸다. 드디어 나의 휴식 타임이 되자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여유로울 수 있건가' 싶다. 숲 속에만 있으니 복잡한 세상과는 단절된 지 오래. 이름 그대로 산상낙원이 따로 없다.

 

 꺼질 새 없는 배를 부여잡고 피톤치드를 소화제 삼아 다시 저녁식사에 몰입한다.

어제 언니가 야심 차게 준비했다던 '샐러드파스타'와 연어크림치즈 '스노보드'라는 것을 함께 완성할 차례다.


"은율아 내가 면 삶는 동안에 크림치즈를 숟가락 뒷면으로 떠서 여기 접시에 발라놔 줘"

(크림치즈를 숟가락 뒷면으로 떠서 접시 바닥에 둥글넓적하게 바름) 

"언니 이렇게 하면 돼요?"

"응 그렇게 하면 돼"


 면을 삶고 나니 준비해 온 야채, 견과류를 뿌리고 후다닥 소스까지 얹으니 요리 하나가 완성되었다.

다음엔 내가 둥글넓적하게 발라놓은 크림치즈 위에 연어를 얹고 식용 꽃까지 준비해서 뿌려놓으니 또 하나가 완성되었다. (옆에 참크래커를 따로 놓고) 방법은 간단해 보이는데 또 차려놓으니 보기에도 그럴듯하다.

(메모) 이렇게 오늘 또 배워간다.  어제 다 먹지 못한 양고기까지 더해 이튿날 밤도 아주 배부르게 마무리했다.





 

늘 1박의 캠핑으로는 자고 일어나면 바로 정리하는 기분이 (실제로도 시간상 그래야 한다.) 들어서 아쉽게 돌아오곤 한다. 2박의 캠핑을 해보니 당연히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1박을 했을 때보다는 집에 가서 씻고 싶은 생각도 들고 (샤워장 시설도 잘 되어있지만) 비교적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도 장박캠핑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캠핑을 다닌 지 오래된 캠퍼에게 나는 여전히 초보캠퍼일 테지만, 또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캠퍼에게는

자신보다는 경험이 있는 캠퍼로 보일 것이다. 그래도 경험치 2년인 캠퍼의 시선에서 바라본 바를 기록하다 보니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얼마만큼의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소소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것을 공유하고 싶음에 이 글을 남긴다.


결론은 이번 캠핑의 식탁은 화려했고, 오토캠핑은 짱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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