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태국 푸껫의 가을 풍경을 보여드리고자 10월 8일 토요일의 따끈한 이야기로 작성되었습니다.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곳은 방타오 비치. 푸껫의 수십 개의 비치중 7킬로미터의 긴 해변을 자랑한다. 이 거대한 해변에 사람이라곤 몇 있지도 않으니 별다른 호객도 없어 더 고즈넉하다. 나무 그늘 밑에자리를깔고, 아이들은 바다를 향해 뛰어들고, 아내는 양산을 받쳐 들어 글을 읽고, 나는 바다를 향해 글을 적고 있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눈이 부셔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따가운 아침햇살이다.
모래사장은 맨발로 걸어도 부드러운 슬라임처럼 발이 푹 푹 들어가니 슬라임에 목말라 있던 작은 아이는 연신 모래를 주물럭거리며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어 버린다. 해변가에는 익숙한 야자수와 함께 거대한 전나무 사이로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벌써 10월의 깊은 가을로 들어갈 무렵에 듣는 낯선 소리들이다.
가방에 챙겨 온 새우과자를 뜯어 아내와 푸껫 뜨거운 해변에 앉아 14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안주 삼아 그리움을 삼킨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가아내옆으로 스윽 지나간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순간적이다. "악!" 아름다운 푸껫 방타오 비치에 외마디 비명소리가 긴 해안 끝까지 메아리쳐 퍼진다. 깜짝 놀란 아이들이 뛰어 돌아보며 엄마를 쳐다본다.
다름 아닌 쥐의 색깔과 크기의 노란 부리 새 한 마리가 어느 순간 옆에 날아와 새우과자를 훔쳐 달아난것이다. 한국 갈매기도 아닌 태국 텃새가 어떻게 새우과자 맛을 알았을까. 멀리 날아가지도 않은 채 아내 뒤에서 약을 올리며 맛있게 손가락 크기만 한 과자를 쪼아 먹고 있다. 소리를 질러도 날아가지 않는 태국 텃새. 방타오 주인인 양 텃세가 심하다.
능청스럽게 다시 와서 하나 더 달라며 우리 주변을 맴돈다. 어느새 친구 한 마리까지 더 데리고 와 "삑 삑" 거리며 과자를 내놓으란다. 어쩔 수 없이 먹던 과자를 가방 안에 넣고 한참을 그렇게 서로 능청스럽고 끈질긴 눈치싸움 끝에 먼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멀리 날아가 버린다.
오후 12시가 되니 가을 햇살에 곡식 여물듯 뜨겁다 못해 살이 익어간다. 몬순 바람에 성난 파도와 씨름하느라 온몸이 흠뻑 젖은 작은아이는 더위도 잊고 실크 같은 모래로 성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화상이 걱정되어 그늘로 겨우 불러 내 시원한 소다로 진정시키고바지 주머니 속속 몰래 안으로 들어간 고운 모래를 털어낸 후 오후 석양을 보기 위해 호텔로 잠시 후퇴하기로 한다.
호텔은 방타오해변과 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접근성이 뛰어나지 않다. 물론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셔틀버스가 있지만 차량 한 대로 편하게 이용하기는 부족하다. 무서운 한낮의 자외선을 피해 걸어서 호텔로 대피한 후, 오후 5시 하늘을 보니 구름은 있지만 다행히 석양을 볼 수 있을 날씨다. 서둘러 호텔에서 나와 해변으로 다시 온 길을 되돌아 걸어간다. 아이들은 똑같은 길은 헤매는 이동이 못마땅한지 "도대체 언제 도착해요." 하며 똑같은 질문만 수십 번, 마음속 양은냄비는 끓어 넘쳐 새까만 검댕만 남았다.
하지만 분노도 잠시. 해변에 도착하니 감탄사만 흘러나온다. 오후의 해변은 정오의 풍경과 사뭇 달랐다. 서쪽 바다 저 끝으로 뜨거웠던 태양의 기세가 약해지며 하얗던 빛이 붉은색으로 서서히 바뀌어 간다.하늘이 붉어질수록사람들도 점점 해안가로 모여든다. 서서히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을 걷는다. 이 풍경을 보러 얼마나 인내하고 오래 걸려 도착했단 말인가. 불평하던 아이들도 어느새 자연의 장엄한 장관을 바라보고만 있다.
이제 비치바에서 들러 푸껫 석양을 안주삼아 마실 칵테일을 골랐다. 강렬한 주황색과 어울리는 붉은색 칵테일을 선택하고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저물어가는 태양만 바라볼 뿐이다. 지구의 하루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단 말인가. 나는 왜 45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태양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여태껏 몰랐던 것일까. '정저지와' 하며 화려한 네온 불빛만이 진실이라 믿고 살아온 삶이 허무하고 아쉬울 뿐이다.
마침내 이룬 나의 버킷리스트. 이루어진 목표가 아닌 이루어낸 목표이기에 더없이 기쁘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야심 찬 성공의 목표들. 그것들을 내려놓으니 멀게만 보였던 희미한 꿈들이 가깝게 다가왔다. 더 이상 사막의 오아시스는 거짓 신기루가 아닌현실의 진실로 내 앞에 와있다는 사실을 태국의 조용한 해변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그렇게 석양이 바다 밑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미련 없이 푸껫 가을 바닷속으로 태양을 보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