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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습장

라오스 비엔티안의 한적한 일상 (바그다드 카페)

살림남의 방콕 일기 (#50)

by 김자신감


일요일 오후, 라오스 비엔티안은 평온하다. 일주일 내내 시끌벅적한 방콕의 분위기와는 너무 다르다. 라오스의 식당들은 일요일 쉬는 곳이 많아 거리가 한산하다. 사람이 없어 한적한 건지, 가게들이 문을 닫아 조용한 건지 알 수 없다. 10월 말인데도 35도를 넘기는 한낮 기온, 사막같이 건조하고 무더운 날씨지만 이런 고요한 풍경과도 나름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분위기를 동경한다. 황량하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무료해 시간의 흐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블랙홀 속, 멈춰버린 사막 한가운데 오래된 카페. 오죽하면 구글 지도로 캘리포니아 라스베이거스 루트 66 도로가 황량한 사막에 있는 그 카페를 살펴보며 꼭 한번 다녀오고 싶은 버킷리스트 장소로 찜해 두었다.


가족, 친구, 동료, 아이들과 여행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오는 장소가 '바그다드 카페'이다. 뜬금없는 영화 제목에 대화의 흐름이 끊기고 세대차이가 날 법도 하지만 나는 항상 이곳을 들먹인다. 특히 아이들은 포켓몬도 안 잡히고 와이파이도 안 되는 곳에 왜 가냐고 원성만 해되니 언젠가는 조용히 홀로 가보고 싶은 비밀의 장소로 보관해 놓았다.


일요일의 라오스 거리는 꼭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풍경과 비슷하다. 내려 쬐는 햇볕에 그늘 없는 메마르고 적막한 거리, 가끔 시끄러운 엔진 소리의 뚝뚝이가 까만 매연 먼지를 뿜으며 달려 나간다. 아침도 못 먹은 점심, 모두 배가 고프다. 호텔을 중심으로 가까운 곳부터 미리 검색해 놓은 카페를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하지만 오후 2시까지만 영업하는 곳, 아예 문을 열지 않은 곳, 폐업한 곳, 브레이크 타임인 곳 등 어디 들어갈 곳이 마땅치 않다. 어쩔 수 없이 카페가 모여 있는 메콩강변을 향해 길이 있는 대로 인적이 드문 골목까지 기웃거린다.


현지 라오분 한 명이 나무 그늘 밑에 녹슨 의자에 앉아 얼음 든 맥주를 마시고 있다. 커피샾이지만 바 같기도 하고 식당 같기도 한 명확하지 않은 카페. 이런 외진 곳에 문을 연 카페가 있다니 뭔가 영화 같다. 더위에 지치고 배고픈 우리를 쉬게 해 줄 '바그다드 카페' 같은 곳이 여기 있었다. 천장 선풍기가 덜덜덜 돌아가며 뜨거운 바람과 먼지를 불어 내린다. 그늘진 차광막 밑 테이블에 조심히 자리를 잡고 메뉴를 기다린다. 다 뜯어진 메뉴판에 음식 종류가 한가득, 주문하면 과연 음식이 제대로 나올까. 설마 영화에서 처럼 '갈색 물 같은 미지근한 아메리카노'가 나오진 않겠지.


주문한 음료와 음식이 차례대로 나온다. 제대로 된 음식을 보니 야스민이 떠나기 전 성업하던 바그다드 카페의 한 장면 같다. 익숙한 노란커피믹스에 얼음을 넣은 맛의 라오 커피와 간단한 햄&치즈 바케트가 허기에 허덕인 위장을 달래준다. 한 낮 땡볕의 라오스 주일 오후, 음식이 맛있든 맛없든 중요한 게 아니다. 기름 떨어져 가는 올드카를 몰고 사막 한복판을 달리다가 쓰러져 가는 바그다드 카페를 발견한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듯 그냥 배를 채우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가 있기에 감사하다.


라오스는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배경과 비슷한 매력 있는 곳이다. 뜨겁고 건조한 무더운 한낮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비엔티안의 골목 카페. 혼자 비밀처럼 숨기고 있던 영화 속 '바그다드 카페'를 방문한 것처럼 묘한 기분이다. 서쪽 사막 멀리 저물어 가는 태양을 배웅하기 위해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또 다른 라오스의 숨은 매력을 향해 갈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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