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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Aug 31. 2022

태국 편의점에서 실수로 만든 라테

방콕, 가족은 떨어져 있어야 제 맛 (#13)


아침부터 비가 온다. 작은아이 학교 준비물이 많아 조금 일찍 집을 나선다. 비도 곧 쏟아질 것 같아 서둘러 가고 싶지만 항상 느긋한 작은 아이다. 혹시 신발이 젖을까 여분의 신발과 양말까지 챙겨 들고 학교까지 왔지만 다행히 활기찬 태국 비 답지 않고 영국 비처럼 신사처럼 온다. 이 정도 얌전한 비라면 신발도 젖지 않고 걷기 좋은 날씨다.


일찍 나온 터라 피난처 카페는 아직 오픈하지 않았다. 5분 정도 기다리다 구름이 어두워져 집 앞 편의점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기로 한다. 피난처 카페에서 사 먹는 모카 가격으로 편의점 내 카페에서는 커피와 간단한 디저트 빵까지 살 수 있다.


핫 라테를 한잔 주문하고 빵 코너를 둘러보던 중 브라우니가 할인 판매하고 있었다. 무려 25밧(1,000원)에서 18밧(약 700원) 이런 건 무조건 사줘야 하는 것. 집에 과일도 떨어져 사과도 고르다 보니 주문한 커피가 나와있다. 그런데 1잔이 아닌 2잔이다. 아차 싶다. 커피 뽑을 때 한눈을 판 것이다.


분명 '홋→ 라 ↘떼 ↗'라며 성조까지 신경 쓰며  '능' (하나)이라고 손가락을 펴 보이며 분명히 말했건만 2잔이 나와있다. 하나를 취소하려니 말도 안 통하고 포장까지 예쁘게 해 놓은 터라 아무 말 없이 2잔 값을 계산하고 허탈하게 나와야 했다. 어찌하겠는가. 끝까지 관찰하지 못한 내 잘못 큰 것이다.


'남은 한잔을 어찌 처리할까?'란 새로운 생각에 씁쓸함이 커피 향같이 집에 오는 내내 머릿속에 퍼진다. 머리 아픈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 식기 전에 라테를 한 모금 마신다. 생각보다 맛있는 커피의 맛이 두통을 사라지게 한다.


전문 바리스타도 아닌 편의점 종업원이 뽑아주는 커피인데도 이곳 라테는 정말 맛있다. 편의점 내부에 같이 있으니 가판대에서 판매하는 우유를 직접 가져와 개봉해 라테를 만들어 준다. 고작 35밧(1,400원) 편의점 라테에 신선한 우유를 쓰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기세를 몰아 같이 샀던 브라우니도 맛을 보았다. 포크가 잘 들어가지 않은 묵직함, 어금니가 잘 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쫀득함, 혀를 마비시켜 버릴 달달함으로 우울했던 기분을 흥분케 한다. 크기는 작지만 속이 빈틈없이 꽉 차 있어 반만 먹어도 충분하다.


남은 라테 한잔과 브라우니는 오늘 오후의 티타임 때 먹는 걸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맛있는 커피 한잔과 브라우니로 주문을 잘못 받은 편의점 직원의 흔한 실수가 용서되었다. 하긴 충분한 가성비를 가진 편의점 라테는 많이 마실수록 나한테 이익이니 속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집 근처에 가성비가 뛰어난 카페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편의점에서 실수로 잘못 만든 라테 두 잔의 씁쓸함이, 편의점에서 실수(?)로 잘 만든 맛있는 라테로 말끔히 사라진다. 커피 한잔으로 가난했다가 부자가 된 하루. 오전 내내 마음이 흐린 날씨처럼 오락가락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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