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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Sep 17. 2022

태국 방콕, 시골의 리얼한 학교 가는 길

방콕, 가족은 떨어져 있어야 제 맛 (#20)


작은아이를 데려다주는 학교 길은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하루하루 주변 풍경이 바뀌어 지루하지 않고 항상 흥미롭다. 매일 아침 출근길이라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작은아이와 함께 가는 학교길은 즐겁다.


학교 가는 길은 구간별로 특징이 있다. 현관을 나오면 주택단지 정문으로 한참 걸어 나와야 하는데 이 길이 제법 길다. 특히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걸어가야 하기에 맑은 날이면 우산이나 창이 긴 모자를 꼭 써야 한다. 키가 큰 내가 앞을 걷고 그 그림자 뒤로 작은아이가 뒤를 따른다.


반대로 하교할 때는 오후 4시가 넘기에 서쪽을 향해 걸어가기에 42.195km의 마라톤 코스처럼 인내를 가져야 한다. 항상 이 코스에서 더위에 지친 작은아이는 "아빠, 우리는 차 안 사요?"라고 물으면 "환경 보호해야지."라고 얼버무려버린다.


주택단지 정문을 걸어 나오면 풀숲 길이 나온다. 이 길에는 작은아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각종 도마뱀과 두꺼비, 송충이와 지네같이 생긴 벌레가 많다. 꾸물꾸물 풀숲에서 때를 지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본능이 지능을 지배해버린 좀비 때 같다.


특히 아침 시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빛만 보면 몸을 던지는 불나방처럼 무더기로 차 길안으로 기어 나와 몸을 던진다. 작은아이와 나는 이름 모를 벌레를 피해 전쟁터의 지뢰 피하듯 요리조리 한걸음 한걸음 조심조심 피해 다녀야 한다.


풀숲 길 사이로 이어진 골목길. 그 길은 들개들의 놀이터이다. 들개라 하지만 조심히 다니면 따로 해코지 않는다지만 몸집이 큰 놈들은 나도 무서울 때가 많다. 이때 준비해놓은 우산을 펼쳐 들고 '내가 너보다 크니 까불지 마.'란 표시로 선제적 방어를 머릿속으로 준비하곤 한다.


태국 사람들은 생물을 함부로 학대하거나 죽이지 않는다. 그래서 똑똑한 들개들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강한 사람에게 순하지만 약한 사람만 골라 본능적으로 공격한다. 따라서 외진 골목길에서 노약자들은 들개를 항상 조심해야 한다.


무사히 들개 골목을 통과하면 마지막으로 진흙길이 나온다.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항상 침수되는 구간이다. 옆으로 차가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진탕이 튀어 온몸에 묻지 않도록 요령껏 피해야 한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그냥 속 편히 샌들을 신고 냇가에 발담구듯 진탕 속을 헤쳐나가야 한다.


학교 가는 길은 작은아이에게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작은아이는 항상 나와 함께 길을 걸어 다니며 그 속에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언젠가는 작은아이도 큰아이처럼 씩씩하게 그 길을 홀로 걸어갈 수 있을 때 나는 그때를 추억하며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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