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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Oct 01. 2022

태국의 작은 핑크 자전거, 미니핑

살림남의 방콕 일기 (#38)


몇 주 전에 우리의 발이 되어줄 전기자전거를 샀다. 자전거로 인해 작은 아이는 더 이상 "왜 우리 집에는 자동차가 없어요?"라고 묻지 않는다. 오히려 핑크색의 작은 자전거를 '미니핑'이라 부르며 더 좋아한다. 전기자전거를 타고 나갈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거나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모습을 종종 본다. 아마도 길쭉한 중년의 외국인이 조그만 핑크색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 모습이 어찌 신기하고 재미있지 않겠는가.


퇴근하는 아내를 데리러 미니핑을 타고 큰 도로로 올라갔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아내가 하얀 잇몸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보인다. 분명 그 미소의 의미는 미니핑을 타고 오는 내 모습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인 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미니핑을 사기 전 이렇게 작지 않아 보였는데 막상 사고 보니 체구가 작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딱 맞는 사이즈. 하필 색상도 핑크색을 고른 탓에 아마 동네 사람들도 다 알만한 유명한 자전거가 되었다.


아내를 데려다주는 길에는 무려 10개 이상의 살벌한 방지턱이 있다. 그 가녀린 미니핑의 바퀴가 넘기는 힘겹다. 특히 나와 아내 어른 둘이 앉으니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꼭 바닥에 '끄윽' 데이며 신음을 한다. 그런 미니핑에게 미안한 나머지 방지턱에서는 거의 끌고 가다시피 조심히 넘어가야 한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미니핑이 가장 힘든 날이다. 배터리로 움직이기에 물에 약하고 처연한 바퀴는 빗길에 쉽게 미끄러지기 때문에 외출이 불가능하다.


얼마  구매한 지 2주도 안돼 '삑삑'대는 기계적인 마찰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어른 2명이 타고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린다지만 최대 적재 중량 250kg까지는 견뎌야 한다. 점점 심해지는 잡소리에 소리 나는 부분을 하나씩 뜯어 윤활제를 뿌리고 제동장치 유격도 맞춰 보며 하루를 보냈지만 거슬리는 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이런 비지떡 같은 제품을 팔다니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작고 핑크 색 전기자전거'란 뜻의 미니핑. 나한테 작고 유치한 색깔로 볼품없어 보인다고 무시당했다. 높은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상처를 입었지만 족보 없는 싸구려 제품이라 멸시당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배터리 방전과 쉽게 미끌리는 위험으로 쓸모없다고 비난받았다. 뱃고래가 작아 하루에 적어도 2번 충전을 해줘야 하는 성가심에 눈칫밥도 먹었다. 몸이 약해 제구실도 못한다고 쓰레기 취급까지 받았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미니핑도 나름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매일 쉬는 날 없이 움직여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 지쳐도 누가 하나 젖은 몸을 닦아주는 사람 없으니 시집살이가 얼마나 서럽고 애달팠겠는가. 이제는 작은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미니핑의 마음을 잘 헤아려 함께 외출할 때는 비옷을 덮어주고, 비에 젖었을 때는 닦아 주며 소중히 동행할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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