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여행을 기약하며
- 20일간의 남미 여행이 끝내며
20일간의 남미 여행이 끝이 났다.
출발하면서 사인했던 서약서는 나의 생리 전 증후군 덕분에,
환승지인 LA에 도착하자마자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때는 너무 화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돌아보니 웃으며 넘어갈 수 있던 일들이었는데 왜? 짜증을 내었던 것일까.
후회만이 남는다.
30년 넘게 살면서 이렇게 부모님과 오랜 시간 같이 지낸 적이 있었을까?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부터 하루에 몇 시간은 떨어져 있었을 것이고,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집에 있는 시간이 더 짧았을 것이다.
심지어 대학교 기숙사 생활과 타지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갔다.
그런데 남미 여행을 하면서 20일 동안 24시간을 내내 부모님과 함께 있었다.
둘째인 나에게는 더욱 소중한 시간으로 남았다.
평생 동안 이렇게 부모님과 여행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이야기하고 추억하겠지.
사실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누군가 나에게 대단하다고 말하면
'나의 효는 여기 까지다' 라는 말을 무한 반복했다.
여행을 하면서도 몇 번을 말했었다.
그렇지만 다 지나고 나니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헛된 생각이 든다.
잘못된 생각이다. 정신 차리자. 두 번은 없다.
-> 진짜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한 번 더 가고 싶다.
아니, 두 번, 세 번.
엄마, 아빠 건강하실 때 여러 번.
고산병에 힘들어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속상했다.
고산병은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한다고 하지만,
엄마가 이렇게 힘들어하시니 괜히 연세가 있으셔서 더 심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나를 맞춰주고, 아빠를 맞춰주고
아빠와 내가 티격태격할 때마다 엄마가 가장 힘들지 않았을까?
(너무 비슷한 아빠와 나는 아직도 티격태격 하는 중이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나은 딸로 함께 여행을 할 자신이 생겼다.
두 번째는 훨씬 낫겠지!
글을 쓰면서 그때의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다.
엄마, 아빠의 행복한 얼굴
귀여운 포즈들, 함께 찍은 셀카들
같이 먹은 음식들, 술도 ㅎㅎ
그때와는 또 다른 감정,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좋은 추억이지만, 부모님께 이런 추억을 남겨드렸다는 것이 뿌듯하다.
여행의 가장 큰 목적, 대성공이었던 마추픽추,
엄마, 아빠를 동심으로 돌려놓았던 우유니 사막,
비는 내렸지만 메시와 탱고가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좋은 인연과 최고의 경험을 남겨 준 모레노 빙하,
또 비는 내렸지만 그래서 더 재밌었던 리우 예수상
우리 가족이 함께 한 모든 것들이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가 내심 가장 기대했던 스카이다이빙,
내가 너무 가고 싶었던 이과수 폭포!
이 두 가지 때문에 꼭 다시 가야 할 것 같다.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가 이 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의 용기로 나도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어.
(특히 엄마는 고산병을 알면서도 함께해 줘서 고마워)
둘째라서, 집을 떠나 산지 오래되어서,
함께한 시간이 많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 여행으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서 행복했어.
다시는 효는 없다, 해외는 안 간다고 했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아직 못 본 것들이 너무 많네?
가자! 다음 여행에는 내가 더 준비하고 조금 더 잘할게!
(아빠도 다음 여행에는 조금 더 잘하자)
그리고 퇴직을 하고도 나름 큰 여행 경비를 여유 있게 감당해 준 거,
여행 끝나고 수고했다고 금융 치료해 준 거 정말 고마워.
정말 고생 많았고, 행복한 추억 만들어 줘서 고마워.
효 마지막 아니야, 앞으로 몇 번 더 해볼게.
행복한 기억만 가득했던,
20일간의 남미 여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