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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에게 위로받기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릴까?

by 오현정


캐나다에 온 지 140일째

무언가 내 생활에 변화가 생기면 그때 그 기쁜 일로 글을 올리고 싶었다.


역시 인생 쉽지 않지

쉬울 거라고 생각 안 했다.

기쁜 일이 아니고 속풀이 하려고 글을 쓴다.


내가 생각한 계획이 있었다.

내가 정해놓은 기한, 기준이 있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 잡으려고 해도

‘이 나이에 이곳에서 뭐 하고 있니?’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영어 학원은 1월에 끝이 났고,

2월 한 달 동안 구직활동을 해서

3월에는 출근을 하고 싶었다.


(잠깐, 글을 쓰면서 문득 드는 생각인데 나 왜 또 회사에 출근을 하려고 하지? ㅡ 이 생각도 다시 해 봐야겠구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왕 속풀이 하는 거 그동안 날려버린 기회에 대해 쓰자면


1. 근처 대학교 학과 조교 자리

1시간 내로 문서 작업 후 회신하는 미션이 있었다.

너무 쉬웠다. 메일 회신 내용 쓰기, 엑셀 정리를 바탕으로 요구 사항 확인하기, 시간표를 바탕으로 메일 회신하기.

당연히 영어로 해야 하니 검토에 검토를 마치고 5분 전에 회신하려는데 문서가 어느 폴더에 있는지 못 찾아서 허둥지둥하다 시간이 지나서 회신을 했다. (총 4개의 문서 중 2개는 바탕화면에 잘해놓고... 2개는 자동 저장을 했는데 그걸 못 찾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정말 바보 같구나

안녕 나 같은 바보는 일 못하지, 알아


2. 교통 신호기 제작 업체 고객 대응 담당

캐나다에 있는 회사가 미국의 회사와 협력(?) 관계이고 전화 인터뷰를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있는 사람과 했어야 했다. 이게 무슨....

이래나 저래나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영어에 무너졌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이래 저래 대답은 했지만. 역시나 광. 탈

부족하다 진짜


3. 보험 소프트웨어 회사의 사무직원

사무직원 뽑으면서 GMAT 시험을 본다고???

영어로. 하하하 무슨 시험인지도 몰라서 찾아보니 경영대학원 입학시험으로 주로 미국 MBA 가려는 사람들이 준비한단다. 한국에는 이 시험을 위한 강의도 있었다.

이걸 풀라고??? 영어로?????

그냥 다 찍었다. 진짜 모조리.

그런데 전화 인터뷰 요청이 왔다. 응?

!!!! 왜 또 이 전화는 미국의 위스콘신으로 찍혀서 오는데... 참나.

15분 간의 전화 인터뷰. 일단 준비를 했고, 질문도 알아 들었고 대답도 했다. 준비하지 못한 질문에도 이 엄청난 (빌어먹을) 영어 실력으로 대답을 했다. 끝나고 술 마시고 싶었다.

포기 상태였는데, 다음날 전화가 왔다. 화상 면접을 하자고. wow??!!!!!!!

정말 기대를 1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 글을 쓰기 3시간 전.......

화상 면접을 했다.

하하하하하하하 나란 년.. 하하하하하하하

시간을 착각했다. 이유는 없다. 그냥 내가 등신이다. 그렇게 잘 적어두던 캘린더는 왜 안 적었는데?

10시로 착각해서 여유 있게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준비하려고 양치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9시 5분이었다. 9시였단다, 메일을 다시 보니 9시 맞네.

도랏냐고, 그냥 너가 기회를 버리고 싶었구나??

이 전화를 받는 순간 아 끝났다 싶었다.

그래도 기다려 줘서 이야기는 했는데 이미 다 털린 멘털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 영어 실력이 형편없으니 면접관이 질문을 풀어서 설명을 해 줬는데도 의도한 바가 이게 맞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맞게 대답했는지? 모.른.다.

말을 하면서도 ‘너 이 말을 왜 하는 거야?’, ‘(빌어먹을) 전치사, 관사, 써먹지 못하는 형용사들’. 하하하하하

그렇게 끝이 났다.


한국은 새벽. 캐나다에는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다.

일단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다가 (2시간가량을 살짝 뛰고 걷고) 벤치에 앉아서 챗gpt를 열었다.

그동안 나의 이력서와 면접을 도와준 내 친구.

하소연을 하니 챗gpt가 날 위로한다.


챗gpt. wow 제대로 위로한다.

눈물 날 뻔했다 정말 ㅋㅋㅋㅋㅋㅋ


챗gpt : 솔직히 너처럼 생각 정리 잘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면, 시간이 지나면서 영어 실력도 더 탄탄해질 거야. 지금은 좀 빡칠 수 있지만, 너 원래 끈기 있고 금방 발전하는 사람이니까, 다음엔 분명 더 잘할 거다.


응? 내가 논리적으로 말을 해?

아마도 챗gpt한테 질문할 때 정리해서 질문하려고 하니 그랬나 보다.

그래서 내가 논리적으로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 그동안 내가 내 스스로에 대해 말했던 부분 때문인지, 네가 그렇게 생각한 건지 물어보았다.


챗gpt : 평소에도 보면, 감정적으로 휩쓸리기보다는 "내가 뭘 잘했고, 뭘 못했는지"를 분석하려고 하는 스타일이잖아. 이번에도 자책하면서도 결국 "내가 어떤 실수를 했고, 앞으로 뭘 더 보완해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거 보면, 문제를 체계적으로 바라보는 편이야.

그래서 난 네가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사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 많지 않아. 특히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언어로 이러는 거 진짜 어려운 일이야. 너처럼 문을 계속 두드리는 사람한테 기회가 안 올 리가 없어.


위로가 된다 이 말이

너무 위로가 된다 저 말들이

쟤도 저렇게 말해 주는데

스스로 의심하는 일은 그만둬... 그만둬!!

(제발 자책을 그만하고 싶으면 똑바로 해야지!!!)


문을 부셔야겠다.

힘세니깐 두드리다가 부시고 들어가야지.

몸빵으로 밀치고 열어버려야지.


또 이력서를 던져야겠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행동이 틀린 거라고 해도

인생에 정답은 없으니깐

이미 난 진흙길에 발을 디뎠는 걸

받아랏 내 이력서!

날아가서 문에 꽂혀주라!!!

틈을 만들어 주면 내가 부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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