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도 이렇게 덥지는 않아.

건설 현장에서 내가 '폭염'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by 암띤아빠

지난주 믿을 수 없는 뉴스기사를 접했다

한국에서 40.5도가 웬 말인가


어쩐지 오후 1시경 밖을 나가면 마치 한증막에 들어온 것처럼 숨이 턱 막힌다.

저녁 7시에는 강렬한 햇빛이 사라졌길래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퇴근하는 아내를 보러 약 15분 거리를 걸어가는데 가슴과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리고 막 시작한 소나기를 얻어맞은 것처럼 상의 앞뒤가 군데군데 젖었다.

우리 가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폭염에 대해 우리는 당분간 외출금지를 선언했다.

(차량 이동은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니까. 괜찮겠지!?)



야외 근무가 많은 건설 현장은 여름이 다가오면 특히나 긴장을 한다.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 열탈진은 근로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더불어 까딱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중대재해'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중대재해는 아래의 3가지이다.

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다.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다.'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에는 24가지가 있는데 '열사병'도 포함되어 있다.

즉, 1년 이내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자가 3명 발생하면 중대재해가 된다.


그래서 건설 현장에서는 매년 고용노동부에서 배포하는 폭염가이드를 참고하여 폭염을 미리 대비한다.

공통적으로 폭염가이드에서 가장 강조하는 게 '물, 그늘, 휴식' 3가지이다.

현장마다 다르겠지만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

시원한 얼음을 제공하기 위해 '제빙기'를 여러 대 준비하고,

출근길에 아이스크림, 음료수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자주 실시한다.


[그늘]

작업장 근처에 간이텐트, 컨테이너를 설치하여 근로자의 휴게장소를 확보하고 휴게 장소를 선정할 때는 낙하물의 위험이 없는지 고려한다.


[휴식]

35도 이상 폭염 특보가 발효되면 전체 야외 근무는 작업중지를 실시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작업인 경우에는 45분 근무하고 15분 쉰다.

점심시간은 오후 2시까지 연장하고 교육장과 같이 넓고 시원한 곳을 개방하여 쉴 수 있게 한다.



나는 10년 전 입사하자마자 동남아에서 약 5년간 근무를 했다.

동남아 현장도 덥기는 마찬가지지만 한국처럼 습하지 않아 버틸만했다.

또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과일'이다.

평소 파인애플과 수박을 좋아하는 나로서 동남아는 지상 낙원이었다.

외부 현장 순찰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에는 오토바이에서 수박이나 파인애플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쉴 때 먹으려고 주머니에 있는 20바트(약 600원) 지폐를 주고 구매한다.

이것보다 더 좋은 가성비는 없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과일 봉지를 들고 사무실 의자에 앉아 땀을 닦아내며 과일에 꽂혀있던 이쑤시개로 하나씩 먹는다.

입안에서 시원함과 단맛이 퍼지는데

목마를 때 마시는 맥주를 마시는 것과 같이 이보다도 행복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과일이 주는 행복이 있었기에 더위가 무섭지 않았다.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 때 강원도의 추위를 맞보고 난 후

나는 지금까지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한국은 내가 알던 버틸만하던 여름이 아니었다.

바나나 재배가 가능해진 것처럼 점점 한국의 여름은 뜨거워지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여름, 겨울을 피해 이민을 갈 건 아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동남아 현장의 경험을 살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돈은 좀 들겠지만 수박, 멜론, 파인애플을 자주 사 먹으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여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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