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아, 너는 대체 무슨 낙으로 사냐?”
입사 초기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이 문장에는 반드시 다음 세 구절이 생략돼 있는데 바로 ‘술도 안 먹고’ 이다.
나는 술을 먹지 않는다. 정확히는 ‘못’ 먹는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없다. 부모님 두 분 모두 평생 술을 즐기지 않은 걸 보면 아마도 유전일 것이다.
먹지 못하니 먹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아예 먹을 줄 모르는 채로 살았다. 알코올을 내 몸 안에 들이지 않은 지 5년쯤 됐다. (디저트에 들어 있는 알코올은 예외로 한다. 하지만 알코올의 냄새부터 싫어하기 때문에 럼의 향이 강한 까눌레는 잘 먹지 않는다.)
언론사 입사 이후 나를 놀라게 한 것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과음하는 문화는 과연 명성대로였다. 다들 아주 많이, 자주 마셨다. 코로나 시대인 지금은 식사 자리 자체가 크게 줄었지만 내가 들어온 2016년만 해도 점심시간에 술을 먹는 날이 드물지 않았다. 특히 취재원과 함께 하는 날이면 거의 늘 반주가 따랐다. 기자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소문 때문에 홍보팀 대응 매뉴얼이라도 생긴 것일까. 식사를 주문할 때면 대부분 취재원이 “술도 시킬까요”하고 권했다. 오후에 마감을 앞두고도 “그럼 간단히 소맥 한 잔씩 할까요”라고 답하곤 태연히 ‘소폭(소주 폭탄)’을 말고 있는 선배들을 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경외감마저 들었다. 점심이 이 정도이니 저녁 자리는 말할 것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술을 마시는 업계에서 술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별종 취급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술 없이) 무슨 낙으로 사냐”는 물음도 악의 없는 순수한 궁금증에서 나왔음을 안다. 세련된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선배들 대부분은 술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그러니 술을 못 하는 나를 진심으로 불쌍히 여길 수밖에. 세상에 이 재미를 모르다니, 가여운 것.
“언제든 말만 해. 내가 체질 개선 싹 해줄게.”
A 선배는 수년째 말한다. 그 자신도 20여 년 전 나와 같은 체질이었다고 했다. 술을 들이붓고 구토를 하고 또다시 술을 들이붓는 극한의 훈련을 통해 지금의 술꾼으로 거듭났다고 했다. 1990년대 야만의 시절을 술 없이 버티긴 힘들었을 것이다. 피나는 노력 끝에 술을 즐길 줄 알게 된 A 선배는 그래서인지 나도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나 혼자 술잔 없이 앉아 있는 것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찰랑찰랑 물을 채운 소주잔이든 ‘짠’하는 용도로 술을 4분의 1쯤 부은 맥주잔이든 뭐든 손에 쥐여주곤 했다. 내가 소외감을 느낄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저한테 주시면 술 낭비예요.” 아무리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
여하간 내 인생의 즐거움이 없을까 봐 걱정하는 분들을 안심시키려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저도 노력을 안 해 본 건 아닌데요…’ ‘대학 때 몇 번 시도했다 지옥을 맛보고 포기했거든요…’와 같은 변명 같은 항변을 얼마간 반복한 끝에 지금은 이렇게 되받는다. “하하 선배, 이 세상에는 술 말고도 재밌는 게 많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그러하다. 세상에는 술 말고도 즐길 거리가 얼마든지 있다. 퇴근 후 갈 수 있는 곳은 술집만이 아니다.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지하 H 카페의 바삭한 밀푀유 케이크, 홍대 C 카페에서 파는 진한 말차 다쿠아즈와 단호박 케이크, 집 근처 S 베이커리에서 파는 홍차 크림 크루아상까지. 술의 종류 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디저트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선배들이 하루의 고단함을 술로 씻어내듯 나는 달콤한 것으로 스트레스를 덜어낼 뿐. 당이 몸 안에 퍼질 때의 짜릿한 기분을 아마도 A 선배는 모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