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당뇨를 넣어야겠네요.”
보험 가입 상담을 해주던 재무 설계사 N씨가 말했다. 30대가 된 기념으로 내 몸을 위한 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간 자리였다.
친한 후배로부터 소개받은 N씨는 듣던대로 꼼꼼한 사람이었다. 나의 평소 식습관이나 생활 습관, 현재 건강 상태, 가족 병력 등을 빠짐없이 확인한 그는 보험 특약으로 당뇨병을 추가할 것을 권했다.
“당뇨요?” 놀란 내가 되묻자 N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단 걸 많이 드신다니까 넣는 게 좋겠어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보험에 특약을 넣자는 말을 들었을 뿐인데… 벌써 큰일이 난 듯한 기분이었다.
당(糖)을 좇으며 살아온 지 어언 3n 년. 디저트를 즐긴다는 건 당뇨 같은 무서운 병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란 것쯤 알고 있었다. 다만 당뇨의 그림자가 이리도 빨리 어른거릴 줄은 몰랐다.
사실 나는 건강에 비교적 자신이 있는 편이다. 한 달에 사나흘 생리통을 앓는 것을 빼면 아픈 날이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다. 건강 체질을 타고났거나 철저한 관리로 체력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잔병치레를 잘 하지 않고 대체로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나의 식습관을 아는 지인들은 종종 내 건강에 대한 우려를 표하곤 한다. 그럴 때면 내 안의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하고 마는데,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패 삼아 되받는 것이다. “아냐, 나는 (너희와 다르게)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운다고!”
하지만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찝찝함이 남아있었으니… 사랑해 마지않는 빵과 케이크, 아이스크림이 결코 내 몸에 이롭지 않음을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적당량만 지키면 오히려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술과 달리 설탕은 백해무익하다는 사실도. 그래서인지 새롭게 알게 된 이들에게 이런 나의 식생활을 이야기할 때면 나도 모르게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어요” 따위의 말을 사족처럼 붙이곤 한다.
그 뿐인가. 디저트를 즐기는 내내 살에 대한 압박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특별히 마른 몸을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날씬한 몸이 여성의 미덕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체중 변화에 완벽히 무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돌아보면 내 다이어트 역사는 탄수화물, 당과의 전쟁이었다. 고 3 수험생활이 끝난 뒤 나의 몸무게는 인생 최대 기록을 찍고 있었다. 160㎝가 조금 넘는 키에 70㎏을 넘겼는데, 70이라는 숫자를 마지막으로 체중계 위에 오르지 않았다.
나의 몸은 엄마에겐 걱정거리였다. 엄마는 대학 입학을 앞둔 딸이 늘씬한 몸을 가지기를 원했다. 엄마의 ‘딸 살 빼게 하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에어로빅에 요가, 헬스까지 동시에 3가지 운동에 나를 등록시켰다. 당시 나의 운동 루틴은 다음과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약 15분을 걸어 에어로빅 센터에 간다. 1시간가량 격렬히 에어로빅을 한 뒤 바로 이어지는 요가 수업을 들으며 몸을 풀어준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 또는 저녁에 헬스장에 간다. (당시만 해도 근력 운동의 중요성을 잘 몰랐기 때문에 TV를 보며 런닝머신을 타는 것이 전부였다.) 적어도 하루 2시간을 꼬박 운동으로 보내는 셈이었다. 그러나 체중계 바늘은 요지부동. 그런 나를 이리저리 뜯어보던 엄마는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왜 살이 안 빠지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때면 “그러게”라며 다소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실은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운동 루틴 사이 사이에 숨어있던 나의 ‘군것질 루틴’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기 때문이다. 한겨울 집에 가는 길에는 호떡이나 붕어빵 같은 유혹이 넘쳐났다. 마침 수능도 끝났겠다, 풀어질 대로 풀어진 나는 거의 매일 친구들과 군것질을 했고 최소 2시간의 운동량을 가뿐하게 상쇄해버렸다.
체중 감량이 이뤄진 것은 대학 입학 후 수년에 걸쳐서였다. 여기엔 헬스, 줄넘기, 걷기 운동 등 여러 방법이 동원됐다. 식사량 조절도 병행했다. 가장 열심히 다이어트를 할 때에는 지글지글 삼겹살을 구워 먹는 친구를 앞에 두고 당근 조각만 씹어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하면서도 디저트는 끊지 못했다. 당 중독자가 찾은 궁여지책은 밥 대신 디저트로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무릇 디저트란 전체 식사를 마무리하는 음식이 아닌가. (디저트라는 말도 ‘식사를 끝마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desservir’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다이어터에게 본식과 후식을 모두 챙기는 것은 사치였기 때문에 그중 하나를 택한 것이다. 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디저트를 못 먹지 않냐고? 그럴 리가. 밥 배와 디저트 배가 따로 있다는 말은 예외가 거의 없는 절대적 진리다.
하지만 이 또한 어디까지나 차선책일 뿐, 지속가능한 식습관이 아니란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달콤한 케이크로 끼니를 때우면 혈당이 오르다가 금방 떨어져 다시 허기가 지기 때문이다. 30대에 들어서면서는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는 때도 많아졌다. 아침마다 일어나기가 힘들었고, 잠을 충분히 자도 늘 피곤했다. 몸 안이 당으로 가득 찼는데 정작 에너지는 고갈된 느낌이랄까. 특히 지난해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며 마카롱 등을 과도하게 섭취하면서 그 정도도 심해졌다. 결정타는 올해 초 나온 건강검진 결과였다. 이전에는 정상 범주에 속했던 몇 가지 지표들에 적신호가 나타났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여지 없는 빨간 불이었다. 디저트를 입에 넣는 순간의 기쁨이 짧은 데 비해 그로 인한 부작용은 길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디저트를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즐기기 위해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는 단 음료 끊기다.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는 물론이고 각종 주스, 에너지 드링크도 더 이상 마시지 않는다. 단맛이 나는 음료에는 식품 첨가물인 액상과당이 다량 포함돼있는데 이는 설탕보다 건강에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자나 치킨을 먹을 때에는 탄산음료 대신 탄산수를 마신다. 간혹 배달 음식에 탄산음료가 함께 오면 망설임 없이 개수대에 음료를 따라버린다. 이렇게만 해도 불필요한 당 섭취를 꽤 줄일 수 있다. (시럽을 넣거나 휘핑크림을 얹은 달달한 커피는 아주 가끔, 일이 잘 안될 때 먹는다. 역시 당뇨는 산재인 것이다.)
두 번째는 균형 잡힌 식사하기.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에 단백질과 섬유질 등을 추가하도록 한다. 일주일에 몇 끼 정도는 샐러드를 먹으려고 노력한다. 살을 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미 넘치는 탄수화물 대신 채소를 더 몸에 공급하기 위해서다.
세 번째는 맛있는 디저트를 신중히 골라 즐겁게 먹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왕 먹는 만큼 맛이 아주 좋은 것만 엄선해 최대한 즐기자는 의미다. 그저 당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썩 맛있지도 않은 마카롱을 집어 먹거나, 한 조각이면 충분할 케이크를 두 조각 이상 먹는 실수는 이제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냉장고로 달려가 약과를 꺼내먹었으며, 오후에 또 하나를 먹었다. 하지만 각종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통해 지금의 내가 되었듯 나의 식생활, 디저트 라이프 또한 보다 건강해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