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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도동꿀벌 Oct 23. 2021

약과 어벤져스

 월요일 오전 8시 59분. 휴대전화 화면을 손가락으로 쉴 새 없이 밀어 내리며 새로고침을 반복한다. 오래전 고친 손톱 깨무는 버릇이 다시 도질 듯 초조하다. 화면 상단의 디지털시계가 ‘9:00’으로 바뀐 순간, 한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 란에 ‘짠’ 하고 나타난 구글폼 링크를 재빨리 클릭한다. 역대 최고의 반응 속도가 확실하다. 좋은 결과를 기대할 만 하지 않을까. 그러나…


 “‘J 한과’ 양식에서 더 이상 응답을 받지 않습니다. 오류라고 판단되면 양식 소유자에게 문의하세요.”


 이런, 실패다. “나도 실패” “미쳤다”와 같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하나둘 도착했다. 이번에도 ‘10초 컷’이었던 게 분명하다.


 벌써 4주째 월요일 아침이면 반복하고 있는 ‘약게팅’의 풍경이다. 요즘 핫한 의정부 J 한과 가게의 약과를 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가게 SNS 계정을 통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치열해 ‘약게팅(약과+티케팅)’이라는 조어까지 등장했다. 수차례 구입에 실패한 지금은 약이 올라서 약게팅인가 싶지만.


 약과에 대한 집착은 약 한 달 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즐겨 찾는 빵순이 카페에 올라온 약과 후기를 본 것이다. 이 회원은 J 한과의 파지 약과(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부서진 약과. 못난이 약과로도 불린다.)가 지금껏 살면서 먹어 본 약과 중 단연 최고이며, 너무나도 중독적인 맛이라 다이어트도 잊을 정도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이어진 사진은 그 호들갑이 어쩌면 호들갑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꾸덕꾸덕 밀도 높은 속살, 반짝반짝 빛나는 외피, 물엿으로 끈끈하게 이어진 조각들… 아, 이것은 먹어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알고 보니 한 유명 먹방 크리에이터가 이 약과를 소개한 뒤 인기가 급상승했다고 한다. 영상을 찾아본 뒤 약과에 대한 마음이 더욱 커져만 갔다. 나도 저 크리에이터처럼 약과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씩 턱턱 얹어 먹고 말 테야……!


 그러나 운 나쁘게도 내가 이 약과 전쟁에 뛰어든 것은 경쟁의 룰이 바뀐 직후였다. 전국에서 폭발하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한 J 한과가 오프라인 판매를 중단하고 온라인으로 판매 창구를 제한한 것이다. 새로운 룰은 ‘선착순’ 신청서 제출 방식. 매주 월요일 오전 9시 정각 J 한과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오는 구매 링크에서 이름과 주소 등을 최대한 빨리 입력해 신청서를 내야 했다. 구매 수량도 1인당 1박스(20팩)으로 고정돼 더할 수도, 덜 수도 없게 바뀌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 그 흔한 수강 신청 한 번 성공하지 못해 매 학기 엉망진창 시간표를 감내한 나다. 이 싸움에서 승산이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파지 약과를 맛볼 수 있는 날은 빨라도 1년 뒤일 거라고 체념한 그때였다. “나도 할래.”


 나의 한탄을 들은 친구 한 명이 자신도 약과 공동구매에 나서겠다며 손을 들었다. 이어서 또 다른 친구가 합류했고, 합류에 합류를 거쳐 4명이 모였다. ‘약과 어벤져스’의 탄생이었다. 나는 구매 방법을 공유하고, 빠른 입력과 효율적인 약과 배분을 위해 내 주소도 공지에 띄웠다. 일요일 저녁 전열을 가다듬으며 알람을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호락호락한 약과가 아니었다. 4차례 연속 전원 실패. 검색해보니 보통 10초 안에 끝난다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그 과정을 10초 안에 끝낼 수 있는지 나로선 알 수가 없었다. 


 일부 약과 구입 실패자들은 온라인 중고 마켓으로 향했다.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는 약과를 사고 싶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가격은 마구 치솟았다. 한 판매자는 제값의 2배도 넘는 가격에 약과를 올렸고, 또 다른 판매자는 ‘가격을 제시해달라’면서 경매를 유도했다. 심지어는 돈을 받고 약게팅을 대신해주겠다고 홍보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저렇게라도 사먹어볼까 잠시 고민했으나 곧 마음을 다잡았다. 내 손으로 구매한 약과를 꼭 먹고 말리라고.

G가 나눠준 약과. 그 자리에서 바로 한 개를 까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다소 힘 빠지는 결론이지만, 나는 아직도 약게팅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 글을 완성하기 전에 약과를 먹고 후기를 남기고 싶었으나 약과보다 데드라인이 먼저 오고 말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든든한 약과 어벤져스와 그중 한 명인 G가 준 다른 약과가 있다! G는 J 한과의 약과와 최대한 비슷한 맛의 약과를 찾아 주문한 뒤 고맙게도 그중 절반을 내게 줬다. 그 약과 덕분에 힘을 내 마감을 할 수 있었다. 이토록 다정한 친구들에게 약과 맛을 보여줄 수 있기를 다짐하며, 이 글을 약과 어벤져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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