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의 어느 저녁, 뽀득뽀득 씻어온 체리를 먹으며 이 글을 쓴다. 체리는 어쩜 이렇게 예쁘고 맛있을까. 퇴근길 만원 버스에서 생각했다. 집에 가면 냉장고에 체리가 있다고. 흐흐흐. 마스크 밖으로 웃음이 삐져나왔다.
체리, 나에게는 특별한 과일.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체리를 먹을 때면 나는 어른이 되었음을 감각한다.
어릴 때부터 과일을 좋아했다. 딸기나 복숭아, 배 등 대부분 과일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아이였지만 특히 좋아하는 건 수박이었다. 엄마가 낑낑대며 수박 한 통을 사 오면, 제대로 썰지도 않고 수박을 반으로 갈라 하루 만에 수저로 모두 퍼먹곤 했다. 지금도 수박을 제일 좋아한다. 더위를 타는 편이라 여름을 썩 반기지 않는데, 그래도 매년 여름이 견딜 만 한 건 어쩌면 수박의 계절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타지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기숙사에 살기 시작했다. 삼시 세끼 모두 급식을 먹는 기숙사 생활은 곧 과일을 마음껏 먹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후식으로 과일이 나오지 않는 날도 많았고, 나오더라도 양이 아주 적었다. 급식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사과 4분의 1조각, 5~6알씩 달린 미니미니한 포도송이, 귤 1개, 손가락 3개를 합친 크기의 얇디얇은 수박 2조각… 급식 한 끼당 책정되는 비용에 영양소를 고려한 최선의 결과임이 분명했지만, 과일 킬러는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로 대학을 와 자취를 하게 되면서 ‘급식 세끼’는 탈출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제철 과일을 마음껏 사먹기에는 집에서 부쳐주는 용돈 겸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본가 냉장고의 과일을 모두 털어먹고, 배낭 가득 과일을 채워 서울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유학하는 동안에는 그마저도 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마트 과일 코너를 지나치곤 했다.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국내의 동네 마트에서도 열대 과일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 이전에는 대형 마트나 백화점 식품매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체리와 망고 등이 속속 진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망고 맛 주스나 젤리, 케이크 위 체리라면 먹어본 적이 있지만 생과일을 먹어본 적은 없었다. (강원도 중소도시 출신인 내게 열대 과일은 더욱 생소했다. 그 때도 지금도 내 고향에는 백화점이 없다.) 즉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나 먼 나라에서 물 건너온 과일인 만큼 비싼 몸값을 자랑했다. 가난한 자취생인 나는 감히 사 먹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검정 고무신>을 봤다면 이 장면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인 국민학생 기영이는 바나나를 먹고 싶어 한다. 1950년대에 바나나는 아주 귀한 과일이었다. 기영이는 바나나를 먹기 위해 고생만 하다 실패해 몸져눕고 말지만 마음 넓은 형 덕분에 바나나를 먹게 된다. 기영이는 눈물을 흘리며 “하늘 땅 땅 땅만큼 맛있어!”를 외치는데, 나도 체리가 하늘 땅 땅 땅만큼 먹고 싶었다. 취업 준비생이던 어느 날 이런 말을 한 기억도 있다. “비싼 수입 과일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만 월급을 받아도 좋겠다”고. 지금 생각하면 참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바람이었지만 그때는 진심이었다.
소원 성취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6년 차 직장인인 지금은 먹고 싶은 과일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집에서 밥은 안 해도 과일은 먹는다. 냉장고에는 언제나 제철 과일 한두 가지씩 채워두고 생각날 때마다 챙겨 먹는다. 냉동실에는 베리류를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두고 플레인 요거트에 아몬드, 꿀을 넣어 함께 먹는다.
초여름 체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철이 끝날 때까지 부지런히 사다 먹는다. 수년 전보다 가격이 꽤 떨어졌지만 여전히 귀하신 몸이다. 그래도 일 년에 몇 개월이나 먹는다고. 망설이지 않고 척척 담아온다. 여름철 집에 손님이 오거나 누군가의 집에 놀러 갈 때에도 체리를 산다. 뽀득하게 씻어 그릇에 담긴 체리는 보석 같아서 좋은 자리에 제격이다. 체리를 먹을 때 어른 됨을 느낀다는 건, 경제적 독립과 함께 열대과일이 흔해질 만큼 흐른 세월을 실감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꾸만 새로운 것을 욕망하게 하는 세상이다. 나는 언제까지 체리 정도로 어른됨을 느낄 수 있을까. 체리 다음은 무엇이 될지 조금은 두려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