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비 Jan 08. 2020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남들보다 더 특별하게 동물을 좋아한 적은 없다. 나는 수의사다. 한 번도 되고 싶었던 적이 없는 직업을 택해 학교를 졸업하고 제약회사, 그것도 양돈백신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제약회사에 근무한 지 십 년. 동물의 죽음과 농장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르포가 갖는 힘을 간과했다. 역시 모든 관찰은 인문학적이다. 


도축장에 실험용으로 쓸 응고되지 않은 혈액을 받으러 갔던 새벽이 생각난다. 멀지 않은 시골에 자리 잡은 작은 도축장. 그곳에서 단 2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내에 음메 하고 울며 살아 있던 소가 해체되어 정육점 고기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경이로웠다. 이 곳에서는 어쩌면 나의 친구일지도 모를 그 큰 눈망울의 생물체가, 5미터 옆에선 갈고리에 걸린 한우라니. 허무할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일하는 모든 사람이 척척 손발을 맞추어 새벽을 열고 있었다. 소의 정수리에 도끼를 정확히 대어 한 번에 쓰러트리고, 경동맥을 딴 후 뒷발을 쇠고랑에 걸어 천장으로 걷어 올린다. 거꾸로 매달린 소의 목에서 목욕탕 수도꼭지 틀어놓은 듯 콸콸 쏟아지는 핏줄기라기보다 피 폭포에 가까운 그곳에 작은 플라스틱 병을 가져다 대어 피를 받았다. 쓰으윽 소리와 함께 병목까지 찬 뜨듯한 피. 재빨리 뚜껑을 닫고 나는 구석으로 물러난다. 모든 피가 다 빠지고 나면 옆 칸으로 소를 밀어 배를 가르고 내장을 끊어서 바닥에 떨어뜨린다. 자그마한 할머니들이 빠른 손길로 플라스틱 바구니에 내장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긴 칼로 슥삭슥삭 갈라 가죽을 벗겨 뼈에서 살을 발라내어 척 하고 걸면 그 냉동고는 흔하디 흔한 정육점 쇼윈도가 되었다. 도살하기로 한 소가 모두 도축될 때까지 들린 소리는 퍽, 철푸덕, 슥삭슥삭 같은 의성어밖에 없었던 것 같다. 마치 벙어리들이 일하듯이. 


한승태는 말미에 말한다.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학교를 다니는 내내 든 생각은 ‘죽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죽일 수 있다면 죽인다’였다. 


수의사들은 누구나 항상 같은 질문을 받는다.

“동물을 좋아하시나 봐요”

“생명을 살리는 데 왜 돈을 이렇게 많이 받아야 하나요” 


미안하지만 수의학은 절대 동물을 살리기 위한 학문이 아니다. 저자가 ‘닭을 키우기 위해 농장에 간 게 아니’듯이. 가축 수에 의원 의. 윤리 특강이었던가, 공부가 하기 싫으니 이걸 왜 해야 하나 머리를 쥐어뜯다 문득 알게 되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동물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학문이구만. 그러니까 키우는 가축을 먹든, 데리고 살든, 돈벌이에 이용하든 뭐든 아프지 않게 해주는 공부라는 것. 특히 먹는 가축에 있어서, 지금과 같이 대량으로 키우는 동물들은 군집체로써의 수의학이 적용되기 때문에 한 두 마리 죽고 살고 하는 것이 문제도 아니고, 그 동물이 인간처럼 조건 없이 삶을 영속하고 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동물을 먹으면 안 되는가?

우리는 동물을 학대하면 안 되는가?

궁극적으로 우리는 반려동물까지 포함해서, 동물을 이용해선 안되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절대적으로 인간본위적 질문들이다. 그리고 해도 되나 안되나 라는 질문은 이제까지 인간이 동물에게 해온 것을 생각하면, 과연 의미 있는 질문인가 싶기조차 하다. 나같이 냉소적인 인간에게 채식주의란 소심한 사람들의 자아도취적 자위행위처럼 보이니까. 


동물에게 해선 안된다고 간주되는 짓들을, 인간은 더 약한 집단의 인간들에게 허용되는 한 해왔고, 각종 차별과 박해, 학대는 동물에게만 해당되는 흑역사는 아니었다. ‘방해하는 것들이 없기 때문에 허용된다 착각하고’ 행사하는 폭력과 살생은 윤리적이냐 아니냐 보다 우선적으로 관련된 사람과 동물들을 비참하게 만든다. 간단하다. 도축장에서 돈을 억만금을 준다 해도 그 작업이 ‘좋다’ 거나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다거나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무도 그렇다고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도축에 관련된 사람들의 영혼은 날마다 생채기가 나고 있을 것이라는 걸. 그걸 태초부터 원해서 자아실현의 방편으로 삼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것을. 그렇기에, 모든 비참함, 존엄하기까지는 하지 않다 하더라도 최소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들, 그리고 우리보다 연약한 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취급하고 다루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은, 최소한 그 비참함에서 일 센티라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작업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 첫 단추는 이렇게 상세하게 현실을 묘사한 책을 읽고 인지하고 그 숨어 있는 아픔을 공감하는 일이다. 고기를 먹든 안 먹든 일독을 권한다.

작가의 이전글 최초, 그리고 최후의 로맨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