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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Jan 08. 2020

억울해서 읽는 소설

[신중한 사람] 이승우

아이러브스쿨이 한창 인기일 때, 만나던 남자 친구가 어느 날 심각한 얼굴로 얘기했다.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서 쪽지로 연락이 왔는데 그녀가 수술 받으러 해외가기 전에 한 번 보고 싶다고 부산으로 와줄 수 있겠냐고 했다고 했다. 어떻게 할 거냐 물었더니 잘 기억이 안나는 친구라 가서도 어색할 것 같고 그렇다고 사정도 딱한데 거절하자니 미안하다고 했다. 차라리 시원하게 다녀오라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지도 못하면서 하루 종일 고민을 하더니 밤이 되었고 그는 결국 가지 못했다. 신중한 사람, 그는 좋은 사람이었을까.


타석에 들어섰을 때 타자가 듣는 흔한 조언 중 하나는, 칠 거면 확실히 치라는 것이다. 칠까 말까 고민하다가 휘두르면 친다 하더라도 땅볼로 죽을 확률이 높고 정확하게 맞추기가 힘드니 헛스윙을 하다 삼진을 먹게 되니까. 그런데 해보면 알겠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누구보다 확실하게, 강하게 치고 싶은 사람은 감독이나 더그아웃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타석에 들어선 타자다. 그런데 이게 비단 야구에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이 책의 아무 데나 펼치면 나오는 묘사는 ‘이렇게 하지만 저렇게 하는 게 아닌 것이 그렇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식의 문장인데, 사실 의식의 흐름으로 보자면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일이 고통이었다. 아름답지도 쉽지도 않은 문장이라니.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닌 인물들을 따라가며 꼼꼼히 따져보면 너무 맞는 말인데, 세상만사 바쁘게 살아가는 나에게는 ‘그래서 어쩌라고’ 싶은 답답한 인물들이었다. 역시 소설은 직관력과 강한 행동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세상 밖으로 소리 한 번 못 내본 모지리들의 웅얼거리는 변명에 가까운 것 같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고야 마는 사람들, 이런 신중한 사람들이라니.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우리가 혼자 이 세상을 살지 안/못하는 것을. 내가 하는 행동, 내가 하는 말은 진공 속에 떠도는 먼지 같은 것이 아니다. 단 하나도 그런 것은 없다.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힘의 상호 작용이 있고, 시간의 흐름과 원인과 결과가 있다. 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해도 받은 사람은 아는 상처가 있고, 피해망상에 쩔어있는 방어적인 사람들의 공격이, 그 대상은 틀렸을지 몰라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나에게는 아직 세파에 시달려도 남아있는 타인에 대한 선의가 있고, 상대방의 그것도 의심하지 않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소설을 읽는다. 세상을 향해 내 손발을 마음 놓고 뻗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이유 백만 개씩 가지고 있기에. 왜 그런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억울한 사연은 나만 가지고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토록 우울한 소설을 가끔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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