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비 Jan 08. 2020

키스 못하는 남자

[연애에에에세이] 관능 is msg for love


누워 있는 이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분명 잠들지 않은 줄 알고 있는데 내 얼굴을 가까이 대니 입을 조개처럼 앙 다물고 있다. 잠자는 숲 속의 왕자야 뭐야. 알았어, 알았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옆에 다시 눕는다. 하기 싫은 걸 강요할 수는 없지만 왜 하기 싫은지는 알려주면 안 되겠니.



어렵게 성사된 만남이었다.



1년도 넘게 지켜만 보다가 이제 한 방울만 더해지면 넘쳐버릴 것 같아 긴가 민가 하면서 고백해버렸다. 더 이상 떠올리기 조차 민망한 과거의 실패한 고백들로 배운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한다’를 되새기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보아도, 점점 확실해져 가는 내 마음은 알겠는데 이 남자의 의중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아닐 거라고, 그냥 편한 친구라고, 아무리 부정을 해보아도 뜬금없이 오는 연락, 밥은 먹었냐는 문자, 스키장에 놀러 가자는 제안,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조언을 청하는 이 시그널들은 연인이 되기 위한 수작질이라는 것이 명백했고, 그렇기에 나 역시 없는 시간 쪼개가며 모든 송신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중이었다.



이제 누군가가 결정적인 한 방만 날리면 되는 타이밍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둘 다 수줍은 척 딴청을 부리며 건전하기 짝이 없는 대화로 다음을 기약하는 데 먼저 질린 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선빵을 날려버린 것이었다. 내가 스물다섯이었더라면 더 버틸 수 있었을 텐데, 멀쩡한 몸뚱아리 썩히는 게 아까워진 서른다섯의 나는, 어차피 이쯤 되면 안 돼도 그만이다 싶은 맘으로 말해버렸다. 아니라면 아닌 줄이나 좀 알자 싶어서.



의외였다. 실제로 고백받는 건 처음이에요 흐흥, 콧소리를 내며 신나 하더니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래, 너도 아닌 것 같겠지만 니가 한 행동들을 생각해보면 교통정리가 좀 필요할 것 같지? 속으로 쿨한 척 생각했지만 진짜 내 마음속에선 ‘아니라면 어떡하지’ 이 한 줄의 문장만 파닥거렸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도 인생은 우선 재미, 라며 뭐든 지르는 사람이지만, 고백한 뒤 나와의 연애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수락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유가 뭐든 됐다. 그래, 우리 잘 해보자. 쉐킷쉐킷 악수.



그동안 해온 수작질은 그렇게 (비)공식 연애로 이어졌고, 가장 기대가 된 것은 이제 마음껏 만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촉감은, 연인이 되기 위한 게이트의 ID 카드 같은 것.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채 거리를 걸을 때, 얼굴에 손을 가만히 대어볼 때, 머리를 쓰다듬을 때, 내 키에 맞는 어깨동무의 안락감을 느낄 때, 허벅지를 베고 누웠을 때 등등 감각으로 ‘연인됨’을 만끽했다. 한 가지 빠진 것은 고백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야 할 키스. 언젠간 하겠지 뭐.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다.



사실 난관은 많았다. 일단 1년 넘게 불렀던 서로의 호칭을 바꾸는 것은, 우리 둘 다에게 불가능해 보였다. 부르는 이름을 바꿔야 관계가 더 말랑해질 것 같았지만, 굳이 강요하지는 않았다. 바꾸는 게 편하지 않겠어? 물어보는 나에게 적당한 게 생기겠죠 뭐, 라고 대답하던 그가, 변화에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 이 때는 몰랐다. 대화로 서로 존중해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명백한 한국어 존댓말은 너무나 걸리적거렸다. 가속이 붙어도 시원찮을 진도가, 호칭과 존댓말을 주렁주렁 달고 있으니 달릴 수가 없었다. 한 주 한 주 지나가는 동안 바뀌지 않는 그 말들이 점점 불편함을 넘어 불안해졌다.



국제결혼이 흔해빠진 지금 연인에겐 말 따위가 무슨 대수냐, 몸의 대화만 있으면 되지, 라고 혹자는 말할 것이다. 밤마다 같이 뒹굴지는 않더라도 연애에 반드시 필요한 건 손과 손, 얼굴과 얼굴, 팔과 팔의 접선 아닌가. 십 수년 연애하면서 그걸 내가 모를 리가 없다. 게다가 상대는 3년씩이나 사귄 여자 친구도 있었다고 했는데. 당연히 집 앞에서 헤어지며 토닥토닥 안아주고 잘 가, 아쉬운 얼굴로 빠이빠이를 해야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항상 그는 그걸 어색해했다. 내 손을 대는 순간 그의 등짝은 늘 경직되고, 토닥토닥 대신 고삐리들끼리 인사하듯 툭툭 내 등을 씩씩하게 두드리곤 했다. 이 로봇 같은 포옹이라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었는데, 더군다나 결코 먼저 두 팔을 벌려주지도 않았다. 그때마다 시무룩해지는 내 마음을,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 머리로 결정했어도 몸이 안 따라줄 수도 있겠지, 애써 위안하며 얼른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집에 들어가는 수밖에.



잘못된 결정이었나 싶은 것은, 점점 뜸해지는 연락이 증거였다. 그 전에는 왜 이러나 싶게 뜬금없이 잘도 연락하더니 관계가 결정되고 나서는 항상 머뭇거리는 느낌이었다. 십 년 전쯤 소개팅남이 밥 먹었냐고 자꾸 물어본다며 신경질 내서 사람들의 빈축을 샀던 나였기에, 일상을 일일이 보고 하던 전 남친에게 쓸데없는 카톡 좀 그만 보내라고 열폭한 적도 있던 나였기에, 일없이 하는 연락이 안 온다고 ‘왜 연락을 안해’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할 말 있으면 내가 연락하면 되는 거지 뭐, 생각했다.



별 것도 아닌데 이건 아니다, 싶은 일들이 쌓여갔다. 둘이 있는데 나 혼자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늘어갔다. 도대체 이 관계는 뭔가 고민이 시작됐다. 왜 할 거 다 하면서 키스는 안 하는 걸까. 다른 사람이었으면 잘 알기도 전부터 실망했을 ‘무식함’이 드러나는 순간에도 싫어지지는 않아서 희한하다 생각했는데. 전남친과 종류는 다르지만 신경을 긁는 ‘유치함’조차 참을 수 있었는데. 내가 더 노력하면 오래갈 관계라고 확신했었는데.



매일 밤 여기서 포기해야 되느냐를 가지고 나 혼자 씨름하던 어느 날, 수행의 끝에 깨달음이 왔다.


‘그가 나를 전혀 욕망하지 않는다.’는 사실.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저 비참했다. 매력이 없다는 걸, 이성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변명할 방법도 없었다. 혹시 내가 오해한 건 아닐까 싶어 매일 밤 카톡을 뒤지며 누가 먼저 말을 시작했는지, 나에게 애정의 멘트를 날린 적이 있는지 혹은 나의 안부를 물은 적이라도 있는지 찾으려 애썼지만, 나는 불행하게도 한 조각도 찾아내지 못했다.



말이든 글이든 만남이든, 접점에서 매번 나를 거절하는구나를 감지할 때마다,  연애에 약해빠진 내 멘탈과 주는 사랑의 부족함을 책망해봤지만, 이걸 참아낸다고 한들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내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희생한다는 의미이고, 희생의 목적은 사랑이다. 웬만해서 관계를 쉽사리, 그것도 내가 먼저 시작한 관계를 내 손으로 파탄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관계는 내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할 기회를 주지 못할 것 같았다. 먼저 좋아한 사람이 약자라면, 나는 상대방이 그저 반응만 간신히 해주는 그 피동성 때문에 만날 때마다 ‘내가 별로구나’를 자각하며 자괴감에 빠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어떻든 상대를 미친 듯이 좋아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스물다섯과 달리, 나는 이제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다가서기 전에 생각하는 제정신의 서른다섯이었다.



나는 그에게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 나도 그에게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다. 내 노력은, 돌려받을 보증금도 없는 빈 방에 매달 월세를 내는 꼴이었다. 어려운 미션이라도 손에 닿을 듯한 동기만 부여된다면, 얼마든지 하겠는데 나는 그만 맥이 빠지고 말았다.



-----------------------

그만하자 그만해,

이런 바보짓 안해본 거 아니잖아.

무엇보다 상대방이 아니래잖아.

쿨하게 놓아주고 나는 나대로 있어야 해.

궁금해하지 말고,

상대방이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서글퍼하지 말고.


내 맘 달랠 일만 남았다.

---------------------------


그 날 내가 쓴 일기의 한 조각.



관계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나니 미련도 후회도 없이 놔줄 수 있었다. 치어를 방생하는 느낌이랄까. 욕망의 부재를 느끼고 나서도 한 달은 더 만났는데,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라는 사람한테 나는 너무 버거운 사람이었구나. 차라리 내가 카리스마 넘치게 남자 머리채 휘어잡고 막 굴려서 주도하는 것이 어쩌면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이었나 싶었다. 나에게 끌려온 사람들은 보통 그런 걸 기대했으니까. 내가 그들의 영혼이라도 구원해줄 수 있을 것처럼. 전지전능하게, 압도적으로 이끌어주는 여자. 그래야 서로 맘이 편할 것 같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대우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한 시작 지점이라면 나는 이제야 영점을 잡은 느낌.



관계의 평형과 균형.

이제 맘이 편해졌다.



관계의 포지셔닝을 다시 조정하고 나서, 지금도 종종 만나는데 그 이상한 두 달은 우리에게 삭제된 것 마냥 아무렇지 않게 그 전처럼 지낸다. 콩깍지를 완전히 벗어던진 내 눈이 그를 그의 모습 그대로 보고 있어서, 아무리 옆에 가까이 있어도 아무런 감정이 샘솟지 않는 신기한 경험. 씻겨 내려간 듯 편해진 내 마음이 말갛다. 그는 원래 그런 아이 같은 사람이었는데. 다시 정글로 돌려보냈다. 안녕, 나의 모글리. 

이전 05화 연잘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