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에에세이] 야잘잘: 야구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
또또또! 말해버렸다.
이제까지 한 실수와 잘못을 생각하면 바닷물에 이슬 한 방울 보탠 정도에 불과한 일이지만, 사라지고 싶고 죽고 싶고 되돌리고 싶은 때는 항상 말이 문제다.
엄마한테 대들 때나, 직장동료와 거칠게 논쟁할 때, 얌체처럼 끼어드는 차에 대고 쌍욕을 퍼부을 때는 후련함이라도 있는데, 상대방이 아니라는데 자꾸 알려주고 싶은 내 마음, 별 것도 아닌 그걸 주고 싶어서 안달하다 항상 TPO에 절대 들어맞지 않는 말을 하고 그 다음 날 내내 그 말의 지옥에서 헤맨다.
고백은 주일에 성당에서나 할 일이지 내 마음의 무게를 덜기 위해 상대방에게 남용하면 안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진심, 그노무 진심이 내 인생의 대부분을 좀먹어왔다. 상대방에게 뜻하지 않은 호의를 받을 때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냉소주의자 주제에, 남에게 받은 호의는 빚이라도 진 듯 되갚지 못해 안달하는 주제에, 내 진심이나 호의조차 그게 폭탄이라도 되는 듯이 조신하게 마음 속에 지니고 있지 못한다. 그렇게 상사에게 내 진심을 토로하고(쓸데없이), 친구에게 섭섭했던 점을 (굳이) 얘기하고, 호감가는 남자에게 밥이나 한 번 먹자고 (갑자기?) 메시지를 보낸다. (정말 쓰고 보니 최악이다).
물론 말들은, 그 아래 어마어마한 생각덩어리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 주렁주렁 달려있는 법이라, 그나마 하고 싶은 말은 참을 수 있는데(이것조차 알코올로 해제되면 끝장), 어떤 생각을 ‘안해야지’라고 결심한다는 건 성불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것 같다. 제발, 진심 같은 건 나에게나 중요한 거니까 꺼내보이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해보아도 가끔 그것들이 내 입에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뛰쳐나갈 때, 나는 좌절한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진심을 실로 탐닉한다는 것.
: 겉으로 보여지는 것 말고, 니가 보여주길 원하는 그거 말고, 진짜 너의 생각이 뭔데?
한 번 궁금해지기 시작하면, 생각이 떨쳐지지가 않고, 그 생각들이 멍울대다 말로 나와버린다. 그러니 궁금해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늘, 피곤하리만치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궁금하다. 상사가 회사와 나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가 궁금하고, 친구는 왜 나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지가 궁금하고, 왜 이 남자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지 궁금하다. 내 맘대로 짐작하기보다, 직접 물어보고 답을 알고 싶다. 답을 알아야만, 더 이상 그 생각을 안할 수 있으니까. 답을 알아야만, 내 생각의 입장을 정할 수 있으니까. 모르면서 그러려니, 내 마음만 토닥이며 달래다 마흔 넘어 오춘기와 갱년기 칵테일 쌍폭탄 맞고 인생 랙 걸린 사람들을 봐와서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까요 라고 무던하게 넘어 가지질 않는다.
물론 내 질문에 답을 해주는 세상과 타인의 친절함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내 습관 같은 궁금함과 남들이 말해주기 싫은 걸 알고 싶어하는 이 변태 같은 내 마음의 무례함에 대한 짜증은 짬뽕이 되어, 나의 자기혐오는 늘 내 인생에 발목까지 찰랑찰랑 물이 차 있다. 아직은 다행히 익사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다가도 가끔 금주와 묵언수행이 실패한 그런 날엔 접시물에 코를 박고 싶어진다.
특히 취약점은 연애질. 다른 건 다 열심히 하면 더 잘하게 되던데 이건 도통 늘지가 않는다. 적성에도 사실 안맞는 것 같고(정신승리). 줄 생각이 없는 상대방의 진심을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질머리로는 불가능한 미션인 줄 알면서도 번번이 저지르는 너무 이른 고백, 그리고 상대방으로부터 돌려까기를 그렇게 수없이 당하면서도, 왜 나에겐 스킬이 생기지 않을까. (사실 돌려서 거절한다는 것도 남들이 말해줘서 알았.....) 연애라는 바다에서, 눈치와 필터라는 최소한의 생존전략조차 없는 나는, 그저 바닷가를 하릴없이 서성이는 중. 안되는 일을 두고 왜 안되는 거지 백방 고민해보지만, 쉬운 결론은 역시 연잘잘이다. 연애도 잘하는 놈이 잘하겠지.
나도 내가 별로라서 괴로운 이 와중에, 내 주변의 연애 백단 고수(이쁜이)들이 나에게 ‘왜 남자랑 대화를 하려고 해’라고 충고할 때, 나는 또 좌절한다. 아 진짜 그렇게까지 생각해야 돼? 라는 마음과 그래야 서로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성관계의 상호의존성이라는 것을 내가 모르지 않기 때문에. 대화하는 파트너를 만나려면 차라리 여자를 만나야 하는 건가도 잠시 생각했었지만 뼈(속까지 헤)테로라, 그냥 이대로 정글에서 굶어죽더라도 사냥을 다녀야 할 운명인 것 같지만.
있지도 않은 매력 발산은 둘째치고, 점점 사냥 성공율이 낮아지는 건, 컨트롤이 안되는 내 세 치 혀 때문만이 아니라, 내가 시간거지라서다. 항상 내일 죽을 사람처럼 오늘을 빠듯하게 살려고 아둥바둥 하면서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초조함 때문에, 상황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망한 일들은 늘 그랬다.
망한 건 망한 거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연포자의 삶을 내가 택한 적은 없지만, 강제수용되고 있는데, 솔직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로코나 보다가 한번씩 옛날 생각하면서 피식 웃어주고 궁금한 일들을 파헤치며 글이나 쓰다 죽어야겠다. 배배 꼬인 생각과 말과 사건들을 하나씩 실타래 풀어보는 재미는 글이든 연애든 똑같으니. 들고 있기엔 너무 무거운 내 진심과 자기혐오는, 글로 옮겨 종이 위에 뿌려버리고 나는 다음 백지를 다시 펼칠 수 밖에.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만큼 거창한 주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다만, 지금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나를 죽이지 않고 살아가려면, 안쓰고는 배길 수가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