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자식을 가지면,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돼.
나보다 열 살쯤 많은 지인이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만나 사랑과 결혼과 연애 등에 대해 냉소를 날리던 내게 한 말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애정,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을 대상이 생기는구나, 무엇보다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대부분이 뭔지는 모르지만 어렴풋이 지속적으로 받아 결국 작든 크든 폭발하게 만드는 그것들은 수치심, 수모 같은 것들이다. 현실세계에서 누군가가 타인에게 이것들을 주려고 했거나 줬다면 모욕죄로 고소고발을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소설은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이야기들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주는 사람들은 항상 그렇다. 받는 사람을 위해서 주려고 하고, 혹은 받는 사람이 기뻐하며 나에게 고마워하는 그 상상에 미리 취해서 즐거워한다. 이런 선의와 환대를 거절하기가 그리 쉬운가. 나만 쓰레기가 되겠지.
아직 어려서 먹혔던 어느 날, 동생이 알바를 하던 와인집에 혼자 놀러 가, 구석에서 책을 읽으며 홀짝거리고 있는데 친구들과 떠들던 사장님이 나를 발견하고 이것저것 말을 시키길래 짧게 방어적으로 대답하며 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으실까 속으로 짜증내고 있는데 갑자기 동생에게 와인 1병을 가져오게 하며 선물이라고 주셨다. 그걸 받아서 집으로 가져왔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동생과 싸웠던 생각만 난다. 왜 그렇게 싸가지없게 대답하고 사람 성의를 무시해서 자기를 곤란하게 만드느냐는 동생에게, 이유 없는 이런 선물은 크게 봐서 선불 화대랑 뭐가 다르냐고 얘기했더니 동생이 세상 살다 이런 도끼병은 처음 봤다며 어이없어했었다.
물론 어른이 주시는 선물은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게 예의이고 나를 위해 누군가가 선물을 준비한 그 마음과 노력을 생각하면 기뻐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나도 안다. 하지만 정말로 어떤 호의와 선물에도 의미가 전혀 담겨 있지 않은 건 본 적이 없다. 감정이든 실물(?)이든 거래를 위한 도구가 선물이지 않을까.
거래.
나는 모든 관계는 중립적인 의미를 담아 거래라고 생각한다. 결혼부터 시작해서 친구도, 회사도, 심지어 부모 자식도 일종의 transaction이 존재한다. 수모든 모욕이든, 그것이 누군가 에게는 선물이고 친절이고 선의의 의도였다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기대치가 서로 어긋났다는 뜻. 관계를 거래로 생각하면 대부분의 관계의 문제가 정리된다. 다만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서로가 파트너로 인정을 하느냐, 즉 타인을 완벽하게 자신과 다른 존재로 인정해야만 관계를 거래로 치환해도 상호 간에 무례해지지 않을 수 있다.
자식을 온전히 사랑하는 우리 엄마에게 받은 그 관심과 사랑이 나는 왜 죽도록 싫었을까. 우리 엄마는 자식들을 온전히 사랑하는 법은 알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녀에게 자식을 타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직 요원한 숙제다. 아직 덜 자란 아가를 자기 좋을 대로 사랑하는 건, 다 자란 성인이 된 자식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 같다.
필요할 거라고 생각되는 것, 받고 싶을 거라 짐작되는 것 대신, 진짜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주려고 노력하는 일. 이것이 우리가 상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친절이지 않을까. 그전에 남이라는 존재는 절대, 그리고 당연히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해버려야 한다. 싫어도. 진정 남을 위한다면. 뭐든 주고 싶어도 봐가면서, 꼭 필요할 때만 주자. 스토킹도 자기 딴에는 애절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