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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Jan 08. 2020

라푼젤의 기다림으로

[낭만적 연애와 그 이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없는  하다.”       p.27


그렇다. 우리 부모님 역시 어떻게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해야 할지에 대해서 무모하리만치 알지 못해서 숱한 밤을 싸우느라 지샜고, 나는 열일곱살에 ‘결혼 생활의 종말’을 보았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집구석이 싫다며 일찌감치 결혼으로 오피셜리 탈출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엄마의 시집살이를 십수년간 상담해온 장녀로써의 내공으로 고부갈등마저도 이미 마스터한 나는, 결국 그래봐야 다른 집 며느리 아니겠냐며 연애에 대한 달콤한 꿈을 꾸기 전에 이미 ‘그 이후의 일상’에 대해서 완벽하게 무장한 채 스무살을 맞이했다.


그러나 알아봐야 스무살이 뭘 알겠는가. 내 안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여중, 여고 6년간의 감금생활을 마치고 매일 맞닥뜨리는 모든 소년들은 나의 사냥감이었다. 가능한 모든 모임에 가입하며 캠퍼스를 누볐지만 2년이 지나고 알게 된 건, 모두가 다양하게 지극히 평범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나 역시 그랬을 테지만.  그러나 이런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야, 못올라갈 나무는 안쳐다보는 게 좋지 않겠어?”


과동기 하나가 나에게 한 말이다. 은근히 모든 여자애들이 좋아하던 다른 과동기 녀석을 내가 쫓아다니고 있다는 걸 우연히 듣고는 당연히 거절당할 나를 생각해서 청하지도 않은 충고를 해주었다. 알고 있었다 나도. 내가 그 녀석에게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그렇지만 나는 이미 사랑에 ‘빠져있었다’.


부산에 살던 그 짝사랑남을 바래다준다며 따라갔던 어느 날, 그 녀석이 버스에 타기 직전에 집에서 인쇄해온 프린트물을 쥐어주며 버스 타는 동안 심심하면 읽어보라고 했다. 진중권 씨가 쓴 책이 재미있다고 한 기억이 나서 뽑아놓은 꽤 긴 인터뷰 기사였는데 제목을 본 그 녀석이 갑자기 프린트 물을 꽉 쥐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며 나에게 말했다.


“하… 이래서 내가 너랑 만난다니까”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숙제를 제일 먼저 내고 칭찬 받은 학생의 심정이 이럴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것을 찾아준 그 뿌듯함과, 드디어 이렇게 넘어오는 건가 하는 승리의 쾌감으로 그 날 혼자 집에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그렇게 한 뼘씩 우리는 가까워졌고 두 번의 여름과 두 번의 고백을 거치고 오피셜 커플이 되었다.


아담과 이브.


내가 그 연애를 떠올릴 때면 항상 강렬하게 기억하는 느낌이다. 태초의 인간이자 세상에 둘 밖에 없는 연인.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며 주변 사람과 사물이 전부 배경으로 전락해버린, 그렇게 눈이 멀어버렸던 그 시절은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찬란한 추억이다. 이렇게 충만한데 도대체 왜 사람들은 바람을 피울까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 그리고 이 모든 게 호르몬의 장난일 뿐이라 해도 사랑이라는 장르에서 이미 역치를 찍어버린 연애.


아무리 인생이 누추해져도 농담 한 마디 할 여유는 가져야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나요 묻는다면 70살까지 서로 놀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라고 답했을 것이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하고 인생 계획을 세우기 전에 무조건 이 남자라면 내가 지고 살아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사람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나만은 아니라고 변명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사람을 닮은 아이는 얼마나 이쁠까 상상했고 같이 손잡고 걷는 일이 가장 행복했다.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그 말을 하는 내가 어색하지 않았던 호시절은 5년 후 종지부를 찍었다.


1년 내내 헤어지자고 말하는 연인을 붙들고 있는 일은 서로에게 해로웠다. 특별한 이유도 사건도 없는데 계속 너를 놓아주어야겠다는 연인의 속내는,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 나 혼자 붙들고 있을 수도 없었다. 마지막 실오라기가 손 끝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무력하게 물러섰고, 세상은 온통 무너져내렸다.


리부팅 리부팅 리부팅.


아무 것도 즐겁지 않은 기나긴 침체기를 겪으며 나는 진공상태에서 다시 한 개씩 벽돌을 쌓아올리며 자존감이라는 성을 쌓아올렸다. 사람이 아무리 마음을 다해서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에겐 영원히 함께 하자는 약속 따위는 더 이상 순백색의 믿음이 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숨겨온 냉소의 갑옷을 다시 꺼내 입으며 계속 결혼, 가족, 연애, 사랑들은 나에게 피상적인 관념의 놀이로 전락했다.


십년쯤 지나고, 그 사이 무수한 커플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도 하는 것을 지켜보며, 결혼같은 거 나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제 내가 누군가에게 뭐든 베풀어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감지한 이후에는 희미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편지와 꽃을 들고 청혼한 날, 나는 기회가 왔다는 듯이 이별을 통보했다.


“미안, 도저히 못하겠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랑 하고 싶은 일을 헷갈렸던 것 같아.”


울면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그 사람의 모든 짐을 싸서 현관 밖으로 배웅한 날,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쾌감을 느꼈다. 처음 만나던 날부터 결혼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곁에 있는 5개월간, 나는 도살장으로 향하는 벨트 위에 올라탄 돼지 같은 운명을 느끼며, ‘그 이후의 일상’을 견뎌내기 위한 추억의 빈약함과 저지른 뒤 내가 하고야 말 후회에 대해 버틸 자신이 없었다.


남들 다 하는 결혼, 나라고 왜 못해, 라고 무시했던 결혼에게 된통 당한 느낌이었다.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고 사회적 경제적 단위로 존재하는 가정을 만들기 위한 제도일 뿐이라며 철저히 무시했는데, 이마저도 100% 감정으로 넘쳐나야 저지를 수 있는 과정이구나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없으면 못살 것 같아서, 이만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에게 도움이 되어서, 무슨 이유든, 결혼을 하기로 내가 결심을 했다면, 그 동기는 이미 100%인 거라 그 과정을 버텨낼 수 있었을텐데, 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할 것 같아서 하려고 하니 결정적인 순간에 결국 거절을 하고야 말았다. 물론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지만, 헤어진 뒤 명절에 집에 내려가서 아빠에게 헤어졌다 말하고 나서 대학 졸업 이후에 처음으로 아빠 앞에서 펑펑 울었다.


‘조화성은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 조건이 아니다’ p.284



부모님이 이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얘기해주었을 때, 사람이 살다 보면 할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이혼하지 않은 부모님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자식으로써 나에게 상처를 주고 모욕감을 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본인들이 한 약속을 깨트리지 않으려고 하는 그 태도와 나름의 의지가 나에게 의미가 있다. 지켜지는 것들은 대체로 아름답다 생각하기에, 스스로 결과론적 비혼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한 사람과 오랫동안 지내며 알게 될 그 인생의 비밀을 가질 기회가 남아 있지 않을까 기대를 버리진 않고 있다. 나가보지 않은 창을 통해, 성 아래로 길게 땋은 머리를 언젠가는 늘어뜨릴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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