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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Jan 08. 2020

관통 중입니다, 청춘을.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청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들은 이미 청춘을 다 누린 자들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는 법이니 청춘의 바깥에 서야 비로소 청춘이 보일 터. 푸르른 봄, 너무나 싱싱하고 화창한 단어인데 슬프게도 시간이 지나간 뒤에야 돌아보며 말할 수 있는 안타까운 이름, 청춘.  


아주 먼 옛날, 국민학교 4학년이 된 첫날 아침, 운동장에 모여 반을 가르며 낯선 아이들 틈에 섰을 때, 문득 내가 ‘고학년이 되고야 말았다’는, 인생이 뭔가 지나가고 있다는 두려움을 난생처음 느꼈다. 고학년이라니. 내가 벌써 4학년이라니. 이러다가 먼 훗날 내가 언젠가 죽고 말 거라 생각하니 머리가 아득하게 발바닥 간질거리는 두려움이 엄습했던 기억. 여전히 이 ‘지나감’의 더러운 느낌은 간헐적으로 온몸을 관통하는 두려움으로 남아 하루라도 뭔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나를 더 절실하게 살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4학년이 아닌 40살이 되고 나니 불혹은 모르겠고 살아온 날이 살 날보다 많은 것 같아 더욱 생이 절실해진다. 


물론 내 이십 대와 삼십 대는 셀 수도 없는 실수와 낭비, 부끄러움 등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역시 돌아보면 넘쳐났기에 낭비할 수 있었던 시절이 좋았다.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오랜 시간 책을 읽을 수 있었고, 하루 종일 극장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누군가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 충분히 상처 받고 또 상처를 주기도 했었다. 돈을 얻기 위해 부모에게 사용내역을 사전 고지할 필요가 없었기에 돈이 생기는 대로 쓰고 싶은 곳에 쓸 수 있었고, 건강하지 않다는 게 뭔지를 몰라서 밤새 술을 퍼마실 수 있었다. 역시 생각해보니 좋았다. 아직 흥청망청 할 수 있는 힘이 있기에 마구 까불어대던, 가진 것 없고 뭘 몰라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무엇엔가 몰두하던 그 시절이 좋았다. 더 나이 들면 눈치 보게 될까 봐, 주변을 신경 쓰느라 내 삶을 살지 못하게 될까 봐, 힘들다며 포기할까 봐 꾸역꾸역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 그게 내 청춘의 부제이지 않았을까. 


방금 과거형으로 끝마친 앞 문장이 몹시 거슬린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끝낸 것이 없는데.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모진 말도 가려가며 하게 되었고, 세계가 대충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인생에 뭐가 튀어나올지 궁금해서 가끔 가슴이 뛰고, 내가 과연 어떤 인간으로 이 생을 끝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인데. 정말이지 청춘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지나간 시절을 돌아보는 일만큼은 자서전 집필용으로 일흔 정도에 하고 싶은 일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지금 나이를 생각하면 서른다섯에 청춘의 문장들을 뽑아내어 인생 다 산 양 써댄 이 글이 매우 부끄러울 거라 짐작된다. 아직 시퍼렇게 젊은 놈이 뭘 이런 걸 썼을까. 건방지게 이십 대를 뒤돌아보며 젊은 한 때를 추억하다니. 사실 추운 겨울밤에 스탠드 불빛 아래 뒹굴대며 귤 까먹듯 한 꼭지씩 읽는 맛이 있는 책이었지만 나는 이 책이 좋았다고 말하기가 싫다. 내 청춘도 지나가버린 양 말하게 될 테니까. 청춘이 나를 놓아버릴 때까지 악착같이 들러붙을 작정이기에 내 청춘의 문장들, 여전히 나에게 유효한 문장들을 되내어본다.  



“Be realistic, Demand the impossible! 

-       체 게바라”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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