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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디 Mar 25. 2022

딩크 아니라 돈이 없어 못 낳는 겁니다만

자꾸만 사람들이 우리 부부에게 딩크족이냐고 묻는다. 그럼 우리는 이렇게 딱 잘라 대답한다.


'딩크가 아니고, 돈이 없어서 못 낳는 거야.'


며칠 전에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친구는 그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알릴 소식이 있다고 했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다급하게 물었고 친구는 둘째가 생겼다고 느긋하게 말했다.


축하의 말을 마친 나는 부러움이 섞인 날숨을 뱉으며 통화를 마쳤다.




식당에 오는 아가 손님들을 보면 빨리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심이 짙어질 때가 있다. 우리와 똑 닮은 아이가 꼬장꼬장 거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속에서 설렘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직 아이를 갖기에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안정적인 수입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고 무엇보다 가게를 함께 운영하는 터라 한 사람이 빠지면 그만큼 인건비가 소비되기에 더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모든 맞벌이 부부가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더러 아이를 갖는다는 문제는 본래 무거운 사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래서 인지 더욱 조심스럽다.


결혼한 지는 2년 하고도 7개월 정도 지났다.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코로나 시국에 식당을 열고 하루에도 몇번 씩 반복되는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그렇게 음식을 팔고 웃음을 팔며 먹고살고 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나름 하루를 만족할 만할 수준으로 살고 있는 우리 부부는 이따금씩 '자녀 계획' 이라는 것을 입 밖에 거론하기도 했지만 짧은 토론 끝 결론은 언제나 '2, 3년 후'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여건이 좀 더 보충 되어야 한다는 판단이지만 이와 연결된 주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오직 엄마 아빠의 힘으로만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욕심, 그것이다.


나는 내 아이는 내가 키우고 싶다. 해가 좋은 날에는 아이와 함께 바다에 나가 작고 고운 발을 적셔주고 싶고 비가 흐리게 오는 날에는 눅눅한 거실에 나란히 누워 재즈 음악을 듣고 싶다.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산책을 한 후 단 잠에 빠지는, 그런 일상을 나의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다.


반면 여건 때문에 내 아이를 부모에게 맡긴다면? 그건 아이에게도 물론이고 특히나 부모님에게 너무도 힘든 일처럼 느껴진다. 자식들을 다 키워내고 이제야 자기 몸 하나 챙길 시간이 왔는데 그 시간마저도 자식에게 희생돼 육아를 다시 시작한다니. 너무 슬프지 않은가. 부모가 일정 금액을 대가로 받는다고 해도 여전히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부모 쪽에서 먼저 자신들이 손자들을 돌보겠노라 자처할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거절 의사를 밝힌 지 오래다.


경제적인 여건에 대해서는 남편이 세운 확고부동한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을 따르면 된다. 그것은 바로 '내 새끼가 사달라는 거 다 사줄 수 있을 때 애를 낳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 능력 없는 부모에게서 자란 남편의 상처까지 반영된 기준이다. 또한 부모의 손이 아닌 외조부모의 손에서 자란 남편의 이유 있는 판단이며, 결핍된 부모의 사랑으로 인해 외로운 어른으로 자란 남편을 존중하는 나의 선택이다.




남편의 부모는 본인들의 삶이 너무나도 중요한 나머지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뒷전에 둔 사람들이었다. 자식을 자신들의 성공 수단으로 여기며 살던 그들은, 오빠와 나는 호주 일류 호텔에서 일하다가 만난 사이이며 내 아들은 결혼식을 하자마자 호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그의 지인들에게 거짓말을 하곤 했다. 사실은 우리는 작은 동네 레스토랑에서 만났고 호주는 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 코로나 때문에 국경이 막혔으니까. 그의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 둘을 앉혀 놓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네가 성공해아빠 어깨가 살지. 빨리 성공해라'


오빠네 부모는 항상 남편을 주변 가족 혹은 당신들의 지인 자식들과 비교를 했다고 한다. '00는 이번에 반장 됐다더라. 넌 뭐 하고 있는 거니?' '00는 이번에 성적이 엄청 올랐다더라. 너도 열심히 해라' '어쩜 걔는 그렇게 똑똑하니?'


그리고 그 비교는 아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지금까지 이어졌다. '너 내 친구 00 알지? 걔 아들이 이번에 변호사가 됐는데 압구정에 사무실 있다더라.' '00는 돈가스 집을 열었는데 하루 매출이 200만 원 넘는다더라. 너도 돈가스나 해봐라.' '00 와이프가 인터넷으로 무슨 상품을 파는데  연 매출이 100억이라더라. 00한테 그거나 해보라고 해봐라.' '00네 집안이 강남에 거기 큰 병원 거기 원장 사촌이라더라.'


그의 친가 식구들 또한 남편의 부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식당을 열었다는 남편의 말에 고모들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가 뭐 할 줄이나 아냐?'며 비아냥거렸다. 이 고모들은 결혼식 날, 높은 구두 때문에 발이 저려온 내가 잠깐 앉아 쉬고 있던 그때 나를 가리키며 '쟤 병 걸린 거 아니냐?'라고 했던 사람들이다.


이러해서 저러해서 남편은 준비가 되기 전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무책임하고 성숙하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가 안된다면서. 외조부모님이 없었다면 자신은 정상적인 인간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하던 그는 순간 매워진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우리가 아직 아이를 만들지 않는 이유가 정말로 돈 때문인지 아닌지 분간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오빠가 모든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다. 나는 그의 아내로서 앞으로 펼쳐질 그의 인생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언제까지나 그의 편에 서서 그를 어루만져주고 싶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는 지금까지 충분히 외로웠다. 그리고 그의 내면에 사는 그 아이도 아직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난 가끔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숨 죽여 떨어지는 그 눈물. 이로써 나는 그를 완전하게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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