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사랑이란 건 말야

이유를 넘어설 때 시작되는 거야.

by beennotdeep


교양 시간에 정의내리기 라는 걸 들었어요.
추상적인 단어에 정의를 내려보는 시간이 잠깐 있었는데,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전 '사랑'을 정의해보려고요.

​제가 생각한 사랑의 정의는
"무언가에 친밀함이나 정을 느끼는 데 이유가 없는 것" 이에요.

이유가 없다는 게 가장 중요해요.
좋아함을 시작한 계기에는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감정이 깊어져서 사랑까지 가면 이유 자체를 넘어서서 무관해져야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상대가 키가 커서 좋아한다고 쳐보자고요.
어느 날, 사고로 그의 다리를 절단해야만 한다면 물리적인 신장은 작아지겠죠.
그럼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사라졌고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도 있잖아요.

또, 어떤 이유로 사랑한다고 치면
'이유'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교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유'라는 대가를 빌미로 내 감정을 준다는 건데 그런 대가성인 사랑은 갑과 을 / 혹은 애완동물과 주인같은 관계에서 하는 거라고 보거든요.
(물론 전 제 고양이를 대가 없이 사랑해요.)

위의 말에 따르면, 부모 자식 혹은 연인 간에도 '어떤 이유 때문에 널 사랑해.'라고 선언하는 건 감정의 주체가 이 관계를 갑을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을 쪽에서 사랑을 받기 위해선 그 이유를 계속 제공해줘야만 한다는 거에요.
어찌 보면 폭력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저는 사랑이 이유가 없는 감정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제 사랑에는 이유가 없어요.
아마도 저는 조건부적인 사랑에 질린 걸지도 몰라요. 이유 없는 진짜 사랑을 꿈꾸는 건 어쩌면 저를 위한 정의 내리기였습니다.

어찌됐건요,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대가가 없는 순수한 감정을 받는 쪽이니 그 사실이 한 번이라도 힘내볼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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