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냥 위로받으러 왔는데 너 지금 뭐하는?
당시 나는 신문사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에야 그 점괘가 나에게는 더 잘 맞는 분위기의 회사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지만, 그때는 쌀 한 톨의 여유만치도 없던 때라 화가 치솟았다. 호통에 가까운 점괘를 무려 한 시간 동안 듣고 나서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왜 돈을 주고 혼나야 하지? 나는 돈을 주고 평안과 덕담을 사고 싶었던 것뿐인데. 나는 5만 원을 복채로 내고 돌아오는 길에 울었다. '내가 들어야 할 얘기를 들은 거야', '분명 이 얘기가 도움이 되는 날이 오겠지' 돈을 들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 합리화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데 애꿎은 에너지가 들었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사주 타로 할 것 없이 돈 주고 혼난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사정 뻔한 힘든 사람들을 닦달하고, 다그치는 상담사들이 아주 많다. 사주 타로 볼 줄 안다고 타인의 인생을 이래라저래라 평가할 자격은 없다. 그래서 몇 번 상담사들과 싸운 적도 있는데(ㅋㅋㅋ) 이들의 답변은 하나같이 '내가 선택한 결과'라거나 '싫은 말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라고 꼰대 발언을 곁들이며 나를 탓했다.
그래서 나는 타로카드를 직접 공부했다. 내가 취준생 시절 만났던 사람처럼 타로카드를 뽑으면 그게 마치 하늘의 명령인 양 '꼭 그래야만 한다'라고 다그치는 사람들 때문에 기분 상하고 싶지 않았다. 돈을 들였음에도 타로 상담사의 상황에 따라 점괘가 많이 달라졌고, 심지어는 그의 컨디션에 따라 설명이 오락가락했다. 내 맘 편하자고 타로를 보러 가서는 후련해지기는커녕 마음의 짐만 잔뜩 품고 나온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내가 타로카드를 볼 줄 안다고 하면 눈을 빛내면서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는 사람,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멀찍이 등받이 쪽으로 몸을 붙이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뉘었다. 그들은 타로카드를 믿거나, 믿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나는 그들에게 거꾸로 물어보곤 한다. 카드를 어떻게 믿나요? 카드는 그저 카드일 뿐인데 어떻게 '믿기'까지 할 수 있나요?라고. 타로카드를 공부하기 전에도 타로점이 믿음의 영역보다는 그냥 위안의 한 방법 정도에서 머물렀으니까.
오컬트, 점괘, 서양식 주술... 뭐 이런 단어들이 타로카드에게 미래를 볼 수 있는 신묘한 힘이 있다고 믿게끔 만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타로카드는 믿고 자시고 할 게 없다. 그냥 78장의 카드들을 조합해서 내 현상황을 파악하는 도구일 뿐이다. 미래를 점칠 수 있었으면 나는 지금 벌써 펠레의 문어처럼 유명 해졌겠지. 타로카드가 정말로 그렇게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주술 도구였다면 누구나 타로카드를 읽으려고 안달할 테다. 아니, 애초에 그런 위험한 카드를 막 쿠팡, 네이버 쇼핑 같은 곳에서 만 얼마를 주고 판다는 게 말이 되나? 타로카드를 읽을 줄 아는 나에게 타로로 미래를 본다는 건 외계인을 봤다는 소리보다 황당하게 들린다.
타로카드가 미래를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마 사주와 함께 묶이면서부터인 것 같다. 사주는 통계학이기 때문에 세운에 따라서 어떤 기운이 들어오니 대략 어떠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나와 같은 사주를 타고난 사람이 평균적으로 대한민국에만 100명가량 된다고 하는데, 그들이 모두 이 순간 나처럼 노트북 앞에 앉아 주절주절 타로에 대해 쓰고 있을 리 없다. 타고난 기질과 환경, 선택으로 인해 인생은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사주도 명확하게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려주지 못하는 셈이다.
타로카드는 거울이다. 궁금한 미래나 남들의 속마음, 백설공주를 보여줄 수 있는 요술 거울이 아닌, 유리 뒤에 아말감을 발라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사람들이 보는 얼굴이 아니라는 것. 거울 속 내 모습은 내 눈을 거쳐 뇌에 입력되는 것이지 현실 세계에서 보이는 실상을 담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타로카드도 마찬가지다. 타로카드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있었던 일들을 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것뿐이다.
같은 회사에 일하는 매니저님이 샤머니즘 얘기하는 메신저 단톡방에 보내주신 영상 하나. 당시에는 바빠서 못 보다가 퇴근길에 재생해서 봤는데 너무 웃겼다. 카드 이미지에 상황을 대강 비벼서 맞히는 내용이다. 뭔가 안 좋은 의미의 카드가 나오면 최근에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무한정 질문을 되풀이한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들어맞는 상황이 나오기 마련이다. 타로카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대목에 집중한다. 카드 내용을 인생에 끼워 맞히면 누구나 해당될 게 뻔하다는 거다.
이 말의 절반은 맞다. 카드는 아주 많은 상징을 내포하고 있어서 대체로 어떤 상황에 끼워맞혀도 맞아떨어질 때가 많다. 이때 내담자에게 상징과 관련한 상황을 제시해주고, 비슷한 상황에서 본인은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 짚어주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다. 상담자가 읽어주는 미래는 단지 내담자가 예견한 미래 범주 안에서 벌어질 일이다. 내담자가 카드를 뒤집으면서 과거, 현재, 미래를 카드라는 상징물로 눈앞에 내보이는 것이다.
스위스의 유명한 심리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타로카드가 사람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성을 나타내 주고 있음을 알고 심리상담에 많이 응용했다고 한다. 말이나 글로는 분명 표현되기 어려운 무의식의 세계가 타로가 가진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그림과 상징은 입말이나 글말보다 함축적이며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자신의 무의식이 세계와 이야기하는 창구로 타로를 받아들여 객관적인 자세로 집중한다면 삶에 커다란 도움을 주는 친구가 될 것이다. (정통 타로카드 배우기, 2009. 12. 25., 정홍경, 정연의)
인용에서의 '말이나 글로 표현되기 어려운 무의식의 세계'는 한 마디로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다. 우리는 인생의 많은 순간에 '아, 어떤 선택이 최선이지?' 혹은 '내가 이렇게 선택해도 괜찮을까'하는 질문과 마주 선다. 정말 내가 원하는 걸 알 수 없거나, 나 외의 세계가 내가 원하는 바를 원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서 선뜻 입밖에 낼 수 없는 상태 말이다. 타로카드는 그 무의식의 세계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바를 수많은 상징물이 담긴 타로카드로 내 눈앞에 보여준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이런 모양이야. 그렇지 않니?' 눈앞에 들이밀어 준다.
역설적이게도 타로카드가 미래를 점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나도 가끔 친구들에게 미래를 점치는 타로를 봐주기도 한다. 별로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는 재밌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돈을 얼마나 벌까? 나랑 결혼할 상대는 어떤 사람일까? 이런 것들. 흥미로운 주제의 유튜브 타로도 종종 본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너무 간절한 것들은 타로카드를 보지 않게 되었다. 타로카드가 그 간절한 것을 감히 선택하고 단언하지 못하게 한다는 편이 더 맞는 설명이겠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지 않나. 타로카드보다 그 카드를 뽑는 사람이 그 일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타로카드의 원리 따위를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경험한 친구는 내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 무릎이 안 좋아진 아빠는 언제까지 건강이 따라주어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친구의 친구가 죽었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는 여전히 그 그늘에 남아있다. 어떤 친구는 퇴근하고 집 가는 길에 차에 치이고 싶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게 없어서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 몰라 한숨을 푹푹 쉬는 친구도 있다. 나는 언제 그런 친구들을 만날지 몰라서 타로카드를 가지고 다닌다. 예언은 못해도 위로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로카드가 보여주는 미래가 들어맞지 않아도 상관없다. 우리는 깜깜한 현실 위를 걸어 미래로 향할 힘이 필요하다. 설령 그게 아주 허상의 무언가라도.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타로카드가 아닌 타로카드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믿어야 한다. 타로카드가 먼저 미래에 앞서있는 것이 아니라, 타로카드가 보여준 모든 것들을 우리가 손바닥에 올려놓고 관망해야 한다. 우리는 철저히 타로카드를 이용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타로카드를 읽는 건 험한 세상, 주변인들의 조언인지 악담인지 모를 소리들, 내 자신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들 사이에서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똑똑하게 분리하려는 시도다. 문제를 명확하게 판단하는 것부터가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니까.
나는 나에게 타로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결국 그 문제가 어떤 시점에 저절로 풀리고, 어떤 시점에 도와줄 귀인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괴로웠던 하루가 모조리 내탓이 아님을 깨닫고, 마음을 툭툭 털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갖기를 바란다. 그래서 결국은 잠깐 혼란스러웠던 때를 뒤로하고 스스로 더 나은 결과를 받아들기 위해 해내야할 과제를 차근차근 목록화할 수 있는 힘을 얻기를 바란다. 내가 타로카드를 공부하면서 얻은 그 모든 위로와 평안들을 고스란히 얻어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