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고생 많았다 나 자신!
지난해 11월 22일, 대학내일 ES의 트렌드 컨퍼런스가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렸습니다. 3년 가까이 대학내일에 몸담았지만 그 유명한 오프라인 티콘은 처음이었어요. 첫 번째 세션 연사로 등장했던 팀장님의 발표 중에 ‘회고’를 설명한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내가 잘못한 것을 되짚어보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건데요. CEO, 유명인의 성공만을 조명하는 가운데 사실 그들도 실패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는 걸 간과하기 쉽잖아요. 회고를 통해 부러 실패를 짚어서 다음에는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게 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한 방향을 잡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퇴사한 시점에서 3년간 에디터로 살아가면서 겪은 실패와 변화를 되짚고 가면 좋은 일들을 다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다들 퇴사 후 회고에서는 회사를 숨기는 느낌이지만 나에겐 좋은 회사였기 때문에 딱히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 당당하게 드러내고 써보려고 해요. (조금 떨림)
처음 대학내일을 입사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잡지 만드는 회사(아님)에 뭐 하러 들어가?"라고. 전공이 문예창작이라서 그렇게 생각하셨지만요. 3년이 지나 퇴사할 때쯤에는 "왜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냐"라고 만류하셨습니다. 경상도 아버지의 귀에 들릴 만큼 3년 사이에 좋은 회사라는 입소문이 났거든요.
그 이전 회사에서는 언론사에서 SNS 채널 운영과 기사, 카드뉴스 등 콘텐츠를 작성했어요.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 지원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였는데 먼저 저의 그 짧은 경력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는 팀이었다는 것과, 20대연구소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20대는 언제나 존재하니까 이 회사는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있었어요. 신문사에서는 어떤 기술을 익혀야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또, 저는 인터넷을 많이 하면서 커뮤니티를 가리지 않고 유머글을 소비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어김없이 커뮤니티 인기글을 보다가 이런 걸 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20대연구소에서 트렌드 서치하면서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뭐든지 일이 되면 재미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저는 더더욱 심각한 도파민 중독이 되었습니다. 고맥락 대화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콘텐츠를 함께 본 사람들끼리 어떤 대화의 맥락을 재밌게 가져가는 게 즐거웠습니다. 3년이 지난 이후에도 새로운 이슈와 밈을 알고 콘텐츠에 써먹는 재미는 줄지 않았네요.
이름 뒤에 에디터를 붙여서 불러 주셔도 한동안 입사는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복지 제도를 경험하면서부터 "아, 나 댕낼 다니네!"라고 체감했는데요.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와 유연근무 활성화, 보상 휴가 제도 등등 다른 회사원들이라면 놓치고 싶지 않을 복지가 아주 많았고, 무엇보다 그러한 복지를 쓰는 데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 코로나19가 완화된 이후에도 재택근무의 효용을 이해하고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도 최고! 회의나 스케줄이 없다면 근무 시작, 종료 시간을 내 맘대로 조정할 수 있고, 은행, 병원 가느라 반차내는 거 너무 슬픈데 중간에 휴게 내고 갈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예전 회사라면 상상도 못 할 근무제ㄴㅇㄱ였습니다.
연간 5회기 심리상담도 받고 흔히들 복지비라고 하는 나다움 유지비는 유흥비를 제외하고는 정말 나다움을 위한 곳 어디에서나 다 쓸 수 있었습니다. 호빵이나 붕어빵 같은 간식도 챙겨주고 생일 반차도 있고, 연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 7층 라운지에서 하는 이벤트들도 재밌었어요. 무엇보다 3년, 10년 근속 안식월(!)이 최고의 복지인 것 같아요. 다들 언제 어디로 안식월 가고 싶어요(갔어요)?라고 스몰토크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달까요. 그 외 에디터로서 겪은 건 비포애프터로 적겠습니다.
*본 원고는 회사에서 제공된 별도의 원고료 없이 100% 주관으로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1. P 그 자체 결과물에 목숨 거는 유형 → 과정을 짚고 넘어가는 탈부착 J(계획형)
어떤 작품을 쓰더라도 항상 혼자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써 내려가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글을 써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내가 쓴 글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하는 건 정말 큰 고통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보기에 항상 완성된 원고를 타인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내가 쓰려는 글의 개요를 러프하게 작성하는 단계를 설정하는 데 약했던 거죠. 다른 업무는 이런 계획이 쉬웠던 것 같은데, 기획안 작업에서만 유달리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신입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통이겠지만 글쟁이에게는 더 가혹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회사와 회사원의 관계란 무엇입니까. 고용된 회사원으로 돈을 받는 저는 절대 미룰 수 없고, 약속된 시간에 전달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저만의 해결법을 찾아야 했어요.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지만 계획형 J 파트원과 함께하면서 내가 어떤 시점에 얼마큼 일을 진행할 수 있을지 계획하고 약속하는 일을 꾸준히 실행했습니다. 개요를 쓰고, 초안과 마지막 최종 원고를 만들기까지 내가 진행한 과정을 스스럼없이 공개할 수 있는 깜냥이 생겼어요. (상세 방법은 2번에서 참조)
꼭 회사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아니더라도 저는 일상에서 제가 계획하고 다짐하는 것들을 쪼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번에 멋진 결과물에만 집착하기보다 결과물을 향하는 과정에서 당장 필요한 것과 몰입해야 하는 것을 단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완전한 계획형보다는 부족하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과정을 설계하고 어떻게 나의 힘을 배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2. 나 혼자 완벽하고 싶어 → 부족한 점은 빠르게 인정! 모를 땐 물어보고 바로 해결!
1번이 결과라면 2번은 1번으로 변화할 수 있었던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일하다 보면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제 때 물어보고 문제점 반영하기(!) 과정이 있어야 했습니다. 신입일 때, 저는 모르는 걸 물어보는 게 제 밑바닥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무능력하고 말도 못 알아듣는 애라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불안도 동반되었고요.
3년 동안 일하면서 느낀 건 역시나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였습니다. 모르는 것을 물었는데 무능력하고 말도 못 알아듣는 사람 취급하거나 그 정도는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며,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갖추어야 할 기초 소양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취급을 당했다고 나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내재화해 버리면 이제 정말 모를 때 절대 물어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 직장 경험담)
상대가 기초 소양을 갖췄다고 가정할 때, 모르는 걸 물어볼 때 상대가 당황하거나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건 대개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걸 물어본 게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물어본 시점이 잘못되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에요. 언제 물어봐야 하는지 좋은지는 저보다 더 좋은 업무 스킬을 가진 분들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주의 : 제목은 좀 아픈 편)
저 또한 항상 혼자 끙끙 앓다가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도움의 손길을 '어쩔 수 없이' 뻗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데드라인을 어기는 일도 잦아지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기회를 가져보지도 못하고 뺏기게 된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래서 작업 과정에서 어렵고 힘든 부분을 모르겠거나 어려움을 느낀 순간에(!) 동료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런 방식을 배운 건 그간 우리 팀을 거쳐간 인턴 분들 덕분이었어요. 제가 만난 인턴분들은 대부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적기에 물어보기를 되게 잘하시는 분들이었거든요. 그들을 통해서 제가 얼마나 결과 중심적인 사람이었는지를 느끼고, 과정을 지향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저 혼자 최선을 다해 고민해 봤는데도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시점을 결정하는 게 중요했어요. 조금만 더 고민하면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마음은 좋지만, 경험이 많지 않고 폭이 좁은 관점을 가진 내가 나의 100%를 발휘하려고 시간을 쓰는 게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조금 더 전문적인 사람의 경험을 빌어보거나, 나만이 아닌 독자의 시점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완전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이 드는 시점을 고려하면서 작업했습니다.
나의 100%가 무조건 완벽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꼭 비관적으로 흘러가진 않았어요. 적기에 도움을 주는 팀원들 덕분에 더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깨달았어요.
부족하고 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결과물이 부족하면 그것도 내 탓이고 아예 틀렸다면 그것도 내 탓이지만
도움을 받아 얼른 고쳐서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만 줄 수 있다면
부족함과 틀림은 한낱 과정에서 끝날뿐이다!
돌이켜보면 저는 항상 저 혼자 해결하려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남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해내야만 그게 모두 내 성과가 된다고 믿었어요.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밑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고요. 100% 완벽하지 않은 나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몰아세우는 편이었죠. 그러면서 저는 제 틀 안에서 저의 성장을 막은 것 같아요. 일하면서, 회사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상생하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 게 밑지는 거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도와줄 다음 기회를 노리자!라고 좀 더 서로에게 플러스가 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었어요. 제가 3년 동안 경험한 일들 중에 가장 값진 변화라고 생각해요.
3. 보잘것없는 나 → 제법 멋지고 괜찮은 나
대학내일ES의 모토는 '자기다움으로 지극히 정진하여 꽃을 피운다'입니다. 아무래도 첫 직장이 경직된 분위기였어서 그런지 저는 회사에서 자기다움을 정진하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굳이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3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수많은 구성원을 제가 감히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대학내일ES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각자 자기다움이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마다의 자기다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이요.
자기다움이라고 말하니 조금 모호한 것 같아 저만의 정의로 바꾸어 보자면, 각자만의 잘 가꾼 정원을 거느리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나만의 호화 비밀정원으로 꽁꽁 숨겨놓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내 정원에는 이런 것도 있으니 너도 한번 놀러 와볼래?라는 제안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분도 많았고요. 그렇게 멋진 정원들을 구경하고 저만의 정원으로 돌아왔을 때 초라하다고 생각했어요. 키우는 식물도, 면적도, 토양 그 자체도... 수많은 것들 중에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대학내일을 다니며 만난 인연들과 겪은 경험들은 "내 정원은 너무 보잘것없는 것 같아..."라고 자조하는 저에게 언제나 저만의 정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주었어요.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수많은 경험을 지나 이제는 믿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제가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자신이 생겼거든요. 언제나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3년간의 시간은 제 정원을 가꾸는 데 훌륭한 영양분이 될 거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데이터를 읽어요? 제가요?
우리 팀은 MZ세대를 연구하는 기관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도출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판매하기도 합니다. 저는 숫자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처음 엑셀 시트를 켜고 3천 줄이 넘는? 데이터를? 봤을 때는? 조금 울고 싶었습니다. 나는 에디터인데 왜 이런 데이터를 봐야 하는 거지? 생각했던 때도 있었으나 뭐 어쩌겠어요. 해내야죠. 데이터와 에디팅은 거리가 먼 일 같았지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엑셀 공포증을 이겨내고 어느 정도 익숙해졌습니다. 데이터를 보면 무엇이 주요한 데이터인지 알게 되었어요. 모르면 그냥 연구원님들께 물어봅니다. 그러다 보니 모르면 바로 물어보기(!)가 제 장기가 되었네요.
ENFP가 INFJ가 되었다
우리 팀은 연구원이 많다 보니 ISFJ가 많은 편이었고, 대부분 내향형... 이셔서 ENFP가 살아남기 조금 척박한 환경이었습니다.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다기보다는 형형색색 레고처럼 개성이 있으나 각자의 크기와 위치가 단정하게 정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것 나름대로 또 매력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느껴져서 ENFP였던 저는 퇴사 즈음에 INF(T)J가 되었습니다. 천상 E였던 저는 동호회 활동도 많이 하고, 다른 팀 분들과 교류가 많은 편이라 대부분 ENFP라고 단번에 맞히긴 해요.
파란 머리 탈색한 다음날 워크맨 촬영
저는 2021년 2월 1일부터 탈색 머리를 고수하고 있는데요. 언론사에서 못했던 과감한 머리를 하고 출근한 날, 하필 워크맨 촬영이라서 당시 팀원들이 워크맨 출연한다고 머리 탈색했느냐고 물어봤(놀렸)습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어요. 별로 티가 나지 않는 파란 머리라서 영상에는 뒤통수만 스쳐지나갔답니다. 그 당시에는 너무 짧게 나와서 아쉬웠는데 나중에 두고두고 친구들이 놀렸을 걸 생각하면 앞통수가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댕스마스 타로존
타로 덕후인 저는 '내일은 샤먼킹'이라는 사내 동호회를 만들었어요. 점심 먹으면서 타로, 사주에 대한 얘기를 가볍게 나누고 직접 보는 법도 공부하기도 했죠. 사내에 타로 유튜버로 알려지면서 사내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8~10명 정도 추첨을 통해서 당첨되신 분들에게 7층 회의실에서 타로를 봐드렸어요. 잘 모르는 구성원도 알게 되고, 이 기회로 연락해서 친하게 지내는 인연도 생겼답니다. 특히나 봐드렸던 모든 분들이 다 일을 참 열심히, 고군분투한다는 카드가 나왔다는 게 신기했어요. 잘 맞는다고 신기하다고 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서 저도 너무 즐거웠습니다!
‘여름이었다’ 팀 워크숍
2022년 6월 말에 갔던 강릉 워크숍! 코로나 시기에 입사해서 3년 동안 근무하면서 타지로 워크숍을 간 건 처음이었는데요. 그간 팀에서 세부, 연태, 제주도 워크숍을 전설처럼 듣다가 막상 가게 되니 더더 신났습니다. 멀미가 심해서 조금 고생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다 미화가 되어버린 기억이에요. 음식들도 다 맛있었고, 같이 셀프 스튜디오에서 우당탕탕 사진을 찍었던 것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극 J들만 모인 워크숍 TFT 때문에 공식 일정이 다음날 오전 1시에 끝난 것도 잊을 수 없고요. (P들의 행복한 원성) 레크리에이션으로 준비된 게임 '줄줄이 말해요'가 전체 게임의 절반을 차지하는 바람에 같이 간 팀원들과 서울로 돌아와서도 줄줄이 말해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좋으나 싫으나 우리 팀에게 레크리에이션은 줄줄이 말해요가 되었습니다.
2023 트렌드 컨퍼런스
일하는 순간은 즐거울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혼자 일할 때는 냉소적인 편인데요. 앞서 첫 문단에서 언급한 트렌드 컨퍼런스(이하 티콘)을 통해서 하나의 기업에 소속되어 일한다는 감각은 저한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구나 깨달았어요. 누구나 어디에서나 소속감을 느끼길 원하지만 그 소속감은 어떤 환경에서 마련되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잖아요? 조직 안에서 '나는 안전하다'라는 메시지를 얻는 게 참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실감했어요. 수많은 사람 앞에서 전문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강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멋진 회사에 다니고 있다!라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가까운 동료들이 땀 흘려 꾸린 현장을 보고 있으니 참 애틋하고 즐거웠어요.
(광고아님) 2023 트렌드 컨퍼런스 못 가보셨다면 제가 직접 강연 현장을 요약한 콘텐츠 보고 가세요!
팀원들이 해보라고 떠미는 퇴사 브이로그
(ㅋㅋㅋㅋㅋㅋ)
팀원들에게 퇴사 의사를 전했을 때, 각자 스타일에 맞는 반응을 보여줬습니다. 파트장님이 혹시 사업하러 가느냐(아님)고 진지하게 물어보셨던 게 특히 기억에 남아요. 퇴사한다고 대뜸 레터링 케이크까지 주셔서 감사했고 감동받았습니다. 같이 케이크를 먹으면서 퇴사 브이로그를 찍어보라고 권유한 연구원님도 너무 트렌드 연구원 같아서 웃겼어요. 몸이 아픈 탓에 퇴사 브이로그는 손도 못 댔지만 조만간 작업해볼 생각입니다. TO BE CONTINUE!
오늘은 직업인인 저에 대한 글을 써봤는데요. 사실 제일 쓰기 싫고 힘든 주제였어요. 왜냐하면 저는 항상 어린 시절 저에게 빚지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었거든요.(MBTI N이라면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뭐라고 할까 상상해보지 않나요?) 첫 직장도, 두 번째 직장도 '돈을 버는 곳'이라는 의미가 가장 컸고, 기약 없는 먼 미래에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나의 전단계 정도로 여겼던 것 같아요. 하지만 3년 동안의 회사생활에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직업인인 손유빈도 어느 정도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생겨서 써봐야지 다짐했습니다. 쓰길 잘한 것 같아요. 적어도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빚지지 않고 있구나 확신이 드네요. 언제나 그랬듯 쓰는 일은 저를 배신하지 않아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