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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유빈 Feb 05. 2024

10년차 사회복지사였던
경단녀, 스타트업 신입이 되다

사회복지사에서 영리 사업에 뛰어든 경단녀... 아니, 질문 폭격기의 등장

초등학생 시절, 내가 그린 30대에는 결혼이 꼭 포함됐다. 30대가 된 지금은 어떤가. 결혼은 점점 미지의 영역으로 멀어지고 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나는 회사에서 40대, 50대 여성을 만난 일이 손에 꼽는다. 홍보 마케팅, 에디팅 모두 젊은 감각을 요하는 일이고, 그 말 즉슨 금방 젊고 감각 좋은 신입들이 내 자리를 들어찰 가능성도 높아진다. 본업 외에 많은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려고 했던 이유도 내심 내 안의 불안이 동기가 되었다. 고학력, 전문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겪고 자신이 가꿔온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계약직으로 전전하는 현실이니 내가 뭐라고 안심을 하겠나 싶어서.


"사회복지사 출신 경단녀가 우리 회사에 오게 될 거야."

오늘 소개할 최지원 리더를 표현한 한줄이었다. 여름날에도 그 한줄이 어찌나 냉담하던지 나는 그녀와의 조우 또한 서늘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회복지사라고 떠올리는 감상은 '봉사하는 사람' 정도였고, 경단녀는 뉴스 기사 타이틀로 많이 봤었다. 접하고 나면 가슴만 답답해지고 해결의 기미라고는 보이지 않는 사회문제였다. 동시에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던 것도 같다. 결혼도, 출산도 나에게는 물음표만 남기는 먼 일들에 불과했다.


그늘진 내 생각과는 달리 그녀의 첫인상은 굉장히 맑았다. 당시 상품 모델을 구상하는 일이 난관에 봉착해서 우리 회사 오후 회의에 피드백을 구하러 왔었다.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를 전부터 들었기 때문에 성심성의껏 도움이 될 만한 것들, 비유를 총동원해 의견을 드렸다. 나보다 꽤 연차가 높은 분이었지만 홍보 마케팅에서는 신입과 다르지 않아 막막해 보여서다. 그러고도 후련하지 않아서 회의가 끝나고 기획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이것저것 필요할 자료들도 카톡으로 보냈다.


그러고 두어달 후에 아리씨에서 운영했던 춘천 커피 콘페스타 행사에서 길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그녀는 현장 보조를 위해, 나는 콘텐츠 취재를 위해서. 준비로 분주한 운영진들 사이 잉여 인력이었던 우리는 행사장 근처를 배회하면서 도란도란 떠들었다. 왠지 그 때 지원 리더는 조금 기운 없어보였다.


"한 달 동안 아리씨는 어떠셨어요?"

안부처럼 물은 말에 강력한 단어가 돌아왔다.


"지하감옥에 끌려갈 뻔 했어요..."

"네? 지하감옥이요?"

"네..."


대체 지하감옥이 무엇인가 했지만 잔뜩 풀죽은 목소리로 이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었다다. 별안간 사업에 뛰어든 사회복지사들이 비영리에서 영리로 체질 개선을 하지 못해 생긴 시련...을 아우르는 어떤 것(그 이상으로 알기에는 무서웠다)이라고 말이다. 뒤이은 질문도 굉장히 자조적이었다. 실장님은 못하는 걸 못하시죠? 모르는 게 없으시죠? 지하감옥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시죠? 라는 말로 '나는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모르는 것 투성이에 지하감옥 입구까지 갈 뻔한 어떤 사람'이라는 표를 내는 중이었다.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내가 아리씨에 오기 전 시간들, 오고 나서 적응하는 사이 벌어진 우당탕탕 엉망진창 실수 에피소드를 끌어모아 말했다.


실장님도 정말 그러셨어요? - 네!

정말요? - 정말이라니까요!

그럴 리 없어요. - 아니라니까요~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무수히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못 믿는 기색이더니 나의 무수한 고증을 통해 떨떠름한 수긍을 얻어냈다. 몇 달 더 일찍 들어와놓고 잘난 체 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어설픈 걱정이 들었지만 그 이후를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기우였다.


모 유튜버 인스타그램에 박제된, 심각한 이야기 중인 우리 둘(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 갑자기 그녀는 나에게 열렬해졌다. 친해진다-라는 단계를 훅 뛰어 넘고 갑자기 나의 팬(?)이 되었다. 아니, 질문 폭격기에 가까웠다. 입사한 지 세 달밖에 안 된 나에게 아리씨 회사 생활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하고, 밥을 먹자고 하고, 얘기를 좀 하자고 했다.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라고 하면 '나랑 말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난리였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정말 '당신은 신이십니다' 수준의 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럴수록 '나는 실수투성이 인간입니다'를 증명하려는 것처럼 당시 실장으로서 고통 받고 있는 일에 대해서 길게 길게 투정을 부리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굴하지 않고,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더 큰 그림을 위한 밑거름입니다'라는 식의 대꾸로 받아쳤다. 엄마 아빠한테도 들어본 적이 없는 급의 칭찬일색이었다.


행사 이틀 연속 같은 방을 썼을 때도 그녀는 늦은 밤까지 내내 나를 극찬했다. 이쯤되면 얘기할 만큼 했겠지 싶을 무렵 그녀는 말했다. "우리 이틀 동안 많이 얘기 못 해서 너무 아쉬워요." 어떤 광기까지 서려 있었다. 그쯤되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희한하게도 그녀와의 대화가 기다려졌다. 챌린지 같기도 하고? 저 사람도 언젠가는 질려서 더이상 그만 얘기해요! 라고 하지 않을까? 하면서. 도대체 얼마나 더 같이 이야기해야 저 모든 궁금증과 고민이 사라질까 더 궁금해질 뿐이었다. 모든 걸 뚫는 창과 모든 걸 막는 방패의 싸움이었다.




놀랍지 않게도, 입사 이래 그녀와 단 둘이 술을 마실 기회도 나에게 먼저 주어졌다. 두 아이의 착실한 엄마로 귀가도 이른 편이셨던 터라 아주 이례적이었다. 나는 그날 평소와 다른 작정을 했다. 그동안에는 질문을 받거나 내가 내 이야기만 쭉 늘어놓는 식이었다면 오늘은 인간 최지원의 이야기를 좀 듣겠다는 내밀한 포부로 그녀와 마주 앉았다. '전공이 무엇이셨어요?', '왜 사회복지사가 되셨어요?', '어쩌다 아리씨에 오셨어요?' 가히 면접에 가까운 질문 공세였다.


역공은 성공에 가까웠다. 그녀는 '그런 이야기가 궁금해요?' 하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실습으로 만난 아이들 얘기부터 찬찬히 일러주었다. 아이들이 자기로 인해서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에 사회복지사를 선택했다고 했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배울 엄두도 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적은 돈으로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줄 강사를 찾아냈다. 강사의 스케줄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에 대신 아침 일곱시 반까지 출근해야 했다. 축구를 가르치기만 하면 되겠나. 이른 아침에 배를 곯고 공을 차러 올 아이들을 위해 간식도 준비해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간식을 준비하거나, 근처 빵집에 사정을 말하고 아이들을 위해 빵을 받아왔다. 그 얘기를 마치 '오늘 출근하기 위해서 신발을 신고 왔어요' 라는 식으로 덤덤하고 당연하게 말했다. 여기에 그녀의 사정을 감히 다 풀어놓지는 못할 정도로 사회복지사를 그만두고 엄마가 되어서도 그녀는 열정적이었더랬다.


"저 이제 진짜 잘해야 해요. 지금 가족들이 다 희생하고 있어요. 사업에 집중하려고 원래 살던 집도 팔고 서울로 이사왔어요. 남편 직장도 한 시간 넘게 걸리게 됐고, 아이들도 아침에 등교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거든요."


앞뒤 다 자르고 회사 때문에 가족들을 희생시키고 이사를 했다고 표현한다면 헉할 만 했다. 그러나 최지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 기어이 이 회사에서까지도 열정적이시군요'라는 무심한 대꾸가 나올 뻔 했다.


"남편 분이랑 아이들은 전혀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나보다 더 오래 그녀와 그녀의 열정을 지켜 봐왔을 사람들이 희생이니 어쩌니 하면서 부담을 줬을 리 없었다. 그간의 무수한 질문 공세들도 따라 떠올랐다. 요약하자면, 절실함이었다. 다른 사회복지사들도 그래요. 다른 엄마들도 그래요. 그녀는 자신이 벌여놓은 일들을 계속 그렇게 축소했지만 어쩔 수 없이 스며나오는 무엇이 있었다. 그 이야기 속 사람들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앞으로 만날 일도 없겠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도 저마다 대단한 구석이 있겠지만 그게 꼭 지원 리더랑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원 리더만큼 절실했을 리는 절대로 없다.


"실장님을 보면 예전에 제가 생각 나요. 나도 저랬었는데, 나도 저렇게 열정 넘치게 팀원들 케어하고 열심히 했었는데..."

"그런 케어를 지원 리더님은 받아보셨어요?"

"예솔 리더(나의 팀원)한테 유빈 실장님이 있듯이, 저한테도 그런 엄마 같은 분이 계셨죠."

"좋겠다. 저는 억울해요. 저한테 이렇게는 이렇게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는 맨날 이렇게 누군가한테 열심히 도와주고, 먼저 다가가고 어려움도 다 해결해주려고 하는데... 저한테는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원래 그런 게 외로워요."


그렇게 넘어간 줄 알았는데, 출근하는 어느 날에 그녀에게서 장문의 카톡이 왔다.


'어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저도 10년 간 누군가를 품고, 누군가에게 내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왜 나는 누군가 이렇게 해주지 않을까 고민한 적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 시점 유빈님이 나타나서 저를 도와주시고 품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다 돌아오는구나 싶기도 하고 이런 나눔이 얼마나 값진지 알아서 감동이기도 하고...'
'나는 누가 왜? 이렇게 생각이 들더라도 언젠가 누군가 나타날 지도 몰라요. 이 고민은 털어버렸을지 모르지만 말해주고 싶었어요.'


이 문자를 받고 나를 케어해줄 누군가 나타날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됐다. 더 많은 질문과 더 많은 답을 나누며 절실함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리씨가 무슨 회사인지 궁금하다면?(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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