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족이야

누군가를 수고롭게 깊이 아는 일이 주는 가치

by 해서뜬 손유빈

나는 직원네 가정 방문을 좋아한다. 나의 첫 부사수였던 예솔을 만나러 안산에 갔다. 예솔의 아버지가 종일 그 근처 관광할 만한 곳을 구경시켜 주셨다. 두번째 부사수였던 준호네 치킨집도 들렀다. 어머니가 튀겨주시는 바삭한 치킨과 안주를 맛있게 먹었다. 시답잖게 떠드는 것 같아도 나는 내심 당신의 자녀가 회사에서 어떤 모습인지, 얼마나 나에게 귀한 존재인지 알리는 데 애쓴다. 부모는 자식이 회사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사는지 궁금할 테니까. 회사라는 장소에서 만났지만 나는 내 아이를 키우듯 한다. 내 아이를 낳아준 분들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거창한 이유는 없고, 마땅히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 집에는 언제 올 거예요?

마치 다음 타자를 기다린다는 듯이 지민이 말했다. 부모님이 계신데 괜찮겠어? 지민이와 부모님께 여쭤보는 거였다. 나는 지민이 어머니와는 그전부터 연락처를 알고 있었다. 지민이가 이리저리 쏘다니느라 연락이 안되면 어머니가 나에게 연락을 해오시기도 했다. 폭설이 올 때는 지민이더러 '그 본부장(이전 직함)네서 자면 안돼?'라고 하신 적도 있다. 직장동료의 엄마에게서 그런 연락이 온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뜨악할 일일지 모르지만, 나는 기분 좋았다. 지민이를 보호해줄 만한 사람이라는 인증마크를 받은 기분이었다.


어머니와의 라포형성은 우리 회사에서 함께 비빔밥을 해먹었을 때도 있었다. 갑자기 회사에서 비빔밥을 먹자고 추진한 나에게 박자를 맞춰주려 지민은 그 밤에 엄마한테 반찬을 해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또 현란한 솜씨로 해주셨다. 우리의 비빔밥 이야기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어머니, 제가 바로 그 본부장- 아니, 대표입니다.

3월 말, 그래서 우리는 토요일에 함께 행사를 갔다가 지민의 집으로 향했다. 당일 돌아올 생각 없이 정말 1박 2일 짐을 단디 싸서 말이다. 지민이와 2년동안 같이 일하면서 한번도 동탄에서부터 홍대까지의 거리를 실감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신도림을 들러 가는 길이라 완벽하게 체감하지 못했지만, 멀기는 참 멀더라. 그 길을 지민은 매일 어머니 차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지하철을 타고 오고 있다. 사람이 한 번 올 때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도 온다는 데 지민이는 자기 삶의 많은 시간들까지 이고지고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혼자 기분이 묘했다.


친구 집에 처음 온 초딩처럼 쭈뼛쭈뼛 인사하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렇다고 개념없는 초딩은 아니니까 한우세트도 손에 들고서.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서 아롱사태 수육을 준비해주셨다. 이렇게 맛있는 걸 먹어도 되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호들갑을 떨며 맛있게 먹었다. 김치부터 소스까지 뭐 하나 입맛에 맞지 않은 게 없었다. 새댁 수빈이는 내내 지민이네 식탁을 탐냈다. 그렇게도 열심히 찾았는데 사이즈를 못 찾았다나. 지민이는 또 우리를 위해 비싼 위스키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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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우리가 불편할 것을 배려해 거실 옆 소파에 앉아서 불후의 명곡을 보셨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우리끼리 떠들었다. 회사에서도 실컷 떠들면서 또 이렇게 떠들게 있나 싶을 정도로 떠들었다. 정수가 흘깃 보기에는 어머니도 우리의 대화가 웃기면 따라 웃으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우리의 식탁이 비지 않도록 끊임 없이 뭘 내어주셨다. 우리는 또 할머니집에 온 손자인 양 푸짐하게 먹었다. 회사 직원네 집에 갔다고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그나마 직장인다웠던 대목은 제대로 걸스나잇을 즐겨보자던 우리가 화장을 지우고 급격히 텐션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한명씩 소파에 앉아 어머니랑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정수가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한 터였다. (나는 순간 정수 집인 줄 알았다) 우리는 돌아가며 안마의자를 체험했고, 드라마 품평회를 열었다. 왜 그렇게 편했을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황당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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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우리의 아침까지 호텔식으로 차려주셨다. 나는 요거트에 그렇게 많은 드레싱이 들어가 있는 걸 처음 봤다. 어제부터 계속 지민이네 집에 있는 가전과 인테리어를 탐닉했다. 지민이가 괜히 취향이 까다롭고 눈이 높은지 여실히 느꼈다. 지민이 본인이 의식하지는 못할 것 같은, 어머니와의 공통점 숨은 그림 찾기가 흥미로웠다. 어떻게 이렇게 다들 가풍이 다를까. 사람 사는 풍경은 다 같다면서도 이렇게나 달라서,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는 그 다음날 함께 수빈이 다니는 교회로 향했다. 목사님 말씀을 듣고, 수빈이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수빈이 어머니는 요즘 우리가 올리는 쇼츠에서 내가 콩을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듣고서 나에게 콩밥을 한아름 싸주셨다. 나물과 콩밥까지 두둑하게 챙겨서 돌아오는 걸음이 든든했다. 또 이것을 어떻게 갚지, 기분 좋은 부채감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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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이는 '엄마에게 즐거움을 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아이다. 지민이는 그게 뭐가? 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냥 그런 지민이가 좋다. 우리에게 곁을 많이 내주려고 하는 모습이 나에게 묘한 동기부여로 다가온다. 나도 그것의 구체적인 인과관계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어떤 관계보다 더 깊이 연결되는 일이 퍽퍽한 삶을 촉촉히 적시는 단비가 된다는 건 알겠다. 누군가를 수고롭게 깊이 아는 일이 주는 가치에 대해서, 나는 명명하지 못해도 선명하게 실감한다.


이 극진한 대접들에 응답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대표로서 어떤 식으로든 갚고 싶다고. 부담스럽고 어려운 무엇이 아니다. 그저 어떤 벨트에 단단히 묶인 기분, 내가 더이상 나의 힘으로만 지금의 이 시간들을 지탱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이 든다. 수빈이는 언제나 '우리는 가족이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그다지 가족적인 집안에서 자라지 않은 나에게 생경했던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손발을 맞추고 마음을 모으면 언제나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나란히 서도 된다. 우리는 가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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