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간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은

by 해서뜬 손유빈

11월에 결성되어 12월에 본격적으로 넷이 되었을 때, 나는 정말 노답이라고 생각했다.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답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게 내가 나아가는 방향 끝에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아서랄까.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고 모인 데에 딱히 각별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었고, 각자의 선택지에서 지금의 이 회사가 최선이라는 확신도 없었으니 당연한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회의를 할 때마다 대부분 화를 냈다. 뭐가 되지 않아서. 내가 지금 가려고 하는 구만리의 한 리도 제대로 가지 못했는데 셋은 자꾸만 길 한 가운데 서서 나를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말하는 나는 그 셋이 정말 이상했다. 내가 제안하는 방향이 이상하면 제발! 나에게 반기를 들어줘! 그렇게 가만히 서서 구경하지 말고! 또 그렇게 화를 냈지만 셋은 멀뚱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서 회의를 하면 언제나 내가 말을 시작해서, 내가 말을 끝냈다. 가끔 정수나 수빈이가 많이 말을 할 때면 뿌듯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지민이는 어떨 때는 말을 많이 하다가도 어떨 때는 입을 꾹 닫았다. 내가 아는 회의는 이렇게 일방향적이지 않은데. 일방향적이면 안된다라는 사실만 알고 그 어떤 방법론도 모르겠어서 또 화를 내거나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눈물로 부르짖었다가 생쑈를 하는 일상이었다. 회의가 아니라 3인을 앞에 두고 하는 1인극에 가까웠달까.


그러나 그렇게 반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세 시간동안 사인극으로 회의한다. 지난주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세 시간을 누구 한 명이 말하는 게 아니라, 서로 말하고 싶어서 안달을 하며 그다음 사람의 말을 기다린다. 아이디어였다가 질타였다가 칭찬이었다가 농담이었다가. 회의라는 중심을 중력으로 삼으며 그렇게 쌓인 말 위에 또 말을 얹다보면 제법 그럴 듯한 결과가 나온다. 예전에는 동전 200개를 넣어서 물이 찔끔 나왔다면 이제는 동전 20개를 넣으면 음료수 세 병 정도가 나오는 셈이다. 회의를 세 시간이나 한다는 점에서 갈 길이 멀지만 회의의 많은 분량을 정적으로 보내던 전에 비하면 괄목할 성과다.


회의 사이를 가르는 적막으로 고통 받을 때 나는 사실 우리가 더 똑똑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하려는 일에 대해서 주말 밤낮 고민을 해야 하고, 일을 더 일답게 해야한다고 말이다. 남은 셋을 채찍질 치듯 다그치다보면 어느날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그치기가 적성이 안 맞는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래서 놨더니, 생각보다 그날이 더 빨리 왔다.


그 이유를 지금 이 시점에서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후일에 이 시점을 돌아보면 보이지 않는 게 있지 않을까? 다만 지금 여기서 짐작해보자면 우리가 더 우리에 대해서 알아갈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손유빈이 어떤 부분에 대해서 화를 내는지 이들은 다 간파해버렸다. 어떤 질문을 해야 답을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가벼운 문책과 또 다시 일을 돌아가게 하는 지적이 될지 나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내가 화내지 않으려는 노력을 이 사람들이 볼 줄 알게 됐다. 그리고 말이기도 하고, 말이 아니기도 한 형태로 나의 노력에 화답해 주려 했다. 서로 더 오랜 세월 동안 노력을 주고 받으면 무엇이 될까, 그런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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