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초대했더니 손님이 20명?!?!
** 본 내용은 캐나다 살이 네이버 카페에 2020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팬데믹 이전의 풍경이라 이후에 많이 풍경이 달라진 것 같긴 하네요.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드는 과거의 즐거운 기억입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가족은 공부 목적으로 캐나다 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의 중심에 관계 네트워크가 중요한 거였구나. 요즘 새삼스레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네요. 후회도 되고 좀 더 열심히 할 걸 아쉬웠던 기억도 많고 그렇습니다.
신랑은 캐나다에서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쳤는데 과 인원이 딱 20 명이었어요. 외국인에게 허용된 자리는 2 명이었고. 들어가서 보니 신랑 이외의 외국인 한명은 캐나다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으나 아직 국적이 캐나다인이 아닌 영어에 문제가 없는 경우였고. 대부분은 어리고 젊은 학생들이었고 40대 신랑 50대 두 분 60대 한분 계셨죠
생각해 보면 서로에게 매우 다양한 조건들이었지만 잔뜩 주눅 든 영어 부족한 40대 외국인 아저씨 입장에서 이것저것 구실을 붙이자면 여기 끼기도 저기 끼기도 쭈뼛쭈뼛 뭐 그랬죠
우선 소통도 어려웠어요. 왜. 한국에서도 세대간에쓰는 언어가 다르잖아요. 줄임말, 유행하는 표현들은 특히 어려웠구요
수업은 20 명에게 주어진 시간표가 모두 같았습니다 우르르우르르 몰려다니고 숙제도 많았고 테스트도 많았습니다. 영어도 부족해 매일 새벽부터 먼저 도서관 다니면서 미리 읽고 노력해도 매번 만만치 않았죠. 심지어 숙제도 여러개 확인하면 한 두개는 오해한 경우도 있었고 심할 때는 한 주에 테스트랑 숙제가 19개인 주도 있었으니 엄청 헉헉댔죠. - 다행이 한 학기가 좀 심하고 나머지는 그 정도로 힘들진 않았어요. 혼자서 따라가긴. 정말 말도 안 되게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니 모두들 머리 감싸고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되기도 했지요.
영어가 부족하다고
나이가 많다고
외국인이라고
성격이 밝고 적극적이지 않다고
핑계를 계속 만들어서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거더라구요
근데 공부해야 하는데 !
잘 모르는데 !
체면이 뭐고, 창피한게 뭐랍니까.
게다가 중간에 실험 실습도 많아서 팀 작업이 많아 민폐가 되면 안 된다는 부담도 있으니 그래서 더 바짝 긴장하고 노력하기도 했구요
긴장의 연속이지요. 공부라는게. 만만치도 않구요
매일 이른 시간 나가서 수업 전에 도서관에 있다가 수업 끝나고도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신랑이 하루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 삼각김밥을 꽤 넉넉하게 들고 다녔고 동기들과도 나눠먹고 하기도 했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 알바도 하면서 자취비용도 벌어내면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학교 동기들의 도시락이 잔소리하고 싶은 신랑 눈에 좀 부실해 보였던 듯 합니다.
‘ 그래? 그럼 고마운 동기들인데 korean bbq 한 번 하지 뭐 !’
긴장 잔뜩 학기 중간의 시험을 마치고 1 주일의 브레이크 전 시험 끝난 당일 저녁에 시간 되는 친구들 오라고 해. 밥 한 번 같이 먹지 뭐. 그 정도 생각했더랍니다.
나이가 많으니.
- 음식을 해본 횟수는 내가 어쨌든 더 많을테고
외국인이다 보니
- 어떤 음식을 해 줘도 이게 맛있는 건지 알겠어? 라는 음식 솜씨가 모자라도 괜찮겠다는 변명
영어가 모자라다 보니
- 뭐든 음식에 대한 칭찬으로 어설프게 해석해버리자 라는 뻔뻔함
성격이 밝고 적극적이진 않지만
- 그래도 뭐라도 나눠먹는 게 분위기 좋아지는데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타운하우스의 작은 마당에는 캐나다 집집마다 있는 커다란 바베큐통도 없었습니다. 4 인가족이니 portable 형식의 캠핑 바베큐 작은 거 하나 있었어요
그리고 접이식 테이블 떨렁 두개.
매일 숙제 뭐냐 답 뭐냐 서로 묻는 과 동기 채팅방에 시험 끝나고 시간 되는 사람들 와서 우리 집에서 코리안 바베큐 먹자. 대신 술은 각자 가져와라. 하고 간단하게 올렸다가. 제가. 그래도 몇 명이나 올지는 알았으면 좋겠다 해서 페북 동기 방에 참석자 확인 RSVP를 올렸더니 올 ~ 코리안 바베큐 좋은데. 와이프랑 같이 가도 되? 하고 답변하신 교수님껜 why not? � welcome 이었지요.
나이드신 동기 분도 사모님이랑 같이 오셨구요 - 이 분들이 얼마나 저희를 이뻐해주셨는지 몰라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자녀분들 손주 얘기도 하시면서 저희 애들 엄청 이뻐해주시고 꼭 한국 이름으로 아이들 불러주고 챙겨주셨어요. 교수님 사모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이 걱정해주고 격려해주고 같이 웃어주고요. 이 교수님은 어딜 가나 사모님이랑 같이 다니는 편이신데 사모님이 수줍음이 많으셔서 잘 안 나서시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저랑 신랑이 자리를 같이 나서면 꼭 같이 움직여서 저한테 참 고마웠다고 따뜻한 얘기를 나중에 해주셨어요. 그래도 저랑 죽이 잘 맞아서 외로워하지 않고 상대가 있어 참 좋았다구요.
음식은
바베큐 재워놓고
잡채나 닭갈비
샐러드
비빔국수
했구요. 생각보다 애들이 많이 먹지도 않더라구요.
캐나다 음식은 안 했어요
익숙한 거 먹으면서 내 거 안 먹을까봐
떡꼬치도 나중에 구워먹고
닭똥집이랑 통마늘도 틈틈히 구워먹고
밥도 뭉쳐서 맛간장 발라 구워먹고. 뭐.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거 냉장고에서 조금씩 꺼내서 먹었어요
나름 음식 관련된 과여서 보통보다는 재료에 대한 지식이 많아서 그런지
잡채 먹으면서
목이버섯 들고 이거 뭔지 아는 사람 했더니
‘ 목이 버섯’ 을 단번에 맞춘 친구도 있었구요
뭐든지 직접 피클 담궈먹는 친구도 있는데
명이나물만 손가락으로 낼름낼름 먹질 않나
마당에 키우던 깻잎 따 먹더니 맛 표현이 너무 생뚱맞아서 이게 이리 생소한 맛이구나 싶기도 했구요
그리 시작되서 늦게까지 즐겁게 있다가 마무리는 차 한잔까지 거실에서 마무리 하고 헤어졌는데
이게 나중엔 무슨 과 전통마냥 되서
학기당 한 번 정도는 꼭 저희 집에 모였구요
친구들 모임에도 초대 많이 받았어요.
마지막 학기 마지막 모임엔
친구들이 여친들도 데려오고 아버님도 모셔오고(?)
참 많이들 모여주더라구요 ㅎㅎ
그래서. 결론은
제가 해 보니.
처음부터 해보니.
그래도 제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보니
참 잘 했다 싶습니다.
어설프고 부족하고
걱정도 많았지만
그래도 걱정보단
난 노력하는 중입니다.
도움이 필요할 땐 도와주세요
어설프고 부족해도
말을 밷으니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주위에 좋은 사람 고마운 분들이 있다면
마음보단. 표현해 보세요.
어설픔보단 감사함을 많이 봐주더라구요.
오늘도 한 걸음 더 내딛으시길 응원합니다.
화이팅! 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