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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한샘 Dec 03. 2019

쾰쉬, 에일과 라거의 중심에 서서 자유를 외치다.

자유도시 쾰른의 맥주, 쾰쉬(Kölsch)

쾰른 중앙역(출처 : 윤한샘)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약 2시간 남짓을 가면 쾰른(Koln) 또는 콜로니(Cologne)라고 불리우는 도시가 있다. 로마시대 때 쾰른은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경계였고, 야만족인 게르만인들로 부터 보호하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서로마 붕괴 이후, 중세시대의 쾰른은 자유무역을 향한 '한자동맹'의 중심도시로서 영주에 대항하는 상업인들의 조직인 길드의 도시였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뽑는 투표권을 가진 선제후의 도시였다. 쾰른 대성당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황의 통치권이 직접 미치는 도시이기도 했다.


이와 같이 쾰른은 로마시대부터 군사와 무역, 교통, 정치 그리고 종교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독일의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쾰른의 대표적인 맥주가 바로 쾰쉬(Kölsch)라는 맥주다.


쾰른에서 쾰쉬라는 단어는 총 세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쾰른적인'(Cologne-ish), '쾰른의 언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쾰른 지역의 맥주'를 뜻한다. 이 때문인지 쾰른 지역의 사람들은 '쾰쉬는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는 말을 한다.

쾰른 대성당 (출처 : 윤한샘)

쾰른의 맥주그저그랬던 맥주


쾰른이 굉장히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도시인데 반해 사실 쾰쉬(Kölsch)는 아주 오래된 맥주는 아니다. 전통적으로 쾰른지역의 맥주는 상면발효맥주인 에일이었는데 큰 특징이나 풍미를 가지고 있는 맥주는 아니었다고 한다. 적어도 맥주에 관한 자부심을 가질 정도의 품질의 맥주는 아니었던 것이다.


19세기 이후 황금빛 컬러, 청량감 넘치는 바디 그리고 낮은 산패 위험성이라는 장점을 가진 라거가 전세계 시장을 점령하게 되자 쾰른 또한 자신들의 전통적인 에일맥주를 포기하고 하면발효 맥주인 라거를 주로 양조하게 된다. 또한 당시 독일은 제2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공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어 도시 노동자들이 증가하게 되던 시기였다. 


19세기 말 쾰른은 이러한 도시산업화의 중심에 있는 도시였다. 오래전부터 무역과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했기에 급속한 인구유입과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점차 쾰른에도 대형 라거 맥주 회사들이 진입하기 시작했고 작은 브루어리들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할 뿐이었다. 

수너 쾰쉬와 소세지 (출처 : 윤한샘)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1900년대 초, 쾰른의 작은 브루어리들이 만들었던 맥주는 라거가 아니라 에일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순한 에일이 아니라 발효는 상면발효로 진행하지만 낮은 온도에서 오랜기간 숙성(lagering)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맥주였다. 이것이 바로 쾰쉬(Kölsch)라는 맥주의 시작이었다. 쾰시라는 이름은 1918년 Sünner brewery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형 라거 맥주와는 경쟁이 되지 못하였고, 쾰른 지역 토박이들을 통해 소비가 될 뿐이었다.



알을 깨고 나온 쾰른의 대표맥주로


쾰른의 맥주시장은 2차 대전이 끝나고 상황이 조금 바뀌기 시작한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 약 40여개에 달했던 쾰른지역의 양조장은 겨우 2개 밖에 남지 않았다. 이후 다시 브루어리가 들어서고 맥주양조를 시작하지만 여전히 필스너와 같은 라거가 더 많이 소비되었다. 하지만 지역의 몇몇 브루어리들은 자신들이 만들던 쾰쉬(Kölsch)를 여전히 만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쾰른이 다시 성장하게 되자 쾰쉬에 점점 지역적인 정체성이 덧붙여지기 시작했다. 우선 쾰른 사람들이 쾰쉬를 자신들의 맥주로 인식하게 되면서 소비가 증가했다. 맥주에 관해 큰 역사나 문화를 내세울 것이 없었던 쾰른에 드디어 자신들만의 맥주스타일이 자리잡게 되고 이에 대한 자부심이 점점 더 커지게 된 것이다. 


이런 자부심에는 바로 옆 도시인 뒤셀도르프와의 경쟁관계도 한 몫 했다. 뒤셀도르프는 예전부터 쾰른과 경쟁관계에 있던 도시였는데, 뒤셀도르프 맥주인 '알트'(Alt)와 쾰른의 맥주인 '쾰쉬'(Kölsch)도 서로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졌다. 알트 또한 상면발효로 양조되어 라거링을 거치게 되는데, 밝은 컬러와 청량감을 가지고 있는 쾰쉬와 달리 진한 앰버 또는 브라운 컬러에 쓴맛과 볶은 견과류가 도드라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맥주다. 이러한 경쟁심 때문에 쾰른 사람들은 자신의 맥주에 대해 더 큰 애착과 자부심을 가졌고 점유율도 점차 증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쾰쉬와 알트 (출처 : 윤한샘)

노동자의 증가도 쾰쉬의 정착에 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일을 끝내고 짧은 시간 안에 몇 잔을 연거푸 마시곤 했는데, 탄산감이 많은 라거는 이런 음주습관에 어울리지 않았다. 쾰쉬는 라거에 비해 탄산감이 적고 쓴맛도 약해 마시기 편했다. 쾰쉬의 전용잔인 200ml 슈땅에(Stangne)도 이러한 이유로 애용 되었다. 단순한 모양의 슈땅에에 쾰쉬를 마시면 적당한 용량으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쾰쉬법의 보호를 받다


1960년 쾰쉬는 라거를 밀어내게 되며 완전히 쾰른을 대표하는 맥주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86년 공식적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지역 인증을 받게 된다. 주정부와 24개의 브루어리 모임인 쾰른 브루어리 협회(Cologne Brewery Association)는 'Kölsch Konvention'을 제정했고 이에 따라 쾰쉬는 스타일 가이드 라인과 원산지에 대한 보호를 받는 맥주가 되었다.


이는 쾰른 지역 맥주를 문화관광 상품화 하려는 지역정부와 다른 지역 맥주의 유입방지 및 쾰쉬를 외부에서 양조하지 못하게 하려는 지역 브루어리들의 이해가 맞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대도시이자 관광도시인 쾰른을 대표할 여러 상징 중 쾰쉬는 중요한 상품이었다. 이후 쾰쉬는 1997년 PGI(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에 의해 EU에서도 법적 보호를 받게 된다.


현재 쾰른에서 소비되는 맥주의 90%가 쾰쉬인데, 이는 독일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쾰른 지역민, 브루어리 그리고 지역정부의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쾰쉬의 정의와 특징


쾰쉬(Kölsch)의 특징은 1986년 제정된 Kölsch Konvention에 의해 아래와 같이 규정되어 있다.


쾰쉬는 상면발효 공법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밝은 황금빛 색깔을 띄어야 한다. 필터링되어 깨끗해야하며 몰트와 홉의 향이 적절히 조화되어야 한다.(단, 필터링하지 않을 경우, unfiltered, naturally cloudy,Hefetrüb과 같은 표기를 해야한다.) 또한 독일 맥주 순수령을 지켜야하며 반드시 쾰른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Ur-Kölsch" 또는 "real Kölsch"과 같은 부가적인 설명은 금지한다.


가펠 쾰쉬

또한 쾰쉬라는 맥주는 기본적으로 아래와 같은 테이스팅 노트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밝은 황금빛 컬러와 투명(Clear)하거나 살짝 안개낀(Slightly misty) 듯한 투명도
옅은 제라늄 또는 방금 벤 풀향과 허니의 힌트
미디움 바디, 드라이/청량감 있는 텍스쳐 그리고 적절한 탄산감


무엇보다 쾰쉬는 최고의 소셜비어(Social beer) 맥주이다. 5% 이하의 알코올 도수, 유려한 아로마와 적당한 바디감은 커피나 차를 대신 할 수 있다. 200ml 용량의 슈땅에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며 안주 없이 쾰쉬만 들고, 혹은 자리에 앉아서 대화하는 모습은 쾰른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또한 쾰쉬는 다양한 요리와 페어링 할 수 있는 맥주이기도 하다. 슈바인 학세나 슈니첼, 혹은 삼겹살과 같은 고기요리부터 홍합탕과 같은 해산물 요리, 그리고 소세지와 감자튀김은 물론 삼계탕과 같은 요리에도 좋은 궁합을 선보인다.



쾰쉬의 문화 “슈땅에쾨베스 그리고 크란츠


쾰쉬에는 다른 맥주에는 없는 재미있는 문화가 있다. 우선 쾰쉬는 쾨베스(Köbes)라고 불리우는 웨이터에 의해 서빙된다. 쾰쉬를 전문적으로 서빙하는 서버로 테이블에 앉으면 특별한 주문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쾰쉬 한잔을 가져다 준다. 쾰쉬는 크란츠(Kranz)에 서빙되는데, 크란츠는 쾰쉬 슈땅에를 한꺼번에 여러 잔 담을 수 있는 용기를 말한다. 앞치마를 두른 쾨베스는 이 크란츠를 들고 다니며 쾰쉬가 비어있는 곳에 자동으로 서빙한다.


크란츠와 굿즈들

쾰쉬 한 잔을 다 마신 후, 주문을 안 한 새 쾰쉬가 놓여 있다고 놀라거나 당황하지 말자. 물론 공짜로 주는 것은 아니다. 만약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면 쾨베스에게 이야기하거나 비어코스터를 슈땅에 위에 올려놓으면 된다.



Thank God We Got Gaffel


다행히 쾰쉬는 쾰른으로부터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에서 아주 쉽게 마실 수 있다. 마트와 편의점에서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독일 쾰른 대성당 앞에서와 같은 품질로 즐길 수 있는 쾰쉬가 있으니, 바로 가펠 쾰쉬이다. 

가펠 암 돔 (출처 : 도아인터네쇼날)

가펠(Gaffel)은 1302년에 시작된 브루어리로 쾰른 중앙역을 나오자 마자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쾰쉬를 양조한 것은 20세기 이후지만, 맥주 양조 역사로만 보면 굉장히 오래된 곳이라 할 수 있다.


가펠이란 이름은 '두 갈래로 갈라진 포크'라는 독일 고어로 1396년 쾰른의 길드와 무역상들의 정치적인 조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쾰른은 13~18세기까지 유지되었던 한자동맹(Hansa League)에 가입된 도시였다. 현재 북독일과 북유럽 그리고 영국에 이르는 도시들은 중세시대 무역의 발달로 인해 상인들의 권리가 큰 도시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도시 간 동맹을 발전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한자동맹'이다.


가펠 쾰쉬 (출처 : 윤한샘)

상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봉건영주와 교황과 대립하였고 쾰른의 가펠(Gaffel)들은 매일 밤마다 모여서 음식과 맥주를 마시며 자유에 대해서 논의했다고 한다. 1908년, 비커(Beeker) 형제가 쾰른에 위치한 이 브루어리를 인수했고, 과거 가펠 길드(Gaffel guild)의 정신을 닮고 싶어 가펠(Gaffel)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쾰쉬전통을 이어가는 진짜 보수 맥주


인류가 만들어 오고 이어오는 것 중에 때론 진부하고 뒤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시대가 변해도 올바르고 변하지 않는 가치들도 있다.


지금은 미국 크래프트 맥주를 필두로 굉장히 다양하고 진보적이며 때로는 급진적인 맥주 스타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기이다. 이런 트렌드에서 맥주 순수령을 바탕으로 자신이 정한 틀과 장소에서 만들어지는 쾰쉬와 같은 맥주는 어쩌면 진부한 스타일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쾰쉬는 쾰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상면발효 후 라거링'하는 것과 같은 독특한 양조 전통을 지키고 있는 '진짜 보수 맥주'라고 할 수 있다. 쾰른 지역인들의 강한 자부심이 투영되어 있으며 타인이 이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그 본질을 지켜내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수백년 동안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음료로서 어떤 음식과도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쾰쉬, 이 맥주가 묵묵히 지켜가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슈땅에 한잔에서 느껴보면 어떨까? 


진짜 보수는 원래 멋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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