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월 1주차를 보내고
연말은 조직개편 시즌이다. 현 직장은 개인 R&R의 변화가 잦다. 흉흉한(?) 소문으로는 퍼포먼스 마케터가 상품 기획자로, 서비스 기획자가 온라인 영업 담당자로 변하는 등 개인의 커리어 패스를 뒤흔드는 변화도 잦다고 한다.
뾰족한 커리어를 만들고자 이직한 지 1년이 지났다. 아직까지 나의 R&R을 지키고 있긴 하나, 조직개편 시즌은 늘 구성원들 모두를 불안하게 만드는 계절인 것 같다.
이번 조직개편으로 나는 기존 업무를 일부 조정하며 퍼포먼스 마케팅을 맡게 됐다. 입사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콘텐츠 마케터가 메인 역할이었다. 기존 담당자가 모회사로 이동하는 바람에 입사 6개월 차부터 작년까지 언론 홍보를 함께 맡았었고, 이번 인사 발령으로 언론 홍보 대신 퍼포먼스 마케팅을 맡게 됐다.
브랜드 마케터로 성장하고자 하는 나에게 퍼포먼스 마케팅은 욕심나는 업무였다. 규모 있는 예산 운용과 ROAS, ROI 등으로 대표되는 명확하게 수치화할 수 있는 마케팅 성과 산출, GA 활용 등 나에게 자산으로 남을 것이 많아 보였다. 업무량이 엄청 늘어날 것 같았지만 해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막연히 두렵기도 했다. 전 직장에서 퍼포먼스 마케팅에 규모 있는 예산을 태워본 적도 없었고, 1년 넘게 업무를 하고 있는 대행사가 있긴 하나, 원체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걸 힘들어하는 성향인지라 모름지기 광고주라 함은 에이전시보다 더 많이 깊게 고민하고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다.
지난 12월, 크고 작은 고민 끝에 아직은 부족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니까 더 많이 생각하고 빨리 흡수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우선 작년의 주요 이슈와 히스토리를 파악하고, 차근차근 인수인계를 받을 예정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전임자가 퇴사를 결정했다는 것.
회사라 함은 원래 사람이 드나드는 곳인지라 언제든지 누군가 그만둘 수 있고 또 새로 합류할 수 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지난 직장생활 속에서 숱한 사람들의 입사와 퇴사를 보았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퇴사하는 일이나 또 새로운 동료를 맞이하는 일은 이제 좀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여전히 퇴사를 앞둔 사람에게 인수인계를 받기란 참 어렵다.
우선 예비 퇴사자는 자리에 잘 없다. 맡고 있던 업무를 정리하고 인수인계 문서를 넘기고 나면,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서 업무를 처리할 일이 별로 없다. 퇴사 전 남은 연차를 소진하기도 해야 하니 휴가도 잦다. 퇴사까지 3~4주가 남았다 해도 중간중간 연차를 자주 쓰고, 출근하는 날에는 퇴사 전에 회사 사람들과 밀렸던 회포를 푸느라 바쁘다.
또 예비 퇴사자는 점점 책임감을 잃는다. 이건 지난 직장을 퇴사하던 시절 나 역시 그러했다. 얼마 후면 다시는(?) 오지 않을 사무실이고, 이제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책임감 있는 업무 처리는 줄어든다. 이전까진 어떻게든 기한에 맞춰서 했던 업무였어도 "잠깐 깜빡했지 뭐야"라는 말을 쉽게 하게 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나의 전임자는 꽤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 야근 후 맥주를 함께 마시며 조직에 대한 불만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해 본 적 있는 동료로, 내가 성격이 급하고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취약하다는 점을 잘 안다. 그래서 요즘 사무실에서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울 때에는 나에게 미리 알려준다.
나의 퍼포먼스 마케팅 인수인계 계획에 약간의 차질(?)이 생기긴 하였으나 또 나름 스릴(?) 있다. 사실 전임자가 없을 때 누군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어쩌나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빠르게 체득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완벽하게 퇴사하지 않은 나의 전임자와 협조적인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아 빨리 앞서 나가야겠다. 비록 센터장님이 나와의 지난 면담 때 '정신없음'을 제일 먼저 메모하시긴 했지만, 빠르게 정신을 찾아야지. 차근차근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