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을 접하며 깨달은 것들
많은 사람들이 재미 삼아 혹은 진지하게 ‘운’을 가늠하곤 한다. 내 주변에도 사주나 점, 타로를 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을 미리 아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명리학을 마주하며 변하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궁금증이었지만, 명리학은 운을 점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명리학과의 첫 만남은 매우 사소한 계기로부터 시작됐다. 어느 날 지인과 MBTI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현듯 ‘사주’라는 단어가 머리에 스친 것이다. 사주 또한 MBTI처럼 사람의 성향과 특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문득 호기심이 생겼고, 무료 만세력 사이트에 내 생년월일을 입력해 봤다. 그러나 화면에 뜬 건 한자 몇 개와 뜻을 알기 어려운 단어들이었다. ‘심층 해석은 유료 서비스’라는 안내에 창을 닫으려다가, 이상하게도 오기가 생겼다. 어쩌면 이건 단순한 오기가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나를 해석해보고 싶다’고 느낀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굳이 결제하지 않고 스스로 읽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생년월일이 어떤 한자와 단어들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그 뜻이 무엇인지 나 혼자의 힘으로 알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명리학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그 알 수 없는 글자들이 과연 ‘나’라는 인간을 제대로 말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주풀이를 통해 알고자 하는 것들은 보통 ‘앞으로의’ 직업운이나 연애운 혹은 금전운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궁금했던 건, 과연 지난 내 삶이 명리가 말하는 대로 흘러왔는지였다. 과거 내게 일어난 일을 하나씩 복기하며 운의 흐름에 맞춰 보고, 공부를 이어가며 스스로 내 삶을 풀어나갔다. 그러다가 서서히 깨달았다. 내 인생의 여러 변곡점들에 명리가 말하는 운의 흐름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음을. 이건 명리 서적이나 명리 강의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내 삶을 살아낸 나만이 알 수 있는 감각이었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명리는 내게 단순히 미래의 길흉을 점치는 수단이 아니라, 나의 삶을 직면할 용기를 주는 동반자가 되리라는 것을.
명리로 살아온 나날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내게 어떤 지침이 될 것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확답을 내릴 수가 없다. 명리가 과연 삶에 뚜렷한 정답을 줄 수 있을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내 삶에 있어서는 명리가 어떠한 방향만은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명리학을 공부하며 나는 나의 가장 밑바닥을 퍼올리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묻어두고 외면했던 과거의 나날들. 잊고 싶었지만 잊히지 않아서 몸부리 쳤던 기억들. 이 모두를 명리라는 거울로 비춰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명리 공부에 있어서 가장 좋은 교재는 내 인생이었기에 피할 수 없었다. 어떤 스스로의 연민도 없이, 그저 명리만을 얹어 내 과거를 제대로 다시 보는 것 역시 내게 꼭 필요한 통과의례였다. 이 과정을 거친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쨌든 명리는 나를 다시 살게 해 줄 것이었다. 이를 위해 나는 ‘명리가 말하는 나’에 대한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다.
명리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알게 된 것-나는 땅이었다. 만세력에 내 생년월일시를 넣으면 ‘기(己)’라는 글자가 나온다. 기(己)는 땅(土)이고, 보통 기토(己土)라고 부른다. 사주팔자가 정의하는 나는 ‘기토(己土)’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기토라는 글자가 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